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너를 만나다

by 포마람

2021년 11월 22일. 오래도록 기다렸던 날이 밝았다. 오전 9시에 수술을 할 예정이라 이른 아침부터 분주했다. 저 해가 완전히 떠오를 때면 나는 아이와 눈 맞춤을 하고 있겠지? 희망을 가득 안은 채 병원으로 향했다. 임신기간 내내 항상 차분했던 남편은 오히려 지금은 긴장이 된다고 했다. "짜꿍이 볼 생각에 너무 떨려." 그 떨림이 나에게도 온전히 전해지는 것 같았다. 아이는 우리에게 어떤 울림을 줄까? 몹시 궁금해졌다.


차갑고 두꺼운 바늘이 내 팔등으로 밀려 들어왔다. 신기하게도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아기는 힘찬 태동을 하고 있었고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내 출산을 위해 의료진이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였다. 남편은 대기실에 있고 나는 수술실로 들어갔다. 수술실 특유의 한기가 느껴져 나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차가운 수술대 위에 누워 하반신 마취제를 맞았다. "다리가 찌릿한가요? 약 잘 들어가고 있어요." 천장에서 나를 비추는 밝은 빛, 수술 도구들을 옮기는 달그락 거리는 소리, 유난히 더 크게 들리는 내 심장소리까지... 모든 준비는 끝이 난 듯보였다. 나는 산소호흡기를 낀 채 긴 잠에 빠져 들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누군가가 나를 깨우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산모님, 눈 떠 보세요. 아기 건강하게 태어났어요." 간호사의 목소리가 흐릿하게 들려왔다. 오전 9시 27분. "응애, 응애." 분명 아기의 우렁찬 울음소리였다. 이제 막 태어난 아기는 오동통하게 얼굴이 동그랗고 아직 태지가 잔뜩 묻어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마취에 아직 취해있어 얼떨떨했다. 세상에 나오고자 노력했을 아기가 대견해 보였다. 이렇게나 한 번에 쏙 나온 듯한 아기가 벌써부터 괜히 기특했다. '남편은 어디 있을까?' 남편부터 찾았다. 내 뒤에서 머리를 감싸며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어... 짜꿍아, 그리고 자기야... 너무 고생..." 정신이 없어 잘 들리지 않았지만 이미 우는 모습에서 남편의 모든 마음이 느껴졌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임신기간 동안 힘들어하는 내 앞에서 중심을 잃지 않으려고 혼자 얼마나 분투했을지, 감히 상상이 가지 않았다.


병실에 도착해서 시계부터 봤다. 11시 30분 언저리를 가리켰다. 수술실에서 아기를 보고 약 2시간이 흐른 뒤였다. 몸은 쉽게 움직여졌지만 마취가 완전히 풀릴 때까지 누워 있어야 했다. 양발이 띵띵하게 터질 듯 부었고 출산을 했는데도 배 크기는 여전히 볼록해 보였다. 페인버스터(통증 잡아주는 국소 마취 시술)를 맞아서 수술 부위가 아프지는 않았다. 제왕절개를 두려워했던 것이 민망할 정도였다. '이 정도라면 두 번도 수술하겠는걸?' 속으로 허세가 입가에 맴돌았다. 한 치 앞을 모르는 게 인생이라지만 이때는 몰랐다. 제왕절개의 진짜 얼굴은 아직 남아 있었다는 것을.


잠시 후 깨끗하게 목욕을 한 아기가 병실로 들어왔다. 작은 투명 바구니 안에서 곤히 눈을 감았다. 나와 남편 이름 끝에 '아기'라고 적혀있었다. '아, 내가 엄마구나.'를 자각했다. 수없이 들어본 흔한 말이지만 처음으로 정말 내 것이 되었다. 수많은 친구들과 지인들이 보내 준 신생아 사진들이 스쳐 지나갔다. 내 아기를 마주하니 눈물이 날듯 뭉클했다. 누구를 닮았을까, 한참을 바라봤다. '큰 입에 축 처진 입꼬리를 보니 내 딸이 맞구나.' 생각한 동시에, 남편이 연신 웃었다. "자기 입이랑 완전 똑같아, 봐봐." 눈은 언제 뜰까, 뜬 눈이 궁금했다. 하얀 속싸개에 촘촘하게 싸여 있는 모습이 번데기처럼 보여서 피식거렸다. 주먹만 한 얼굴을 한 작은 아기가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내 뱃속에 있었다니 믿기지 않았다. 그 놀라움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첫날은 아기를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다. 다음 날이 되어서야 아기를 안아봤다. 머릿속에 그리던 신생아보다도 더 작아서 만지면 금세 부서질 것 같았다. 사람 얼굴이 이렇게 온화할 수 있다니 살면서 미처 알지 못했던 부드러운 인상이었다. 간호사에게 배운 대로 왼손은 목을 받치고 오른손은 허리를 감싸 안았다. 아기에게서 전해지는 온기가 내 팔로 스며들었다. 가볍기도 하고 묵직하기도 한 3.38kg의 무게. 그 무게가 내 삶 전체를 바꿀 수도 있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


출산의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이틀째부터 제왕절개 통증이 올라왔다. 고통 앞에 당당했던 기세는 쏙 들어가고 한없이 공손해졌다. 제왕절개, '두 번도 할 수 있겠다.'라며 내뱉었던 말은 그대로 무너졌다. 페인버스터를 제거하고 진통제를 사용하니 쑤시듯 쓰라리고 아파서 '아이고' 소리가 절로 나왔다. 피부를 절개한 부위는 내 살이 아닌 것 같았고 얼얼했다. 나아지지 않을 듯한 통증에 밤에도 계속 깨서 끙끙거리며 울먹였다.


회복을 위해 병실 복도를 걷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산후복대로 배를 감쌌다. 한 손으로는 아랫배를 받치고 다른 한 손으로는 수액걸이대를 밀며 힘없이 왔다 갔다 했다. 제왕절개 후폭풍은 실로 어마어마했다. 훗날 자궁이 빠르게 수축해서 생기는 훗배앓이도 겪었다. 심한 생리통처럼 배를 쿡쿡 찌르는 통증으로 꽤 아팠다. 시간이 약이길 바라며 시계만 쳐다봤다.


그럼에도 내가 기다리는 시간은 바로 모자동실이었다. 미소인지 울음인지 알 수 없는 표정과 내 손가락을 꼭 쥐어 오는 작은 힘, 눈을 마주치는 짧은 순간, 아주 작게 웅얼거리는 소리. 그 모든 게 나의 하루를 바꾸어 놓았다. "아이를 원하지 않았던 내가 이렇게 아이를 보며 웃고 있다니." 과거에 나는 임신과 출산이 왜 그렇게 두렵고 불안했을까? 오늘을 알았다면 과거의 나에게 꼭 알려주고 싶다. 임신과 출산이 힘들고 어렵다고 느낀 건 누가 말해준 것이 아닌, 그저 나만이 가지고 있던 생각이었다고. 나는 단순히 엄마가 된 것이 아니라 아예 다시 태어난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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