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푸드 칼럼니스트이자 요리 연구가로
활동하는 이주현입니다.
이번 하반기부터
고려대학교 신문의
문화 평론 칼럼인
<타이거쌀롱>에 정기 연재합니다.
<타이거쌀롱>은 '여론연재' 면의 고정 코너로서
총 4 분야의 문화 평론가들의 시선을 담습니다.
저는 음식/요리 분야의 평론가로서
최근 각광받는 음식 문화에 관한
평론을 연재합니다.
‘빈틈없이 진한 위로’
꾸덕하고 녹진한 맛에 대한 탐구
- 푸드 칼럼니스트 이주현 -
요즘 MZ세대의 맛의 세계에서 ‘꾸덕하고 녹진한 것’을 빼놓을 수 없다. 유행의 척도를 달리는 디저트 시장에서 이제 브라우니와 쿠키는 촉촉한 대신 꾸덕해야 손님들의 눈길을 끌 수 있다. 숟가락으로 퍼 먹어야 하는 녹진한 크림 파스타나 떡볶이 역시 마니아층을 유지할 정도로 오랜 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물을 탄 듯 흐린 맛과는 정반대의 지점에 있는 이 음식들은 밀도가 높으며 입 안에서 오랜 시간을 여운을 남기다 사라진다. 이 강렬하고 진한 맛이 공허한 마음까지 채워주는 것일까. 물질적으로 가장 풍요로운 시대이지만 마음속 빈곤함은 그 어느 때보다 자주 찾아오는 요즘, 사람들은 이 꾸덕하고 녹진한 음식에서 위안을 받는다.
꾸덕하고 녹진한 맛을 지닌 해외 디저트가 몇 년 전 한국에 아주 안정적으로 정착하였다. 꽤 오랜 시간 유행을 타다가 최근 더욱 뜨겁게 사랑받고 있는 ‘카이막(kaymak)’이 그 주인공이다. 지금 ‘카이막?’하고 물음표를 던지는 대신 ‘카이막!’하고 느낌표를 떠올렸다면 미식 트렌드의 선두에 서 있는 소비자가 맞다. 꾸덕하고 달콤한 맛의 카이막은 우유를 가열해 지방층을 크림처럼 굳힌 터키 전통음식이다. 빵과 함께 곁들여 먹으면 ‘천상의 맛’을 느낄 수 있다고 하여 MZ세대에게 사랑받는 음식이다. 카이막 크림은 2019년에 백종원 씨가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해외 이색 음식으로 소개하면서 인지도가 상승했다. 초창기에는 이태원 근처의 카페, 레스토랑에서만 볼 수 있었지만, 지금은 전국 곳곳에 카이막을 판매하는 곳이 우후죽순으로 늘어나고 있다. 외식업계 중에서도 특히 디저트 시장은 온갖 트렌드가 빠른 시간 안에 급물살을 타며 변화한다. 2019년부터 시작하여 이미 여러 차례 유행이 돌고 돌았을 시간이지만, 카이막의 인기가 더욱 뜨거워지고 있는 현상은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이 천상의 맛 안에는 꾸덕하고 녹진한 것에 대한 우리의 집요한 탐닉과 그로 인해 받는 위로가 진하게 깔려 있다. 배가 고프면 우리는 든든한 식사를 찾지만 그걸 탐하지는 않는다. 그저 배고픔과 동시에 찾아오는 식욕의 이끌림일 뿐이다. 하지만 꾸덕하고 진득한 맛은 그 어떤 것보다 거칠게 탐하고야 마는 심리가 발동한다. 이 빈틈없이 녹진하고 달콤한 것을 입 안에 넣는 것을 시작으로, 입 안에서 아주 천천히 그 단맛이 퍼져나갈 때 우리의 만족도는 최고치에 달한다. 쉽게 퍼져나가서 금방 사라지고 마는 묽은 것보다 우리의 마음을 더 천천히 따듯하게 데워주는 것이기에 생소한 국적의 꼬리표를 달고도 지속적인 사랑을 받는 것이 아닐까.
게다가 카이막은 제조 시간이 길고 기술 공정이 까다로운 음식이다. 이 난이도 높은 터키의 음식이 꾸덕하고 녹진한 맛이라는 교집합으로 한국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고 있으니, 이 무적의 맛은 우리의 입맛과 영혼을 충족시키는 것을 넘어 식문화 교류의 매개체로도 그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카이막 크림의 사촌뻘인 영국의 ‘클로티드(clotted) 크림’ 또한 카이막 인기에 합승하여 트렌디한 디저트로 사랑받고 있다. 꾸덕하고 녹진한 맛이 터키와 영국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한국의 식문화 저변을 확대하는 중이다.
꾸덕하고 녹진한 것 안에는 단순히 MZ세대의 맛의 취향뿐만 아니라, 더욱 방대한 무엇이 촘촘한 형태로 연결되어 있다. 심리적인 만족감은 유행을 지속시키며, 반짝하고 사라지지 않는 유행은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는다. 그로 인한 파급효과는 경계선이 사라진 식문화의 교류로 이어진다. 다음은 또 어떤 식감과 맛이 한 세대를 덮쳐올지 모르겠으나, 꾸덕하고 녹진한 것의 거침없는 행보는 앞으로도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주현 푸드칼럼니스트·요리연구가
칼럼 전문은 고려대학교 <타이거쌀롱>에서
다시 확인할 수 있습니다. ▼
http://www.kunews.ac.kr/news/articleView.html?idxno=415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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