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 없는 선택

by 포마람

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오는데 그 따스함을 잊을 수 없었다. 그대로 남겨진 살림살이며 가전, 가구들이 나를 안락하게 만들었다. 내 냄새가 남아 있는 이불, 매일같이 안고 자는 인형이 나를 반기는 것 같았다. 보호병동과는 너무 다른 환경에 잠시 적응이 되지 않았다. 책상 위에 놓인, 병실에서 적은 일기 속에 삐뚤빼뚤한 글씨가 보였다. '오늘도 손이 떨리고 심장이 두근거린다.' 그 짧은 문장이 곧 그날의 공기를 느끼게 했다. 간절하게 꿈이길 바랐지만 너무나도 또렷한 현실이었다.


남편은 내가 걱정됐는지 병원에서의 이야기를 전혀 하지 않았다. 모든 일이 다 기억나지는 않지만 내가 한 말과 행동이 어느 정도는 떠올라서 괴로웠다. 조울증이란 질병 하나로 많은 사람들에게 다 용서받을 수 있을까? 그것은 두렵고 고통스러운 질문이었다. 나는 겉으로 보기에는 일반인과 다름없었지만 작은 소음에도 날카로운 반응을 보였다. 집은 평온했지만 나는 여전히 아슬아슬했다. 앞으로 또 해야 할 일들이 숨 가쁘게 기다리고 있었다.


TV 소리와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까지도 유난히 크게 들렸다. 집은 고요했지만, 내 귀는 여전히 병동 안에 머물러 있는 듯했다. 무리한 계획을 세우거나 잠을 줄이는 행동을 하지 않으려 애썼지만, 눈앞에는 해야 할 일들이 끝없이 쌓여 있었다. 숨 돌릴 틈 없이 계획을 세우고 빠르게 해치우려는 충동, 그것도 조증의 그림자였다. 출산을 한 달여 남긴 시점에서 아기 옷을 개고 가방을 채우는 일이 나를 재촉했다. 남편은 "다 준비하지 않아도 괜찮아. 필요할 때 사도 돼. 천천히 해."라는 말로 나를 붙잡아 주었다. 하지만 노트에는 이미 내일의 할 일 목록을 채워 넣고 있었다.


가장 중요한 아이를 출산해야 하는 병원을 선택해야 했다. 여성병원이냐, 대학병원이냐를 두고 끊임없이 저울질했다. 병실에서부터 시작된 고민은 결국 집으로까지 따라왔다. 과연 어떤 병원이 나에게 안전할까? 분만 중에 조증이 올라온다면? 그렇다면 어떤 병원을 선택해야 하지? 온갖 걱정들이 머릿속을 파고들었다. '여성병원에 가면 늘 친절하게 이름을 불러주던 간호사가 있었지. 의사 선생님도 명쾌하게 답변해 주시고. 이 익숙함이 나를 지켜줄 수 있지 않을까?' 의사도 나에게 "어떤 선택을 하든지 본인이 가장 편한 곳에서 출산하시면 돼요."라고 나를 안심시켜 주셨다.


대학병원은 달랐다. 정신과와 협진이 가능했지만 무엇보다 차가운 시선이 아직도 서늘했다. 응급실에서부터 이어진 산부인과 전공의의 무심함에 너무 실망했다. 출산 과정에서 언제 어떻게 변수가 있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싫은 마음을 안고 분만실에 들어갈 이유는 없었다. 어쩌면 나는 이미 답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불안한 마음에 출산 병원을 망설였던 것은 아니었을까? B교수님도 "이곳에서 출산하시면 협진이 가능하죠. 그렇지만 이수현님 마음이 편해야 하니까요. 여성병원에서 잘 출산하시길 바랄게요." 내 선택에 긍정적인 이야기를 해주셨다.


병원을 정했다면 다음은 분만이었다. 자연분만을 해야 할까, 제왕절개를 해야 할까. 머릿속 저울은 다시 흔들리기 시작했다. 출산 할 병원을 고르는 것보다 더 옥죄는 것은 분만을 어떻게 할지였다. '내가 곧 출산을 앞두고 있구나. 이제 정말 출산을 해야 하는구나.'를 몸소 실감하게 하는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출산 병원을 여성병원으로 선택한 내게 의사는 분만 방법을 물어왔다. 모성 친화적인 병원이라 처음에는 자연분만을 선호했다. 의사는 "태아의 머리가 아래로 잘 위치해 있고 머리가 작아서 자연분만이 가능해요." 줄곧 자연분만의 가능성을 언급하셨다. 나 또한 내가 신체와 정신 모두 건강하다면 자연분만을 할 생각이었다. 나보다 아이의 건강을 위해서였다. 아이에게 조금이라도 더 도움 되는 출산을 하고자 했다. 자연스러운 것이 가장 좋다고 하지 않던가. 나도 평범한 임산부이길 바랐다.


그러나, 남편의 한마디에 모든 것이 바뀌었다. "나는 자기가 임신했을 때부터 제왕절개를 생각했어. 괜히 자연분만을 시도하다가 정신적으로 안 좋아지면 어떡해? 그냥 선택 제왕절개를 하자." 임신 때부터 이미 제왕절개를 생각했다니, 나보다 앞선 생각을 했다고 해야 할까? '아, 그렇구나. 전혀 모르고 있었네.' 예상하지 못한 남편의 말에 더 혼란스러웠다. 한편으로는 내 몸이지만 내 몸이 아닌 것 같아 묘했다. '내 몸인데 자기가 마음대로 결정하다니...' 그렇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나와 아이의 건강이 아니던가. 그것만 염두에 두며 남편의 말을 따랐다.


의사에게 제왕절개로 출산을 하겠다고 말했다. 의사는 역시나 우리의 생각에 힘을 보태줬다. 출산하기까지 약 3주가 남았다. 출산일을 정하면 모든 것이 해결될 줄 알았던 건 내 큰 착각이었다. 출산하는 날까지, 내가 얼마나 불안하고 남편을 힘들게 했는지 모른다. 곧 아이를 만날 기대감보다는 안타깝게도 초조한 마음이 더 컸다.


차디찬 수술대에 혼자 올라 배를 가르고 아이를 꺼낼 생각에 너무 무섭고 아찔했다. 자연분만이었다면 가족분만실에서 남편과 함께 할 수 있을 텐데. 나는 혼자서 수술대에 누워 정신이 없을 생각을 하니... 출산일이 다가올수록 수면이 얕아졌다. 남편은 출근 전에도, 퇴근 후에도 "괜찮아."라며 나를 매번 안아줬지만 내 마음은 점점 더 두려웠다. 출산의 카운트다운은, 설렘이 아니라 긴장의 숫자를 세는 일이었다. 다른 임산부들과는 달리 나에게 출산은 아무것도 모르는 시험 문제처럼 눈앞이 깜깜하게 다가왔다.


조리원 계약서를 버리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곳은 휴식의 공간이 아니라 또 다른 병실일지도 몰랐다. 남편도 없는 곳에서 2주간 밖으로 나갈 수 없는 환경이라면? 보호병동과 별반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하니 숨이 턱턱 막혔다. 조리원에 들어갔다가 산부인과에 입원했을 때처럼 또 다른 걱정이 밀려오면 어떡하지? 창문도 열 수 없는 감옥같이 느껴지면 어떡하지? 마음이 편치 않았는데 취소하길 잘했다. 집 주변 여러 조리원을 비교했던 지난날이 무색할 정도였지만 어쩔 수 없었다.


조리원 대신 산후도우미에 공을 들였다. 집에 3주 동안 도우미가 오셨다. 아이를 일대일로 돌봐주고 이따금씩 집 청소와 밥을 해주셨다. 산후도우미는 능숙하게 젖병에 따뜻한 물을 붓고 분유를 타셨다. 아이를 품에 안고 자장가를 불러주자 울음소리가 금세 잦아들었다. 나는 옆에서 서툴게 분유를 타며 부지런히 따라 했다. 그분이 해주신 집밥을 먹으며 아이의 울음이 뒤섞인 그 순간, '이게 나만의 조리원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스쳐 뿌듯했다.


나는 여느 출산을 한 엄마와 달랐다. 산후도우미에게 아이를 맡기고 낮에 잠을 자거나 마사지를 받을 수 있었지만 하지 않았다. 아이를 돌보는 과정도 나에게는 하나의 미션 같았다. 아이를 목욕시키는 과정과 옷 갈아입히는 모습을 자세히 기록하려고 했다. 산후도우미는 "이런 엄마는 처음 봐요."라며 내 열정에 엄지를 들어 올렸지만 나 스스로 지나치다는 것을 알았다. 나만의 조리원은 조금 다른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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