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울증 환자지만 엄마라는 이름으로

by 포마람

우울증이 의지로 되는 문제가 아니기에 뭔가 방법을 찾아야 했다. CCTV를 돌려보며 상당히 당황스러웠고 이렇게 계속 지낼 수는 없었다. 아이도 나도 살얼음판 위를 건너는 것처럼 보였다. 남편이 퇴근하고 집에 오면 시간이 날 때마다 끊임없이 대화를 시도했다. '나한테 말 좀 걸어 달라고' 매달렸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상황은 어떤지, 어떻게 해야 내가 조금이라도 나아질지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최종적으로 내린 결론은 남편의 '육아휴직'이었다.


육아휴직이라는 큰 결단을 한 남편에게 가장 감사하다. 남편의 휴직은 단순한 선택이 아니었다. 그 시절 우리에게는 생존이었다. '행복은 크기가 아니라 빈도다.'라고 인지심리학자 김경일 교수는 말한다. 한 번의 큰 행복보다 여러 번의 작은 행복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남편이 육아휴직을 하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행복은 커다란 목표를 성취했을 때만 오는 거라고 믿었다. 무슨 일을 할 때 과정보다 결과에 집착했다. 달성하지 못한 결과로 인해 항상 불행하고 불안했다. 찰나의 행복을 느낄만한 마음적 여유가 생기지 않았다.


남편은 육아휴직을 하면서 진정으로 행복이 주는 의미를 되찾게 해 주었다. 특별하게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지 않았다. 그저 소소하고 소박하게 남편과 아이와 함께 하루를 감사하며 보냈다. 이제야 '나도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이구나.'를 알았다. 그때의 일 년을 돌이켜보면 벅찬 감동과 기쁨으로 가득하다. 내 삶 전체를 통틀어 오래도록 기억 속에 저장하고 언제든지 꺼내보고 싶을 만큼 소중한 시간이었다. 돈을 좇지 않으니 돈으로는 절대 살 수 없는 값진 시간을 얻었다. 아이에게도 아빠만이 줄 수 있는 사랑의 선물이었다.






나는 조울증 환자다. 동시에 한 아이의 엄마다. 조울증과 엄마,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단어는 늘 함께 나를 따라다닌다. 아이가 47개월인 지금도 많이 부딪히고 흔들린다. 아마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까지도. 기분이 들뜨고 고양될 때는 혹여나 아이가 알아볼까 긴장 속에서 산다. 침대에서 일어나기조차 버거울 때는 본의 아니게 아이와 잘 놀지 못한다. 조울증 환자였다면 삶을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엄마이기에 조금은 더 나은 내일을 꿈꾸며 살아간다. 좋은 엄마는 아니더라도, 우리 아이에게만큼은 '괜찮은' 엄마이길 바란다.


나는 아이를 원하지 않았다. 조울증으로 아프지 않았던 시절에도 여성의 임신, 출산, 육아에 대해 의심했다. 한 남자를 만나 가정을 꾸리며 조금씩 낡은 생각이 바뀌었다. 임신과 출산의 시간이 그제야 얼마나 아름답고 소중한지 깨달았다. 나를 바꾼 것은 결국 나 자신이었다.


모성은 저절로 생기지 않았다. 아이를 낳았다고 처음부터 예뻐 보이고 사랑스럽지는 않았다. 병마와 싸우면서도 아이를 돌봐야 하는 순간들이 고통스러웠다. 그렇지만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들이 늘수록 정이 차곡차곡 쌓여갔다. 나는 다른 엄마가 아닌 '우리 아이에게 맞는 엄마'가 되어 있었다.


무엇이든 쉽게 얻어지는 것이 없듯이 아이도 마찬가지였다. 내 질병으로 인해 아이에게 걸림돌이 되지 않으려고 부단히 애썼던 것 같다. 아이와 잘 지내보려고, 아이와의 관계를 잘 유지하고자 수차례 심리상담을 받았다. 아이에게 건넬 말을 연습했고 아이와 눈을 마주하는 법을 배웠다. 중요한 건 아이에 대한 내 마음이었다. 아이가 변하길 바라는 것이 아닌 내 마음이 달라지는 일이었다. 예쁜 말을 하도록 노력하고 아이에게 한 발 더 다가가는 진심 어린 엄마의 마음. 그런 나에게 아이는 언제나 맑은 웃음으로 안겼다. 나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많이 흔들리고 조울증과 함께 살아갈 것이다. 그렇지만 흔들려도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다. 오늘 이 다짐을 기억하며 '조울증 엄마'로서 살아간다.






나를 붙잡아준 고마운 사람들이 많았다. 대학병원 응급실 정신과 전공의. 퇴근 시간이 훌쩍 지났음에도 피곤한 기색 없이 나를 걱정해 줬다. 119 대원과 경찰분들. 그들에게 아직도 감사 인사를 전하지 못한 것이 마음에 남아 있다. A교수님은 "그건 이수현님 잘못이 아니에요."라고 단호하게 말해 주셨다. 내 죄책감을 작게나마 덜어주셨다.


B교수님. 출산 뒤 남편을 통해 건네받은 쇼핑백 속에는 작은 선물과 손 편지가 있었다. 교수님이 직접 쓴 손편지였다. "임신기간 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출산을 축하드립니다." 나는 고작 대학병원에 다니는 수많은 환자 중에 한 명일 뿐이다. 그런 나에게 교수님이 선물을 주시다니 코끝이 찡해질 만큼 감사했다. 결과적으로 건강하게 아이를 안아볼 수 있었던 건 교수님 진료 덕분이었다.


정신질환자는 본인이 가장 힘들지만 곁에서 지켜보는 가족들도 그 고통을 고스란히 나눠 가진다. 나는 극한의 조증일 때 망상과 약간의 환청을 겪었다. 이야기를 하다가도 생각이 튀어 엉뚱한 말을 했다. 전혀 있을 수 없는 상상을 사실처럼 내뱉었다. 나만 굉장히 논리적이라고 착각한다. 상대방은 '이 말이 진심일까? 아니면 병 때문일까?' 구분할 수 없으니 더 고통스럽다. 조금 더 병이 깊어져 망상에 이르게 되면 이유 없는 폭력적인 성향이 모습을 드러낸다. 앞에 있는 사람을 말로써 무차별적으로 공격한다. 평소 나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환자가 오랜 시간 가지고 있던 속마음이 전혀 아니다. 병이 만들어낸 허상이고 아픔일 뿐이다. 가족이 상처로 받아들이면 모두가 무너진다. 나는 내 곁을 지켜주었던 남편과 가족이 있었기에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남편에게 임신을 준비하자고 말한 순간부터 약을 조절하며 버텼던 시간들, 유산 가능성에 떨었던 나날들, 약을 줄이며 기분을 추적하던 하루하루, 임신 8개월에 보호병동에 누워 있던 밤들, 그리고 출산 후 다시 맞이한 우울증까지. 그 과정을 쓰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나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쓴다.'는 목표가 있었기에 멈추지 않았다. 글을 쓰며 나는 병을 더 잘 알게 되었고 내 감정에 솔직해졌다. 살아가며 힘든 순간이 또 오겠지만, 나는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희망을 본다. 그 희망은 결국 아이와 함께 살아가고자 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이제는 모든 시간을 지나, 오늘의 나를 바라본다. 나는 병을 완전히 이겨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예전처럼 두려워하지 않는다. 하루를 버티는 대신, 살아내는 법을 조금씩 배워가고 있다. 아이의 웃음에 웃고, 변하는 기분과 불안을 알아차리며, 그 안에서도 길을 찾아간다. 조울증은 내 일부이지만 더 이상 내 전부는 아니다.



나의 기록이, 누군가에게 작은 힘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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