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주의 시작

by 포마람

2016년, 회사 일로 바쁜 와중에 결혼을 준비했다. 모든 직장인이 그렇듯 나도 회사에서 일을 하며 웨딩플래너의 전화를 받았다. "네, 드레스는 첫 번째 걸로 최종 정했고요, 메이크업은 말씀해 주신 업체로 할게요." 결혼 관련해서 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 같았다. 점심시간에는 웨딩홀 계약서와 견적서를 비교했다. 밤에는 웨딩 반지와 신혼여행지 사진을 들여다보다가 깊은 한숨을 내쉬곤 했다. 회사에 다니느라 주중에 못 잔 잠을 주말에는 10시간씩 몰아서 자려고 했다. 결혼한다고 쉬지도 못했다.


일을 하면서 남들 하는 만큼 다 해야 하는 결혼이 버거웠다. "왜 다들 결혼을 인생의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고 말하는 걸까? 나는 왜 축하받는 자리에 서는데도 숨이 막히는 걸까?" 빨리 결혼식이 끝나고 신혼여행지에서 아무 생각 없이 쉬고 싶었다. 왜 9개월 동안이나 결혼 준비를 하게 된 건지 후회했다.


지금의 남편인, 당시 남자친구와 둘이 알콩달콩 미래를 그렸다. 그렇지만 결혼을 준비하는 과정이 늘 밝지만은 않았다. 주변에 들려오는 소리도 듣기 싫었다. "돈 많은 남자와 결혼해야 편해." "명품백 하나 정도는 신혼 때 준비해야지." "신혼여행은 무조건 휴양지로 가야 하지 않아?" 남의 결혼에 감 놔라 배 놔라 뭐 그리 관심이 많은 건지. 무엇이 맞는지, 누가 정답을 알려주길 바랐다.


남자친구와 데이트하던 어느 날, 나는 그에게 말했다. "결혼할 때 명품백 못 사면 평생 못 산대." 농담처럼 꺼낸 말이었지만, 남자친구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누가 그래? 왜 꼭 결혼할 때 그런 걸 다 해야 하는데? 난 이해가 안 돼." 남자친구의 말에 속이 상했다. "필요할 때 그때 언제든 사면되지, 꼭 결혼할 때 살 필요는 없잖아."라며 다정하게 말해 주길 원했다. 그의 단호한 현실 감각은 내 마음을 더 외롭게 했다. 솔직히 말하면, 주변 소리가 싫으면서도 흔들렸다. 나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명품백 하나쯤은 갖고 싶었다. 그보다 더 간절했던 건, 내 마음을 이해해 주는 남자친구의 한마디 위로였다.


남자친구와 만나는 주말에는 결혼 문제로 다투고 회사에서는 업무에 치이는 삶이 지속됐다. 결혼 준비의 압박이 사라지기도 전에 회사 스트레스가 나를 덮쳤다.


5년 차 직장인의 삶은 늘 비슷해서 어떨 때는 지루했다. 아침에 테이크 아웃 커피를 마시며 출근하지만 어제의 피로가 풀리지는 않았다. 부장님 이하 동료들과 회의실에 앉아 고개를 끄덕이며 "네 알겠습니다."를 반복했다. 점심은 항상 근처 식당에서 정해진 메뉴를 먹었다. 오후에는 상사의 지시에 "네, 처리하겠습니다."라는 말로 답하며 업무를 이어갔다. 회사에서 새로운 업무를 시도하는 것은 있을 수 없었다. 매일같이 쌓여가는 업무를 처리하는 데만 해도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르게 버티고 버티다 저녁 6시가 되면 퇴근했다.


그날도 특별할 것이 하나도 없는 평범한 하루였다. 여느 때처럼 회사로 출근했다. 평소 주중에는 늘 잠을 몇 시간밖에 자지 못했다. 덕분에 회사에 다니면서 지각 한 번 한적 없었고 늘 제일 먼저 회사에 도착했다. 출근입력을 오전 10시까지 해야 하는데 무슨 정신이었는지 놓치고 말았다. 담당자에게 말했더니 공문을 쓰라는 답변이었다. 어디에 물어봐도 메신저로 요청하면 되지, 공문을 쓰라고 한 적은 없다고 했다. 정식 업무지침이 아니었던 것이다. 나는 과도한 업무 지시에 반발했다. "지금까지 메신저로 다 해줬는데 왜 안 된다는 건가요?" 결국 공문을 쓰고 퇴근한 나는 혼자 식당에서 쓰디쓴 소주를 마셨다. 나는 항상 업무를 잘한다고 인정받고 있다고 생각했다. 오늘의 업무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집에 왔다. 잠은 오지 않았다. 업무의 압박은 낮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와서도 공문 한 장이 떠올랐다. 애초에 내가 잘못한 것은 맞다. 오전 10시까지 업무 처리를 했으면 문제가 없는 거였다. 나는 지금까지 출근업무를 단 한 번도 잘못 입력한 적이 없었다. 딱 한 번 실수했는데 공문까지 쓰라니. 다른 사람들에게는 호의적인 담당자가 나에게만큼은 부당하게 대우하는 것이 좀처럼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억울함과 분노가 가슴 깊은 곳에서 끓어올라 잠이 자꾸만 달아났다. 밤을 꼴딱 새운 나는 어김없이 회사에 일찍 갔다. 새벽 공기는 차갑고 머릿속은 이상하게 뜨거웠다. 눈꺼풀은 무겁지 않았다. 어느 순간, 불면 뒤에 오는 각성이 에너지라고 착각했다. 생각들이 폭죽처럼 터져 나왔고 폭주기관차 같기도 했다. 더 많이 일하고, 더 많이 말하고, 더 멀리 달려갈 수 있다고 믿었다.


친한 동료들과 만났다. 내 분한 이야기를 하는데 뭔가 조금 이상했다. 동료들 말에 집중이 잘 되지 않았다. 그들의 말은 멀리 메아리처럼 들렸고, 오직 내 목소리만 또렷하게 귀에 꽂혔다. 자꾸만 말을 끊고 내 말만 하기 바빴다. 말이 많아지고 빨라졌다. 평상시 나답지 않은 모습이었다. 남자친구가 와서야 내 말이 끊어졌다. 나는 강하게 저항을 했고 남자친구가 온 것에 대해 불같이 화를 냈다. "자기가 여길 왜 와? 누가 오라고 했어?" 서울 한가운데서 울고불고 쓰러지고 난동을 부렸다. 나는 점점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겨우 집으로 돌아간 나는 다음날까지도 가족들을 향해 난폭한 행동을 했다. 그렇게 응급실로 실려갔다.


결혼을 3주 앞두고 결혼 준비와 다니던 회사 스트레스로 입원을 했다. 내가 왜 이렇게까지 된 걸까? 나는 그저 사랑하는 남자친구와 결혼을 준비하고 5년 차 직장인으로서 열심히 회사에 다녔을 뿐인데. 잠을 조금 덜 잤고 말을 조금 빨리 했던 게 다인데. 나는 왜 남들과 달리 조울증이란 질병을 얻은 걸까? 내가 무엇을 그렇게 잘못한 걸까?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안다. 불규칙한 수면과 과도한 말, 집중력 저하는 조증의 시작이었다는 것을.


이전 07화슬기로운 입원생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