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입원생활

by 포마람

'여기를 또다시 오다니, 말도 안 돼.' 속으로 외쳐보지만 휠체어에 타고 있는 나는 더 이상 저항할 수 없었다. 철문을 보자마자 정신이 번뜩 뜨였다. 단단하고 무거운 철문이 "어서 와, 두 번째지?" 날 비웃기라도 하듯이 말하는 것 같았다. 너무나 쉽게 열려 버린 그 문으로 나는 끌려 들어갔다.


남편과 안정실에서 간호사의 안내를 받았다. "안녕하세요. 이수현님. 입원에 필요한 몇 가지 주의 사항 및 안내를 해드릴게요." 모든 것을 다 내려놓은 사람처럼 간호사 말에 순순히 "네, 알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대학병원 정신과 보호병동, 속옷에 붙은 끈마저 제한되고 볼펜 한 자루도 가지고 들어갈 수 없는 곳이었다. B교수님의 배려로 임산부인 나는 특혜를 받았다. 입원하는 동안 보호자인 남편과 같이 병실에서 생활하기로 했다. 만약 남편과 함께 할 수 없었다면 나는 더 강하게 의료진을 향해 맞섰을 것이다.


보호자도 유의사항 안내를 받았다. 남편도 나 못지않게 불편을 감수해야 했다. "간식과 생필품은 구입 후 병동 입구에서 병원직원에게 확인을 받아야 합니다. 환자가 납득하기 어려운 것을 요구하면 즉시 간호사에게 알려줘야 해요. 타 환자의 요구에도 응해서는 안 됩니다. 동의하시면 하단에 서명해 주세요." 남편의 휴대폰은 간호사실에 보관한 채 그때그때 필요시 써야 했다.


안정실에서 모든 안내를 받은 후 2인실 병실로 들어갔다. 병동 안에서도 맨 안쪽 끝방이었다. 드디어 추석 연휴가 끝이 났고, B교수님을 만났다. 나는 교수님을 보자마자 서럽게 울었다. 길을 잃어버렸다가 엄마를 찾게 되어 안심하는 어린아이처럼 펑펑 울었다. 숨조차 고르기 힘들 만큼 눈물이 쏟아졌다. "교수님... 왜 이제야 오셨어요? 제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세요? 신체 환자만 환자인가요? 정신질환자는요? 저도 심폐소생술이 필요한 환자였다고요. 그런데 응급실에서..." 마치 오래 쌓인 말들이 한순간에 둑 무너지듯 쏟아졌다. 울분인지 서운함인지 안도감인지 모를 감정들이 교수님을 향해 날아갔다. 교수님은 아무 말없이 길고 긴 내 말을 다 듣고 계셨다.


지금의 상황을 비교적 받아들였지만 한편으로는 억울했다. 산부인과 입원실에서 남편이 전화를 더 빨리 받았더라면? 응급실에서 정신과 진료를 바로 받을 수 있었다면? 집에 가지 않았더라면... 119 구급 대원과 경찰이 올 정도로 흥분하지 않았더라면... 추석 연휴가 아니어서 교수님을 곧장 만났더라면... 입원까지는 하지 않아도 되었을까? 나만의 억울함이 성난 파도처럼 밀려오기도 했다.


'보호병동'이란 이름은 듣기에 썩 나쁘지 않았다. 코로나 시절이라 병동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마스크를 써야 했다. 면회는 일절 불가능하고 대신 전화 통화는 얼마든지 허락되었다. 통화 시간제한이 없다 보니 환자들끼리 눈치를 보며 말다툼을 하는 모습이 종종 펼쳐졌다. 10대 후반에서 20대 초중반에 해당하는 연령층의 환자가 많았다. "안녕하세요. 저는 이수현이고 보시다시피 임산부예요. 저 맨 끝 병실을 사용하고 있어요. 조울증을 앓고 있고요..." 그들과 어울려 이야기하며 사람은 누구나 나름의 힘듦을 가지고 산다는 것을 깨달았다.


약을 증량하며 조금 나아졌다고는 하나 임산부라 별다른 치료를 받지는 못했다. 여전히 경조증과 조증을 넘나드는 증상이 나를 지배했다. 어디 급한 약속이라도 있는 사람처럼 아침에 일찍 일어나 하루를 시작했다. 올란자핀으로 약을 변경하고서는 식욕이 늘어 밥도 많이 먹었다. 입원해 있는 10일 동안 5kg이나 쪘다. 2인실 병실을 사용했지만 몸을 씻는 일은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좁은 공간에서 임산부의 몸으로 뒤뚱거리며 씻었던 일이 가장 힘들었다.


처음 응급실에 왔을 때부터 병동에 입원하기까지 계속 떠들었던 나는, 목이 굉장히 아프고 따갑기까지 했다. 이비인후과 진료를 봤지만 임산부라 역시나 제약이 있었고 따뜻한 물을 마시라는 말뿐이었다. 병동은 뜨거운 물마저 가지고 들어올 수 없었다. 나는 병식이 있고 병동 규칙도 잘 지키고 있는 모범 환자인데 자꾸만 규정 이야기만으로 제한을 받아 화가 났다. 간호사에 대한 불만이었다. B교수님은 감사하게도 매일 아침 회진을 오셨다. 그때도 교수님 들어오신다고 보호사가 너무 크게 소리를 질러서 귀가 다 아팠다. 30주가 넘어가는 임산부의 몸보다 정신이 더욱 위태로웠다.


끊임없이 무엇을 해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 몹시 들떠있었고 불안정했다. 나는 펜과 종이를 빌려 주는 시간에 맞춰 제일 먼저 가지고 와서 적었다. 적어봤자 그때뿐이지만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나았다. 그날의 감정, 병동 풍경,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을 적고 또 적었다. 매일 같이 글쓰기에만 몰두하고 있는 내가 궁금한지, 치료에 참고하려는지, 나중에는 주치의가 일기를 가져가 읽기도 했다.


2021년 9월 24일(금) / 입원 4일째


3일 내내 떠들었던 나는 목이 따갑고 쓰라리고 아프다. 목이 쉬어버려서 제대로 말이 나오지 않는다. 기분이 별로다. 왜 그럴까? 자고 싶지만 딱히 졸리지도 않다. 할 일이 없는데 자지도 못하고 무엇인가 답답하다. 낮에는 되도록 자지 말라고 한다. 불안하고 손 저리게 초조한데 잠도 못 자게 하고 집중도 잘 되지 않는다.


병동생활 중 유일하게 유익했던 건 치료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시간이었다. 임산부라 제한이 있었지만 문예치료 시간은 남편과 열심히 글을 쓰며 보냈다.


2021년 9월 26일(일) / 입원 6일째


오늘 날씨가 정말 깨끗하고 화창하다. 그동안 봐왔던 풍경과는 다르다. 병원 보호병동에 있지만 날씨가 너무 맑아서 갇혀 있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병실에 들어오자마자 창밖 풍경에 매료됐다. 이 병원에 있으면서 과연 즐겁게 웃을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다. 아무래도 공간적 제한 때문에 더 우울하지 않을까, 그런 우려가 있었다. 막상 들어오니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마음이 편하다. 물론 힘든 점도 있다. 초조하고 불안, 불안정한 상태, 손이 저리고 안절부절못하는 것들이 나를 괴롭힌다. 약 부작용도 아니고 남편과 대화를 많이 해도 풀리지 않는다. 그런데 오늘 병실 창밖을 내다보니, 내 이런 증상의 원인을 조금이나마 알 것 같다. 바로 밖에 나가지 못했다는 것! 원치 않던 갑작스러운 입원을 시작으로 추석 연휴 동안 응급실, 집에 있었고 바깥 풍경을 제대로 보지 못한 채, 또 이어서 보호병동 입원까지... 그러니까 일주일 넘게 하늘을 제대로 보지도 쾌청한 가을을 느껴보지도 못한 거였다. 새파랗게, 보는 사람마저 기분 좋게 만드는 하늘, 그 위에 마치 누가 일부러 그림을 그려놓은 것과 같은 적당한 크기의 하얀 구름까지. 비록 나는 보호병동에 있어 밖으로 나갈 수는 없지만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한결 차분해진다. 지금은 보호병동에서 유일하게 힐링하며 불편한 마음을 조금은 내려놓을 수 있는 시간이다. 오후 3시, 한낮의 풍경이란, 자연을 만든 이가 누구든 그분을 만난다면 예쁜 풍경을 '오늘'이라는 이름으로 선물해 줘서 고맙다고 꼭 말하고 싶다. 지금 이 순간이 너무 아름답다. 오늘 낮에 본 이 그림 같은 풍경은 평생 잊고 싶지 않다.


그렇게 보호병동에서 하루를 버티며 써 내려간 일기 속 나는 여전히 미숙하고 흔들렸다. 그 흔들림이 낯선 것은 아니었다. 임산부로 병동 복도를 걷던 나는 문득 5년 전, 첫 입원 때와 마주했다. 2021년의 내가, 2016년의 나를 불러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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