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정신과 전공의를 보자마자 따졌다. "저는 분명 정신과 진료를 받는다고 했는데 지금까지 어디 계셨어요? 쓸데없이 산과 진료를 받고 제 증상이 더 심해져서... 바로 못 오신 이유가 대체 뭐예요?" 이제야 전공의를 만났다는 안도보다는 '왜 이제야 왔는지, 왜 날 이렇게까지 방치했는지'에 대한 아쉬움만이 가득했다. 이미 의료진에 대한 불신이 가득했기에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저는 이 병원에 이미 다니고 있는 환자잖아요. 제가 왜 이런 취급을 당해야 해요? 이름 검색하면 다 나오잖아요?" 내 목소리는 점점 더 높아졌고, 집요하게 캐물었다.
전공의는 나를 자극하지 않으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가만히 듣고 있었다. 그의 침착한 태도는 오히려 더 서운하게 다가왔다.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정신질환자가 응급실에 간다는 게, 얼마나 냉담한 현실인지를. 그는 응급실 시스템을 설명하며 내가 이해해 주길 바랐지만 내 귀에는 변명처럼 들릴 뿐이었다. 그는 '내가 왜 응급실에 왔는지'에 초점을 맞추려고 대화를 시도했다.
"이수현님, 이수현님이 왜 지금 응급실에 오셨죠? 경조 증상이 올라와서, 맞나요? 우리 한 번 그것에 집중해 볼까요? 언제부터 증상이 시작됐죠?" 그는 나를 진정시키려고 애썼다. '그렇다, 내가 왜 여기에 왔지? 산부인과에 입원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나는 꼬인 실타래 같은 생각들이 한꺼번에 밀려와 머리가 빙글빙글 어지러웠다. 격리실의 산소가 묘하게 부족한 듯 숨도 잘 쉬어지지 않았다. 나는 입에 모터라도 단듯 매우 빠른 속도로 말하고 있었다.
전공의는 내 말을 끊지 않고 노트에 빼곡히 적어 내려갔다. "저, 머릿속이 너무 복잡해요. 펜과 종이 좀 주세요. 적어야 정리가 될 것 같아요." 말하는 것보다 생각들이 더 빠르게 비집고 나와서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쓰면 생각이 조금은 정리가 될 것 같았다. 그는 친절하게 내게 펜과 종이를 가져다줬다. 종이를 받자마자 나는 방금 떠올린 생각은 잊은 채, 펜에 적혀 있는 글자를 그대로 따라 적었다. 의미 없이 휘갈겨 쓴 글자가 종이에 늘어났다. 왜 이런 행동을 하고 있는지 전공의도 의아해하며 내 손끝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나는 그때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전공의는 잠시 자리를 비운 뒤 돌아와 남편과 내게 약을 건넸다. "약 용량이 조금 늘었어요. 취침 전에 전과 같이 드시면 돼요. 혹시 증상이 심해지면 다시 응급실로 오세요." 나는 당장 무언가 조치가 있을 줄 알았다. 주사 한 대, 약 한 알, 어떤 형태든 나를 잠시라도 진정시켜 줄 무언가를 찾았다. 임산부라는 이유로 그 모든 선택지는 허락되지 않았다. 남은 건 지금까지 먹던 약의 용량을 조금 늘려 귀가하는 정도였다.
집으로 돌아왔다. 불 꺼진 거실은 텅 빈 낯선 공간 같았다. 정신 상태만큼이나 신체도 지쳐 있었다. 치골과 꼬리뼈, 무릎도 아프고 양팔에는 주삿바늘로 인해 피멍이 크게 들었다. 거울에 비친 내 몰골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형편없었다. 낮에는 남편과 대화하며 안정을 취하는 듯했지만 밤이 되자 불안감이 다시금 공포로 변모했다. 내가 있는 곳이 집이 아닌 것 같았다. 마치 누가 나를 가두고 있는 듯 무거운 공기가 방안에 가득했다. 이 집에서 탈출하고 싶어졌다. 남편이 먼저 잠이 든 사이, 나는 약을 먹지 않았다. 화장실 변기 물에 쓸려 보냈다. '약을 먹으면 안 돼. 이건 잘못 처방된 약이야. 여기서 나가야 해.' 경조증에서 조증을 넘어 망상으로까지 번졌다. 다음 날, 밤을 홀딱 지새우고 남편과 마주했다.
뭐라고 말하는지 알 수 없는 비논리적인 말들. 하나도 정리되지 않은 채 어수선한 말들. 상대방의 말은 전혀 듣지 않고 끊임없이 혼자만 말하는 나. 평소와 전혀 다른 나였다. 사람을 적대시하는 눈길로 남편을 향한 날서고 분한 말들이 마구 쏟아졌다. 누군가 나에게 말이라도 거는 듯, 망상과 더불어 환청까지 들리는 단계로 질주하고 있었다. 걷잡을 수 없는 내 말과 행동에 결국 남편은 119를 불렀다. "여보세요. 119죠? 아내가 조울증 환자인데 조증 상태가 심해서요. 당장 와주세요."
119 구급 대원은 나와 같은 조울증 환자를 처음 보는 듯했다. 나를 마치 징그러운 벌레라도 보는 듯한 눈빛이었다. 무표정하게 팔짱을 낀 모습이 굉장히 거만하게 느껴졌다. 119 출동에도 흥분된 마음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나도 간곡하게 병원에 가고 싶었지만 자꾸만 거슬리는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주변 사람들과 끝을 모르는 실랑이를 벌였다. "저... 환자분 이제 응급실 가셔야죠? 네? 언제까지 여기서 계속 말만 하실 거예요?" '나도 제발 응급실 가고 싶은데... 한시라도 빨리 치료받고 싶은데...' 그때는 왜 그렇게 말하고 행동을 했는지 잘 모르겠다. 설명할 수가 없다. 그냥 나는 정신이 몹시 병들고 피로한 환자였다. 미친 사람처럼 조증이 터져 나온 아픈 환자일 뿐이었다.
끝내 경찰까지 왔다. 다행히 경찰은 바쁜 와중에도 횡설수설한 내 말에 끝까지 반응해 줬다. "네, 성함이 이수현님이라고요? 그러시군요. 어떻게 임산부인데... 힘드시겠어요. 임신 몇 주인 가요? 태명은 뭐예요? 이제 곧 엄마가 되시겠네요. 이제 몸을 조금씩 움직여서 구급차를 타 볼까요?"라고 말했다. 내가 최대한 진정될 수 있게 따뜻하게 대해줬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응급실에 다시 갈 수 있었다.
눈을 떴다. 응급실에 도착한 것까지는 기억나는데 이후로 기억이 없다. 격리실 안, 내 옆에 있어야 할 남편이 없었다. 간호사한테 남편을 불러달라고 이야기했다. 단지 그뿐인데 갑자기 모르는 사람들이 격리실로 들이닥쳤다. 나는 분명 정중하게 말했는데 내 몸은 그들에 의해 붕 떠서 침대에 내려졌고 결박을 당했다. 손과 발을 움직일 수 없었다. "뭐 하는 거예요? 저 임산부라고요. 지금 이거 불법 아니에요? 남편만 불러 달라고요!"
내가 실제로 했다고 한 말과 격리실 CCTV로 비친 화면 속 행동은 매우 달랐다. "남편 어딨어요?" 의료진을 째려보고 침을 뱉으며 수액걸이대를 집어던졌다. 쉽사리 조절되지 않는 충동이고 공격적인 행동이었다. 조울증을 처음 진단받았던 그날 아침, 가족들을 향해 보였던 모습과 흡사했다. 남편 동의하에 즉시 제압 당했다. 나는 악착같이 결박을 풀었고 의료진은 힘들여 내 손발을 묶고의 반복이었다.
곧이어 거듭된 약 거부에 남편이 목을 낫게 해주는 약이라고 속여서 먹었다. 3일 내내 잠도 안 자고 떠들었던 나는 목이 상당히 쉬었고 불이라도 난 듯 뜨거웠다. "목 아픈 거 낫게 해주는 약이래. 자기야, 이것 좀 먹어봐. 제발... 내가 부탁할게, 응?" 쿠에티아핀에서 입에 녹여 먹는 올란자핀으로 어쩔 수 없이 약을 바꾸고 나서야 어느 정도 진정이 됐다.
나는 B교수님이 보고 싶어졌다. '내 이야기를 들어주지도 않고 의료진 마음대로 결박하고... 응급실 사람들은 다 이상해. 다 나쁜 사람들이야. 교수님은 어디 계신 거지?' 추석 연휴라 B교수님은 뵐 수 없었고 당직 교수님이 내 입원을 결정하셨다. 나는 철저하게 저항했다. 5년 전처럼 다시는 입원하고 싶지 않았다. 어떤 곳인지 알기에 더욱 강하게 거부했다. 응급실 간호사가 입원을 거절하는 내게 병원 6층으로 가서 교수님과 면담을 하자고 말했다. '교수님이라면 B교수님인가? 그렇다면...' 휠체어를 타고 올라갔다. 61병동. 어딘가 모르게 익숙한 철문이 보였다. '하... 저 문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