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조리원에서 지냈던 시간은 짧았지만 평안했다. 그때의 나는 뭐든지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분유 타는 손길도 능숙했고 아기에게 자랑스러운 엄마가 되려는 사람처럼 보였다. 이제 사랑하는 내 아기에게 그대로 돌려주기만 하면 됐다. 자신감이 넘쳤고 계획도 잘 세워뒀으며 실행 또한 잘 되고 있었다. 모든 것이 무사히 지나가고 있다고 여겼다. 산후도우미 제도가 막 끝나갈 시점까지는.
도우미가 떠난 집은 이상하리만큼 조용했다. 아기의 울음소리만이 신생아가 있는 집이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불과 하루 전만 해도 사람이 오가며 시끌벅적한 집이었다. 낮에 아기와 둘이 남겨지니, 나는 시들해져 갔다. 기운이 하나도 없이 아기를 바라보기만 바빴다. '어제까지만 해도 웃음이 넘쳤는데, 고작 하루 만에 이렇게 아무것도 할 수 없다니, 말도 안돼.' 아기가 울면 시간 맞춰 분유를 타서 먹이고 겨우겨우 기저귀를 갈아줬다. 그사이 집은 엉망이 됐다. 젖병이 개수대에 쌓여갔다. 휴지통은 기저귀로 넘쳐놨다. 빨래해 둔 아기 옷은 그대로 널브러져 있었다. 아기를 간신히 돌보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자꾸만 드러눕고 싶고 자꾸만 몸이 땅끝으로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아, 내가 왜 이러지?' 몸이 바닥에 붙은 것 같았다.
스물다섯, 처음 우울이 찾아왔을 때도 그랬다. 이불 위에서 하루 종일 움직이지 못한 채 천장만 바라보던 날이 떠올랐다. 대학교 4학년 2학기 기말고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내 방 침대에 털썩 주저앉아 한동안 멀뚱하게 벽만 쳐다봤다. 취업 준비를 따로 하지 않았던 나는 공식적으로 백수가 되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교까지 16년간 갈 곳이 있는 삶을 살았다. 졸업 후, 내 힘으로 인생의 길을 개척해야 한다는 생각에 막막했다. 현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시험을 보고 온 날, 머릿속이 온통 하얘지고 마음은 공허했다. 순식간에 뜨겁게 활활 타오르는 강한 햇빛이 비췄고 머리가 모조리 녹아내릴 것만 같았다. 온몸은 끈덕진 흙탕물로 뒤덮여 끝도 없이 깊은 심연의 늪으로 빨려 들어갔다. 밖으로 나가고 싶다고 아무리 외쳐도 자다가 가위에 눌린 것처럼 목소리가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넷플릭스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에서 정다은(박보영)이 우울증에 빠지는 장면과 비슷했다. 죽지 못해 사는 삶이었다. 내가 왜 이런 생각들이 드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조증이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한다면 우울증은 철저하게 나 자신을 갉아먹었다. 그때는 혼자였으니 나만 어떻게든 버티면 됐다. 지금은 소중한 아기가 있었다.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더 무겁게 나를 짓눌렀다.
매일 밤마다 약을 먹고 잤다. 몇 시인지 모르지만 아직 밖은 어두운데 아기 울음소리가 들릴 듯 말 듯했다. 새벽에 아기가 깬 모양이었다. 살짝 눈을 떴다가 다시 잠을 청해 보지만 잠이 잘 오지 않았다. 남편의 부름에 눈을 겨우 뜨는데 눈꺼풀이 무거워 잘 떠지지 않았다. 누군가 내 몸을 칭칭 감아 무겁게 내리누르는 것 같았다. 잠자리에서 일어나기가 어려웠다. 자꾸만 눈이 감기고 더 자고 싶었다.
남편은 출근시간을 앞두고 최대한 아이를 본 다음 현관문 밖으로 나갔다. "나 이제 출근해. 아기 잘 돌보고, 알았지?" 며칠 째 아기와 단둘이 시간을 보내야 했다. 머리가 멍하지만 일어나 보려고 애썼다. 휴대폰으로 아기 상태를 기록하는 앱(수유, 수면, 배변 등)을 보면서 새벽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확인했다. 어제 늦게 잔 것도 아닌데 나는 피로로 가득했다. 아기를 바라보는 내 눈빛은 초점이 점점 흐려졌다. 남편이 있는 주말도 정신이 나간 것 같았다. "지금 몇 시인지 알아? 언제까지 이럴 건데?" 채근하는 남편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지만 불쾌했다. '내가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 나도 움직이고 싶은데...' 그게 잘 안 됐다.
생후 50일도 안 된 아기는 먹고 자고 싸는 행위를 반복했다. 하품하며 졸려하면 안아서 달래며 재웠다. 이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육아였다. 오전 시간에는 유난히 나른해져 집중할 수 없었다. 아기와 눈을 맞추고 놀아주며 교감하기 어려웠다. 나는 더 이상 내 아기에게 유능한 엄마가 아닌 것 같았다. 씻을 시간도 거울을 볼 여유도 사치에 불과했다. 내 얼굴과 몸은 엉망진창인 집과 어딘가 모르게 닮아 있었다.
아기와 있으면서 가장 힘든 건, 울음소리였다. 분유도 주고 기저귀도 갈아줬다. 정서적 교감을 억지로 한다고 안아도 주고 어르고 달랬다. 아기의 울음은 멈추지 않았다. 너무 큰 자극으로 다가와 견디기 힘들었다. 나는 왜 이렇게 무능한 엄마일까? 도대체 제대로 하는 게 하나도 없었다. 산후도우미한테 배운 것들은 다 뭐지? 지난날, 열심히 배웠던 육아가 하나도 소용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괜히 그런 것들은 왜 다 적어 놔서, 노트에 적어둔 조언들이 오히려 자책감을 불러일으켰다.
어느 날은 소파에 누워 가슴에 아기를 안고 있었다. 아침부터 졸리고 온몸에 힘이 없어 움직일 수가 없었다. 겨울이었던지라 아기가 추울까 봐 이불을 덮어줬다. 아기가 눈을 감은 것을 확인하고 나도 그대로 잠에 빠져 들었다. 잠시 후 아기가 깨서 발버둥 치는 것도 모르고 나는 계속 자고 있었다. 혹시 모를 사고를 대비해 거실에 CCTV를 설치했었다. 내가 쳐져 있는 걸 이미 알고 있던 남편은 회사에서 카메라를 확인했다. 전화벨이 울렸다.
"아기 깨서 움직이는데 정신 좀 차려봐."
사소한 것에도 예민해진 나는 남편의 음성에 칼이 날아오는 것처럼 들렸다.
"잠깐 잔 건데 왜 그래?"
"잠깐 아니야. 아기 움직이면서 이불이 얼굴 덮으려고 했어. 질식이라도 하면 어쩔라 그래?" 가슴이 철렁했다.
"분유도 먹이고, 기저귀도 갈았어. 다 했어. 그런데 왜..." 화가 나고 판단이 흐려져 딴소리를 해댔다.
"그건 당연한 거야. 그것도 안 하면 그건 방치지." 할 말이 없었다.
그날 이후 남편과 함께 CCTV에 녹화된 영상을 돌려봤다. 한두 번이라고 알고 있던 내 기억과는 달리 잠인지 뭔지에 취해 힘들어하는 날이 꽤 됐다. 그때마다 아기가 위험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는데 나는 이제야 깨달았다. 제3자 입장에서 바라본 핏기 없는 내 모습은 꽁꽁 얼어붙을 정도로 충격이었다. 아기는 죄가 없는데 엄마로서 견딜 수 없는 죄책감이 들었다. 그렇지만 묵묵히 참고 견디며 아이를 돌볼 뿐이었다. 나는 여전히 무너져 있었지만 내 품에 안긴 아이의 숨결은 나를 다시 살아가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