삶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쉽게 이해되는 이 짧은 문장을, 나는 2021년 내내 잊고 살았다. 누구보다 절실한 마음으로 이번만큼은 뜻대로 되기를 빌었다. 앞으로 경험하게 될 열 달은 순조롭게 이어질 거라 믿었다. 임신과 출산, 정신적으로도 별일 없이 지나가기를 바랐다. 혹시 문제가 생긴다 해도 '아, 그랬었지.' 하고 웃어 넘길 만큼, 사소한 기억으로 남기를 꿈꾸었다.
우리는 드디어 임신을 했고 언젠가 남편에게 말했다. "산부인과는 진짜 신기해. 매일매일 가고 싶어. 다음 진료까지 어찌 기다리지? (장난스러운 말투로, 배를 만지며) 내 배가 투명해져서 짜꿍이 상태를 실시간으로 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 초음파 사진 보는 시간이 제일 신나."
산부인과는 참 묘하다. 으레 병원이라 하면 의사가 무슨 말을 할까, 오늘은 또 어떤 안 좋은 이야기를 들을까 뒤숭숭한 마음이 앞선다. 임신으로 인한 산부인과 방문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병원 방문이 매번 기대되고 자주 가고 싶어지게 만든다.
어지러워 쓰러질 것 같은 입덧과 불러오는 배로 인해 두덩뼈는 으스러질 듯 아팠다. 그럼에도 아기는 내가 참고 견딜 수 있게 한 존재였다. 아기가 건강하게 성장해가는 과정을 보고 초음파로 심장소리를 듣는 시간, 그 짧은 몇 분이 요즘 내 하루를 버티게 했다.
아기는 18주에 아랫배를 살짝 '툭툭' 치는 것으로 나에게 신호를 보냈다. 19주 4일에는 남편도 느낄 정도로 제법 세게 찼다. 우리는 서로 놀라 한참이나 깔깔거리며 소리를 지르듯 웃었다. 아직도 한껏 상기된 남편의 얼굴이 또렷하다. 아침마다 영양제를 먹으며 '짜꿍이가 오늘도 잘 크고 있겠지?' 속으로 중얼거렸다. 필라테스를 하며 숨을 고를 때면, 배 속 아기와 함께 호흡하는 듯했다. 산부인과에 정기 진료를 가면 체중계 숫자는 날마다 올라갔다. "짜꿍이도 좋지만 나중에 이 살을 어떻게 다 빼지?" 내 말에, 남편은 숫자를 바라보며 내게 귓속말을 했다. "짜꿍이 품고 있는 지금이 제일 예뻐. 괜찮아." 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몸매를 가진 행복한 임산부였다.
하지만 삶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인생에서 오직 기쁨과 즐거움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슬픔과 고단함의 감정까지 고스란히 다 느끼게 될 줄 우리는 미처 몰랐다. 기분장애와 더불어 불안도 안고 사는 나이기에 쉽지 않은 임산부의 일상이었다.
임신 6주 차, 남편과 집근처 산부인과를 찾았다. 태아의 쿵쿵거리는 작은 심박음과 함께 의사의 야속한 소리를 들었다. "현재 상황에서는 임신이 잘 유지될 수도 있고,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경과를 지켜봐야 해요." 아기집은 잘 보였지만 태아의 모양이 조금은 기이했다. 태아 주변으로 서 너 갈래 이상한 선들이 뻗어있었다. 얼핏 거미줄에 둘러싸여 있는 형태로 보였다. 의사는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있었고 내 떨리는 심장소리가 밖으로까지 들리는 듯했다. 의사로서 해야 할 말과 행동이었지만 심박음도 듣기 전에 "안타깝습니다만..."이라고 말해서 괜히 섭섭했다.
남편과 나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남편은 "아기보다 자기가 더 걱정돼."라고 말했다. 나는 눈시울이 붉어져 목이 자꾸 메고 따끔거렸다. 내가 조울증 때문에 약을 먹고 있어서 아기에게 문제가 있는 건 아닌가 싶어 더 이상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남편은 "자기 탓이 아니야. 선생님도 그렇게 말씀하셨잖아? 우리 짜꿍이는 꼭 건강하게 이겨낼 거야. 힘들겠지만, 선생님 말씀대로 잘 지켜보자."며 나를 달랬다. 실낱같은 희망을 부여잡고 매주 병원을 찾았다. 다른 병원에 가보기도 했다. 원인 모를 선들이 여전히 있었지만 아기는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심장도 더 강하고 규칙적으로 뛰었다. 9주에 드디어 아기를 괴롭혔을 것만 같은 선들은 완전히 사라졌고 머리와 몸이 구분되어 젤리곰으로 우리를 반겼다.
16주에는 산전 기형아 검사를 하러 산부인과에 갔다. 집에서 쉬고 있는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이수현 산모님이시죠? 산부인과입니다. 2차 기형아 검사 결과가 나왔는데 다운증후군 고위험이 나와서요. 혹시 오늘 병원 오실 수 있으세요?" "네? 다운증후군이요? 지... 금... 당장 갈게요." 확률검사라지만 홀배수체 염색체 검사에 대한 정보가 부족해서 걱정만 가득했다.
추가 검사는 양수검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안전하고 간단한 니프티 검사를 했다. 검사 결과가 나오기까지 2주간 오로지 '괜찮다'라는 단어만 있었다. 니프티 또한 정확도가 99%라 1%의 좋지 않은 상황이 있을 수도 있다. "선생님, 니프티 검사만으로도 안심해도 될까요?" 내 긴장한 물음에 의사선생님은 나를 다독여줬다. 결과적으로 짜꿍이는 정말 건강하게 태어났다. 임신기간 내내 안정기란 없다는 것을 몸소 깨달았다.
임신을 하고 정신과적으로는 불면증에 힘겨웠다. 배가 나오고 골반이 벌어지면서 치골과 꼬리뼈가 자는 시간에도 너무 아팠다. 갈수록 통증이 심해지니까 밤에 잘 때 몸을 뒤척였다. 이런 움직임이 아기가 뱃속에서 지내는데 힘들지는 않을까 싶었다. 방광도 예민해졌다. 새벽마다 화장실에 잦게 왔다 갔다 했고 숙면을 취할 수 없었다. 자연스럽게 수면 부족으로 이어졌다. 잠을 잘 못 자면 불안함이 몰려오고 기분이 살짝 들뜨는 경조증이 올라온다. 임산부의 감정은 태아도 똑같이 느낀다고 들었다. 수면시간이 줄어들고 기분이 들뜨는 현상이 지속됐다. 혹여 지금 아기와 감정을 공유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명확한 답을 모르는 불확실한 사실이 나를 더 불안하게 만들었다.
손발이 차가워지고 계속 저리는 느낌이 났다. 안절부절못하고 집안을 서성였다. 남편과 아파트를 산책하고 기분을 가라앉히는, 수면에 좋은 영상을 보고 따뜻한 우유를 마시기도 했다. "내가 이렇게 불안한 데 설마 짜꿍이에게 영향이 가진 않겠지?" "지금은 그보다 자기의 안정이 더 우선이야. 걱정마." 불안에 떠는 나에게 남편은 안정감을 심어줬다. 교수님 상담을 통해 쿠에티아핀 용량을 늘렸다. 임신 중에는 가능한 한 약물을 최소화해야 해서, 여러 약을 함께 쓰는 대신 하나의 약물로 조절해 나갔다.
임신 초중기는 여러 이벤트가 있어 병원에 제법 잘 갔다. 임신 후기는 비교적 안정기에 접어들었고 한 달에 한 번 오라고 했다. 5주가 다 되어 아기를 만났다. 태아의 얼굴 윤곽과 신체의 주요 기능을 자세히 볼 수 있는 입체초음파를 마치고 진료실로 향했다. 선생님은 긍정적으로 말씀해 주셨다. "태반도 정상이고 태아도 머리를 아래쪽으로 향해 위치가 적당해요. 자궁경부 길이도 괜찮고... 머리 크기도 주수보다 작아서 자연분만도 가능하겠어요. 아주 좋네요." 이제 곧 추석 연휴라 양가 부모님께 얼른 소식을 전하고 싶었다. 다만 어제 피비침이 살짝 있어서 선생님께 말씀드리니 바로 확인해야 한다고 하셨다. 알고보니, 30주에 절대 보여서는 안 될 피비침이었다. 지금 당장 입원하라며 갑작스러운 권유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