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란스러운 마음을 달래주는 <검은깨 타락죽>

- 기상청 월간지 '하늘사랑' <이주현의 맛있는 계절> 11월 연재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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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상청 월간지 <하늘 사랑>에 격월로 푸드 칼럼을 연재합니다. <맛있는 계절> 이라는 타이틀로 계절과 날씨에 관련된 음식 이야기를 소개하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푸드 칼럼니스트 이주현 -


2023. November vol.509
< Weather talk / 맛있는 계절 >

"소란스러운 마음을 달래주는
<검은깨 타락죽> "

- 푸드 칼럼니스트 이주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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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현의 맛있는 계절 ]

소란스러운 마음을 달래 주는 ‘검은깨 타락죽’


며칠간 입술 끝부분이 발그스름해지더니 이내 보기 싫은 수포가 올라왔다. 면역력이 떨어졌다는 몸의 신호였다. 급격히 추워진 날씨와 연말이면 바빠지는 일정 탓에 이 계절에 겪는 연례행사 같은 것이었다. 병원을 찾아가니 의사 선생님은 근엄한 표정으로 무조건 안정을 취하라고 강조했다. 휴식을 취하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문제는 계속해서 부대끼는 마음이었다. 갑작스럽게 주어진 쉬는 시간에 어쩔 줄 모르는 것 같았다. 시속 300km로 빠르게 달리던 몸은 피곤하다며 잠시 주저앉았지만, 마음은 여전히 속도를 늦추지 못해 여기 저기 부딪히고 있었다.


본격적인 겨울이 시작되었음을 알려주듯 풍경은 매일 황량해졌다. 한 주가 지난 뒤, 입술 주위에 뽀얗게 올라온 새살을 확인하며 집 근처 사찰을 찾았다. 차가운 공기 속에서 미세하게 포근함이 느껴졌다. 운이 좋으면 첫 눈 내리는 사찰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기대와 달리 첫 눈은 만나지 못했다. 아쉬운 마음을 안고 사찰 곳곳의 아름다운 풍경을 눈에 담기로 했다. 조용한 사찰 안을 한 걸음씩 내딛을수록 마음이 점차 고요해졌다.


1.jpg 사진 = 이주현

차가운 날씨에 걸었더니 몸이 꽁꽁 얼어버렸다. 얼른 집에 돌아가 따듯한 음식을 해 먹고 싶어졌다. 사찰에 다녀왔으니 기왕이면 사찰 음식을 먹으면 좋겠다 싶어 ‘타락죽’을 생각해냈다. 타락(駝酪)은 우유를 가리키는 옛말이다. 물과 우유를 반씩 넣어 만든 타락죽은 대표적인 사찰 음식 중 하나인데, 일반 죽과는 또 다른 진하고 부드러운 매력이 있다. 몇 주간 힘들었을 몸과 마음에게 위로의 의미로 ‘검은깨 타락죽’을 선물하기로 했다.


그러나 첫 순서부터 난관에 봉착하고 말았다. 검은깨를 곱게 갈 믹서기가 고장 난 것이 아닌가. 어쩔 수 없이 손절구를 사용하여 수작업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드륵드륵 힘을 주어 검은깨를 갈아본다. 반복되는 행위에 슬슬 지루해지려는 순간, 신기하게도 오랜 시간 마음 한 구석에 끈질기게 자리 잡고 있었던 근심과 상념이 검은깨와 함께 갈아지는 느낌을 받았다. 팔이 무거워 질수록 마음은 가벼워지는 묘한 균형감이 채워졌다. 다음은 냄비에서 물과 찹쌀가루가 멍울지지 않도록 풀어 주는 순서이다. 수십 개의 찹쌀가루 멍울들이 마치 살아 있는 듯 교묘하게 나의 손길을 피해갔다. 쫓아가려 애를 쓸수록 냄비 속 물결에 다급함이 더해져 멍울들은 더 멀어질 뿐이었다. 결국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마음을 비우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 언젠가는 다 풀리겠지’하며 손에 힘을 푸는 순간, 따듯하게 데워진 물 안에서 찹쌀가루 덩어리들이 스스로 풀어지기 시작했다. 도저히 안 될 것만 같은 일들이 어느 순간 자연스러운 이치에 따라 탁 풀어지듯이.


2.jpg 사진 = 이주현

마치 명상을 끝낸 것처럼 마음이 평온해졌을 때 타락죽도 완성되었다. 조심스레 한 입 떠먹으니 부드럽고 고소한 맛이 입 안에 가득 찬다. 쫄깃쫄깃하게 씹히는 밥알, 부드러운 우유 그리고 고소한 검은깨가 꽤나 잘 어울리는 조합이다. 서양에는 크림과 쌀로 만든 리조또가 있다면 한국에는 자랑스러운 타락죽이 있다. 든든한 포만감과 함께 양질의 영양소가 몸 전체에 온화하게 흡수된다. 마음까지 덩달아 평화로워졌다. 잠깐이라도 쉬는 법을 몰라 우왕좌왕하던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으니, 이제야 비로소 몸과 마음이 모두 온전히 회복된 느낌이었다.


어쩌면 휴식이란 몸과 마음에 각각 다른 방식으로 취해 주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의사 선생님의 경고에 따라 절대 안정을 취하니 피곤했던 신체는 금방 기력을 찾았다. 토라지듯 급격하게 저하된 면역력도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하지만 마음은 몸을 돌보는 단순한 방법으로는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오히려 혼란스러운 마음은 아무것도 안 하고 있을 때보다 어떤 행위에 집중하고 있을 때 서서히 정리가 됐다. 침대에 누워만 있으니 온갖 잡음이 가득했던 마음이 사찰을 걷고,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요리를 하면서 조용해진 것처럼 말이다. 이를 보면 때때로 소란스러운 마음을 달래주는 것은 조용한 침묵이 아니라 무언가를 향한 몰입이 아닐는지.



<검은깨 타락죽>


▌필요한 재료

검은깨 5큰술, 불린 쌀 150g, 찹쌀가루 150g, 우유 200ml, 물 300ml, 소금 또는 설탕


▌만드는 과정

1. 검은 깨는 곱게 갈아서 준비한다.

2. 쌀은 30분 이상 물에 불려 둔다.

3. 물, 찹쌀가루를 냄비에 넣고 멍울 없이 풀어 주면서 섞다가 불린 쌀을 넣고 저어가며 끓인다. (중간불)

4. 쌀이 퍼지고 농도가 걸쭉해지기 시작하면 우유를 약간씩 부어 준다,

5. 검은깨 가루를 넣고 잘 풀어 가며 소금 또는 설탕으로 간을 한다.




* 칼럼 전문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기상청 - 자료실 - 기상간행물 - 2023년 11월호 하늘사랑 pdf 다운로드)

https://www.kma.go.kr/download_01/kma_202311.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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