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을 거쳐 A교수님 면담 후 입원했다. 당시에는 환자의 동의 없이 보호자 2인과 정신과 전문의 1인의 판단만 있으면 강제 입원이 가능했다. 교수님 면담 때 나는 분명 "입원... 할게요."라고 스스로 동의했지만 정신을 차려보니 폐쇄병동 안정실이었다. 내가 대답한 것은 새카맣게 잊은 채 "왜 입원을 시키냐"며 강하게 반항했다.
내가 원래 알고 있던 병동과는 사뭇 달랐다. '폐쇄병동이고 안정실이고 이게 다 뭐지?' 검은 머리를 하나로 묶은 나는 안정실 침대에 앉아 주먹으로 책상을 두드리며 면담가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제가 왜 여기에 입원해야 하죠? 저 좀 나가고 싶어요. 나갈래요." 문밖으로 나가려고, 침대에서 일어나려고 발버둥 쳤지만 나는 인생 첫 결박을 당했다.
'정신병동 입원이라니' 내 인생에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났다. 대체 왜 이런 곳에 나를 가두는지, 내가 무슨 몹쓸 병에 걸렸는지, 병식이 전혀 없는 상태였다. 간호사 말에 하나하나 반박하며 안내문을 찢어 던지고 소리를 질렀다. "악, 여기서 나가게 해 달라고!" 나는 안정실에서 조치를 받은 후 침실에 앉자마자 내가 왜 이곳에 갇혀 있어야 하는지 억울했다. 곧바로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보냈다. 여전히 조증 증상이 남아있어 모든 것에 반발심이 강했다. 과연 폐쇄병동이 감옥과 무엇이 다를까? 나는 '정상'인데 자꾸만 몸이 떨리는 약을 먹어야 하고 감시당했다.
병동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걷다가 쓰러진 적도 있었다. 모든 의료진이 달려와 나를 깨우고 일으켜 세웠다. "이수현님, 정신 좀 차려 보세요." 몸에 기운이 하나도 없고 어지러웠다. 혈압체크, 혈당검사, 심전도 검사를 하고 나서야 나아졌다. 약 기운 때문이었을까? 폐쇄병동에 대한 강한 거부 반응이었을까?
매일 오전 8시 30분, 회사에 가야 할 출근 시간만 되면 가슴이 떨렸다. 꼭 이 시간만 되면 약속이라도 하듯이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하루 종일 가만있지 못하고 안절부절못했다. 이런 일들이 몇 번 있은 후 병동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계속 반항하고 반발하고 해 봤자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추가 약을 주거나 들어가기 싫은 안정실에 가는 것이 전부였다. 결혼식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라 빨리 퇴원을 해야 했다.
나는 폐쇄병동에서 탈출하기로 마음먹었다! 지난 며칠간, 폐쇄병동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다 파악했다. 스르륵 열리는 두꺼운 철문을 열고 들어오면 꽤 긴 복도가 펼쳐졌다.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간호사' 스테이션이었다. 왼쪽은 창문들이 줄지어 있고, 창문은 물론 열 수 없다, 오른쪽은 맨 앞 안정실을 비롯하여 여러 병실로 이루어져 있었다. 환자는 간호사 스테이션까지 나올 수 없었다. 바닥에 빨간색 선이 그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 선 앞까지 와서 간호사를 불러야 했다.
전체가 하얀색으로 된 옷을 입은 '보호사'라는 분도 있었다. 그들은 환자가 이상행동을 하거나 자해할 때 진정할 수 있도록 제지한다. 또한 정기적인 소지품 검사를 하고 정신과 병동의 안전과 질서를 위해 도와주시는 분들이었다. '심리상담사', '사회복지사'는 멍하니 앉아 있는 나에게 면담을 해왔다. 평소 병동 생활에 대한 고충과 현재 고민을 들어주는 역할을 하셨다.
내 손목에 있는 식별 팔찌도 파악해야 했다. 나만 모르는 저들만의 암호 같았다. 61W-09(B)라고 적혀 있는 '이건 뭘까?' 며칠 끝에 알아냈다. 61병동, 병실번호, 침대번호였다. 그들만의 언어를 풀어낸 나는 한껏 기분이 들떴다. 나도 저들 못지않게 할 수 있는 일들로 나만의 탈출을 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리고 이 비밀작전은 아무도 알아서는 안 됐다.
어떻게 하면 이곳에서 탈출할 수 있을까? 이제는 나만의 폐쇄병동 탈출기를 실행할 때가 된 것 같았다.
<2016년, 나의 첫 폐쇄병동 탈출기>
1. 간호사와 보호사 말을 잘 따른다.
2. 밥을 골고루 다 잘 먹는다.
3. 치료 프로그램에 적극 참여한다.
4. 낮에는 절대 누워 있지 않고 병실 환자들과 잘 어울린다.
5. 가족에게 전화해서 잘 생활하고 있다고 말한다.
가장 먼저 배운 건 간호사와 보호사의 말을 잘 따르는 일이었다. 조금이라도 내가 눈치를 본다면 나에게 다가와 주사를 놓고 안정실로 데려갈 테니 말이다. 매일같이 시간마다 내 혈압을 재고 기분 문진을 하는 간호사에게 "네 오늘 기분이 아주 좋아요. 다 괜찮아요."라고 또박또박 말했다. 밥도 골고루 잘 먹었다. 밥이 정말 맛있어서 병동 생활 중에 유일하게 기다려지는 시간이었다. '남이 해주는 밥이 이 정도라면 꽤 나쁘지 않은데?' 하다가도 정신을 차리고 '아, 이건 아니지, 나는 반드시 탈출해야 해.'라며 의지를 다졌다.
아침에 일어나 세수와 양치를 하고 제일 먼저 신문을 읽었다. 점심에는 빈둥거리며 복도를 걷고 TV를 보거나 일기를 썼다. 저녁시간에도 크게 다를 게 없는 일정이었다.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똑같은 생활을 했다. 이러다 언제 탈출을 시도해야 할지 몰랐다. 비슷한 병동 생활에 빠져드는 것도 어쩌면 저들이 나를 오래도록 입원시키려는 전략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들었다.
뭔가 다른 전략이 필요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내 또래들이 많았다. 만 29세였던 나는 병실을 돌며 20대가 몇 명인지 세보았다. 잘 어울리기 위해 먼저 말을 걸고 이야기를 나눴다. 알고 보니 나와 집이 멀지 않은 언니의 손에 이끌려 활동실로 들어갔다. 그곳에서는 환자들을 위한다며 여러 치료 프로그램들이 있었다. 사회복지사들이 둘러 싸여 있는 것을 보고 직감적으로 느꼈다. 그들에게 점수를 따야 한다며 잘 부르지도 못하는 마이크를 붙잡고 춤을 추며 노래를 불렀다.
이곳은 정해진 규칙이 많았다. 아무래도 자살, 자해 위험이 있을 수 있기에 그런 것 같았다. 일주일에 2번, 1회 당 3분 동안만 가족들과 통화가 가능했다. 너무 짧은 시간이라 미리 할 말을 종이에 적어서 읽어내려가면서 통화를 하기도 했다. "보고 싶어요. 여기서 나가게 해 주세요."가 주된 통화 내용이었다. 목욕하는 것도 제약을 받았다. 혼자서는 목욕을 할 수 없고 정해진 다른 환자와 함께 해야 했다. 취침 전 먹는 약도 검사를 받아야 했다. 매일 오후 9시, 간호사 스테이션 앞으로 환자들이 줄을 섰다. 정수기에서 물을 떠 오면 간호사가 환자의 약을 확인하고 먹여준다. 다 먹고 입 안을 보여 준 후에 병실로 돌아갈 수 있었다. 밥도 병실 안에서 먹지 않고 치료 프로그램 활동실에서 다 같이 보호사의 지도 하에 먹어야 했다.
지금 떠올리면 유치하기 짝이 없지만 당시에는 나름 진지하게 철저히 준비했다. 나만의 2016년 폐쇄병동 탈출기였다. 과연 내 탈출기는 성공이었을까? 결혼을 일주일 앞두고 퇴원하던 그때는 그렇게 믿었다.
하지만 2021년 가을, 나는 다시 이곳에 와 있었다.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었다. 한 손은 남편을 붙잡고 한 손은 배 속 아이를 안은 채였다.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은 일이, 이렇게 또 일어나고야 말았다.
한 달간의 입원을 계획했지만 10일 만에 퇴원했다. 급성 조증은 어느 정도 나아졌고 무엇보다 입원 생활이 굉장히 따분했다. 퇴원 후 자유로울 줄 알았지만 초조하고 날카로운 감정은 그대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