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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C매거진/7월] 무더위가 반가워지는 달콤한 이유

“오늘의 처방전은 아이스크림입니다” 무슨 연유로 엉엉 울었는지도 기억이 안 날 만큼 어린 시절, ‘아이스크림’이란 말만 들으면 울음을 뚝 그치던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 옆에 계시던 엄마는 반대로 탐탁지 않은 표정을 지었지만요. 그리고 어른이 된 지금도 가끔씩 아이스크림은 그 어떤 걸로도 대체할 수 없는 만병통치약이 되곤 합니다. 입 안에 넣자마자 차가운 아이스크림이 주는 행복은 금세 사르르 녹아버립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이스크림이 주는 찰나의 행복을 더욱 달콤하게 느끼는 것이 아닐까요? 여러 온도의 행복 중에서 이가 시릴 정도로 차가운 행복, 아이스크림의 계절 여름입니다.      



과연 우리는 언제부터 아이스크림을 먹기 시작했을까요? 한국에서 아이스크림의 역사는 ‘얼음과자’에서부터 출발합니다. 1960년 한국 전쟁 이후로 일명 ‘아이스께끼’로 불리던 얼음과자가 등장했습니다. 얼음, 색소를 탄 물, 설탕을 섞어 만든 이 얼음과자는 지금 보면 단촐하기 그지없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 무더위에 지친 아이들에게는 목이 빠지도록 기다리던 인기 만점의 간식이었습니다. 리어카를 끈 께끼장수가 나타나면 동네 아이들은 집으로 뛰어 들어가 고무신, 녹슨 그릇 등을 갖고 나와 얼음과자와 바꿔 먹었습니다.


그 후 1963년 자동화 아이스크림 공장이 설립되면서 ‘하드’가 등장합니다. 막대 아이스크림의 대명사인 하드는 지금도 mz세대가 열광하는 레트로 음식의 대표주자입니다. 이 단순하지만 명확한 맛의 하드 아이스크림을 보고 있자면, 급변하는 유행 속에서도 세대를 관통하는 절대적인 맛은 존재하는구나 싶습니다.  



이후 1986년 명동에 배스킨 라빈스 1호점이 입점하면서 아이스크림 시장에 해외 브랜드가 본격적으로 진입하기 시작합니다. 웰빙 트렌드가 열풍이었던 2000년대는 젤라또를 비롯한 프리미엄 아이스크림이 줄줄이 출시되었는데요. 이를 계기로 아이스크림은 어린이뿐만 아니라 어른들의 입맛까지 사로잡은 디저트 메뉴로 당당하게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아이스크림은 이렇듯 우리 시대의 문화를 반영하면서 끊임없이 진화해왔습니다. 맛 이상의 특별한 의미를 담고 있지요. 그렇기에 격변하는 시대를 거쳐 온 어른들이 추억의 아이스크림을 통해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게 아닐는지요.



한국보다 아이스크림 문화가 더 일찍 자리 잡은 세계 역사를 살펴볼까요. 18세기에 ‘설탕’은 자물쇠를 채워 보관했을 만큼 귀한 식재료였습니다. 또한 아이스크림의 주재료인 달걀, 크림, 소금 등의 원재료 가격이 높았기 때문에 아이스크림은 부유한 계층만이 즐기던 사치품이었습니다. 


이후 1843년 아이스크림 제조기가 발명되면서 아이스크림의 본격적인 대중화가 이뤄집니다. 특히 고강도의 노동력이 필요했던 아이스크림 혼합물을 젓는 과정이 수월해졌는데요. 덕분에 제조시간이 비약적으로 단축되는 쾌거를 이뤘습니다. 이후 냉동제가 공급되면서 아이스크림 산업의 발전에 가속도가 붙기 시작합니다. 이전에는 아이스크림을 만들 때 주로 미국의 뉴잉글랜드나 노르웨이 등의 천연얼음을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이상고온 현상, 하천의 오염 등 어려운 문제가 있었지요. 이 후 냉동제 보급, 자동기계의 고도화가 이뤄지면서 아이스크림의 대량생산이 가능해졌습니다. 이를 계기로 아이스크림은 일상에서는 물론이고 심지어 전쟁 중에도 즐겨 먹는 음식이 되었습니다. 



전쟁의 승패는 군인들의 전투력에 좌우되곤 합니다. 그리고 이 전투력은 군인들의 높은 사기와도 긴밀히 연결되어 있지요. 미국에서는 군인들의 사기를 진작시키기 위해 급기야 아이스크림 수송선까지 제작했는데요. 미 해군 아이스크림 수송선 ‘콰르츠호(QUARTZ)’ 가 그 주인공 입니다. 


때는 바야하르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 정부가 군인들에게 제공한 여러 보급품 중에는 아이스크림도 있었습니다. 육해공군 할 것 없이 부대에 아이스크림 제조기가 비치되었고, 전쟁의 팽팽한 긴장을 달래주는 달콤한 아이스크림은 군인들에게 그야말로 효과 만점의 피로 회복제 였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일반 함선이었습니다. 무기, 식량, 승조원이 가득한 함선에 아이스크림 제조기까지 들여놓을 수 없는 상황이었죠. 결국 미국 정부는 거액의 국방비를 들여 무기 개발도 아닌 아이스크림 전용 바지선을 제작하기로 합니다. 바로 이 함선 이름이 ‘콰르츠호(QUARTZ)’로서 미해군들의 폭발적인 반응에 힘입어 훗날 12척이나 제작되었다고 합니다. 


 이 콰르츠호에 타고 있던 선원이자 아이스크림이 주는 행복을 널리 전파시키고 싶던 버튼 베스킨(Burton Baskin)과 어바인 라빈스(Irvine Robbins)는 전쟁이 끝난 뒤 자신들의 이름을 붙인 아이스크림 전문점을 내게 되는데요. 세계 시장을 주름 잡은 아이스크림 체인점 ‘배스킨 라빈스’가 바로 이렇게 탄생되었습니다.


‘아이스크림을 파는 것이 아니라 즐거움을 판다’ 는 슬로건을 지닌 배스킨 라빈스에 들어서는 순간 모두가 어린아이가 되는 것 같습니다. 톡톡 튀는 수 십 가지 맛의 아이스크림이 진열대 안에서 숨죽여 손님들의 지목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이스크림을 고르는 손님들 역시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사뭇 진지한 표정입니다. 그 날의 기분, 특별히 먹고 싶은 맛을 꼼꼼히 따지는 것은 물론 두세 가지 맛을 골라야 할 때는 아이스크림간의 조합까지 입체적으로 고려해야 합니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고 하죠. 하지만 현실 속에서의 어려운 선택과 달리 아이스크림은 무엇을 고르든 달콤한 맛으로 보답해 줄 테니 그 과정이 즐거울 뿐입니다. 



이런 천진난만한 즐거움은 아이스크림을 먹는 방법까지 진화시키나 봅니다. 최근에는 배스킨 라빈스의 다양한 아이스크림을 이색 음식과 조합하여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레시피가 유행입니다. 깔끔한 접시를 준비하고 브라우니, 머핀 등의 빵 위에 아이스크림 한 스쿱을 얹으면 마치 레스토랑에서 파는 것만 같은 근사한 디저트가 탄생합니다. 와플팬에 인절미 떡을 바삭하게 구운 인절미 와플에 아이스크림을 곁들이면 이색적인 퓨전 메뉴가 되지요. 팝콘, 그래놀라, 조리퐁 등과 같이 아이스크림과 궁합이 잘 맞는 토핑을 듬뿍 뿌리면 식감과 맛이 한층 더 풍부해집니다. 마치 하나의 장난감을 가지고 이리 저리 노는 것처럼, 유쾌함이 번지는 아이스크림 레시피는 계속해서 진화중입니다. 



여름이면 더 자주 맛보는 시원한 행복

‘배스킨 라빈스31’의 ‘31’ 숫자는 한 달 내내 매일매일 맛있는 아이스크림을 고객에게 제공하자는 의미라고 합니다. 사실 우리가 하루에 느낄 수 있는 크고 작은 행복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이 행복은 저절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스스로 발견하거나 만들어야 하는 순간도 있지요. 일상 곳곳에 놓인 행복의 선택지 중에서 여름이면 아이스크림이 자신을 선택해 달라고 손을 번쩍 듭니다. 그 달콤한 맛이 주는 행복을 알기에 외면하기가 참 어려워 오늘도 아이스크림을 하나 맛보기로 합니다.


날이 무덥기 때문에 시원한 아이스크림이 더욱 반가운 것도 있지만, 어쩌면 우리는 추억을 품고 있는 아이스크림이 건네주는 위안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요. 무더위에 몸도 마음도 쉽게 지치는 요즘, 차가운 아이스크림이 입 안에서 달콤하게 녹는 그 순간만큼은 어린 아이로 돌아가 티끌 없는 행복감을 느껴보고 싶습니다.                    







*본 글은 SPC매거진에 정기 연재중인 7월 칼럼으로

전문은 아래 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s://www.spcmagazine.com/무더위가-반가워지는-달콤한-이유_happy4_22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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