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마을금고 월간 매거진의 <인문학 식탁> 코너에
칼럼을 정기 연재하고 있습니다.
음식 속에 문학을 녹여내어 맛 뿐만 아니라
더욱 풍성하고 깊은 의미까지 담고자 합니다.
6월호 음식 주제는 '수제비'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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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마을금고 월간지 MG magazine.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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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풍당당하게 만개했던 목련나무의 꽃이 지고 있다. 하얀색의 큼지막한 꽃잎이 툭툭 떨어질 때마다 마치 하늘에서 수제비가 뚝뚝 떨어지는 것만 같다. 화창하게 빛나는 계절과 반대로 바닥에 떨어진 이 소리 없는 것들을 보고 있자니 어쩐지 마음 한 구석이 묵직해져 온다. 그건 아마도 유년시절을 그리워하며 수제비를 먹으러 가자던 한 시인이 떠올랐기 때문일 거다.
내 마음의 강가에 펄펄,
쓸쓸한 눈이 내린다는 말이다
유년의 강물 냄새에 흠뻑 젖고 싶다는 말이다
곱게 뻗은 국수도 아니고
구성진 웨이브의 라면도 아닌
수제비 먹으러 가자는 말
나 오늘, 원초적이고 싶다는 말이다
너덜너덜해지고 싶다는 뜻이다
하루하루 달라지는
도시의 메뉴들
오늘만은 입맛의 진화를 멈추고
강가에 서고 싶다는 말이다
어디선가 날아와
귓가를 스치고
내 유년의 처마 끝에 다소곳이 앉는 말
엉겹결에 튀어나온
수제비 먹으러 가자는 말
뇌리 속에 잊혀져가는 어머니의 손맛을
내 몸이 스스로 기억해낸 말이다
나 오늘, 속살까지 뜨거워지고 싶다는 뜻이다
오늘은 그냥, 수제비 어때,
입맛이 없다는 말이 아니다
당신, 오늘 외롭다는 말이다
진짜 배고프다는 뜻이다
-수제비 먹으러 가자는 말 / 이명윤
이명윤 시인이 쓴 ‘수제비 먹으러 가자는 말’의 일부다. 시인은 곧게 뻗은 국수도 아니고, 구성진 웨이브의 라면도 아닌 수제비를 먹으러 가자고 한다. 하루하루 달라지는 도시의 메뉴들 사이에서 입맛의 진화를 멈추고 싶은 순간, 그의 입에서는 엉겁결에 수제비를 먹으러 가자는 말이 튀어나온 것이다. 시인은 왜 하필 수제비를 먹으러 가자고 했을까.
수제비는 ‘손’이라는 도구 하나만 있으면 만들 수 있는 음식이다. 이 단순한 조리법 안에는 아이러니하게도 온갖 희로애락의 감정이 담겨있다. 수제비는 생계를 이어가는 것이 녹록치 않았던 서민들의 대표 음식이었다. 가진 게 손 밖에 없던 가난한 시절, 우리는 떨어지는 목련나무의 꽃잎처럼 서러움과 배고픔까지 수제비 반죽 안에 담아 뚝뚝 떼어내야 했다. 하지만 수제비 안에는 결코 처연한 사연만 담겨 있는 것은 아니다. 열 개의 손가락 끝에 사랑을 넘치게 담아 수제비 반죽을 떼던 어머니의 마음은 얼마나 깊고 따듯했던가. 또한 가족들이 오순도순 둘러 앉아 크고 작은 고사리 손들이 수제비 반죽을 뗄 때면 그 얼마나 사랑스러운 기억으로 채워졌는지. 시인이 유년시절 엄마가 직접 떼어준 수제비의 맛을 그리워하는 이유 역시 아마도 이러한 손맛에 담긴 정 때문이 아닐까. 마음속에 쓸쓸한 눈이 내린다던 그는 각박한 현대사회를 살아가며 사람에 대한 그리움을 크게 느꼈을 것이다. 그 공허함을 수제비에 담긴 정으로 채워보려고 한 건 아닐지.
무엇이든 빠르고 편리한 요즘 세상에서 직접 반죽한 수제비를 대접한다는 것은 그만큼 정성과 마음을 들였다는 표현일지도 모른다. 옛말에 '국수 잘 만드는 사람이 수제비도 못할까‘라는 속담이 있다. 그만큼 수제비는 쉽고 간단한 요리로 여겨지지만, 사실 그 안에는 숙련된 내공과 세심한 정성이 필요하다.
수제비의 맛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요소는 쫄깃한 식감이라는 데에는 모두가 동의할 것이다. 쫄깃한 반죽을 위해서는 하나의 방법밖에 없다. 바로 반죽을 오랫동안 치대는 것이다. 맛있는 수제비를 만들기 위해서는 다른 요령이 없는 것이다. 우직하게 오랫동안 치댈수록 반죽은 더욱 쫄깃해진다. 그러니 만드는 사람의 마음에 비례하여 수제비의 맛이 좋아질 수밖에 없다. 또한 수제비는 뜯는 정성에 따라 맛이 극과 극으로 갈리기도 한다. 귀찮다고 대충 큼직하고 두껍게 뜯어서 넣으면 반죽이 균일하게 익지 않는다. 말랑말랑하게 만져준 뒤에 보글보글 끓는 국물에 사랑을 담아 하나씩 똑똑 떼어내야 한다. 참으로 그 맛에서 만드는 이의 마음이 정직하게 드러나는 투명한 음식이다.
수제비는 어느 육수에나 무난하게 잘 어울린다. 계란국이든, 된장국이든, 고추장찌개든 이 쫄깃한 것이 들어가면 마치 유년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마음이 정다워진다. 오늘 식사 시간에는 말간 국을 끓여 적은 양이라도 수제비 반죽하여 넣어보는 건 어떨까. 정성을 다해 뭉친 이 새하얀 것이 누군가의 마음을 따듯하게 데워줄지 모를 일이다. / 푸드 칼럼니스트 이주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