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상청 월간지 '하늘사랑' <이주현의 맛있는 계절> 9월 연재물
기상청 월간지 <하늘 사랑>에 격월로 푸드 칼럼을 연재합니다. <맛있는 계절> 이라는 타이틀로 계절과 날씨에 관련된 음식 이야기를 소개하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푸드 칼럼니스트 이주현 -
2023. September vol.507
< Weather talk / 맛있는 계절 >
"시간이 겹겹이 쌓인 진한 보랏빛,
<가지 덮밥> "
- 푸드 칼럼니스트 이주현 -
며칠 전,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니 현관에 웬 상자 하나가 떡 하니 놓여있다. 우리 집에서는 볼 일이 별로 없는 엄청난 크기의 택배 상자다. 이 커다란 것의 출처가 어딘지 곰곰이 생각을 하다가, 얼마 전 귀농을 한 큰외삼촌이 보낸 선물이라는 걸 알고는 반가움이 와락 밀려왔다. 상자 안에 들어있는 것들을 짐작하며 급한 마음으로 테이프를 떼어내기 시작했다. 몇 겹이나 칭칭 둘러싼 두꺼운 테이프에서 혹시나 배송 중 상자가 터지진 않을까 하는 삼촌의 따듯한 염려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한참을 걸려 테이프를 벗겨냈다. 상자를 여는 순간, 가장 먼저 묵직한 흙냄새가 매캐하게 올라왔다. 안을 들여다보니 삼촌이 시골에서 직접 키워낸 각종 채소들이 쌔근쌔근 잠들어 있다. 오랜 시간 도시 생활을 해온 삼촌이 익숙지 않은 손길로 정성껏 재배한 아이들이 먼 길을 달려 우리 집에 도착한 것이다.
마트에서 파는 채소가 깨끗하게 세수도 시키고 때 빼고 광 낸 도시 아이라면, 삼촌이 보내준 채소는 흙 밭에서 막 뛰어놀다가 엄마 손에 이끌려 와 아직 꼬질꼬질한 티를 못 벗은 개구쟁이 아이 같았다. 크기도 제각각이고, 울퉁불퉁하고 못나 보이는 채소들이었지만, 어쩐지 더 건강하고 활기차 보이는 건 기분 탓일까. 입가에 절로 미소가 띄어진 채 이 생동감 넘치는 상자 안의 작은 세상을 한참이나 구경했다.
똑같은 모양이라고는 찾기 힘든 채소 틈바구니에서 유독 선명한 색의 채소가 눈에 들어왔다. 흙 한 톨도 묻어 있지 않은 진한 보라색의 가지였다. 은은한 광택에 진한 보라빛을 띄는 길쭉한 가지를 보고 있자니, 어쩐지 잘 빠진 최신형 스포츠카가 떠올랐다. 그래, 오늘 저녁 식사 주인공은 너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채소 가족들 틈에서 가지 두어 개를 빼내 부엌으로 향했다.
햇볕이 뜨겁게 내리쬐는 계절에 가지는 제철을 맞아 맛과 영양이 무르익는다. 특히 가지는 진한 보라색의 껍질에 몸에 이로운 영양분이 농축되어 있다. 따라서 영양분을 최대한 섭취하면 깨끗하게 세척하여 껍질째 먹는 것이 좋다. 이 사실을 알면서도 평소 마트에서 구매한 가지는 잔류농약이 걱정되어 늘 껍질을 벗겨내곤 했다. 하지만 삼촌이 농약 없이 키워낸 이 가늘고 작은 가지는 그럴 걱정이 없다. 평소보다 더 힘찬 손길로 가지를 세척하니 뽀드득 소리와 함께 물방울이 경쾌하게 튕겨 나간다.
아직은 무덥지만 가을이 시작되는 이 계절에 잘 어울리는 가지 요리로 <돼지고기 가지 덮밥> 만 한 것이 없다. 가지의 매력적인 식감과 돼지고기의 든든한 포만감이 잘 어울리는 한 그릇 요리이다. 가지를 튀겼지만, 칼칼한 두반장 소스 덕분에 느끼함은 확 줄어든다. 다이어트 중이라서 칼로리가 염려된다면 튀기는 과정은 생략해도 좋다. 레시피에서 소개한 재료 외에도 냉장고에 있는 다양한 채소를 넣어보자. 양배추, 버섯, 파프리카, 양파 등을 넣으면 더 풍성하고 깊은 맛이 난다. 두부를 깍둑썰기 하여 추가하면 마파두부덮밥의 응용버전이 된다. 밥이랑 먹어도 잘 어울리지만, 면과 함께 먹어도 후루룩 부드럽게 넘어가는 감칠맛이 일품이다.
오늘 저녁의 화젯거리는 단연 가지였다. 마트에서 산 ‘그냥 가지’가 아니라 삼촌이 보낸 ‘아는 가지’이기에 가
족끼리 나눌 얘기는 넘쳐난다. 한 평생 도시에서 회사 생활을 하던 삼촌이 시골에 가서 처음 만져보는 농기구가 얼마나 낯설었을지, 그 익숙지 않은 모든 것들을 어르고 달래 농작물이라는 것이 나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땀방울을 흘렸을지. 이 가지 하나가 저절로 이렇게 진한 보라색이 되었을 리 없다. 이 작은 채소 하나에 수개월의 시간과 이야기가 겹겹이 응축되어 있는 셈이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우리 가족은 어느새 식탁 위의 가지와 교감을 나누게 된다. ‘그래, 너 참 여기 오기까지 수고했다.’ 마트에서 사온 깔끔한 채소와는 나누지 못할 애정 어린 교류이다. 이게 전부다 삼촌이 보내준 ‘아는 채소’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 진한 감칠맛을 품은 한 그릇 <돼지고기 가지 덮밥>
■ 필요한 재료
다진 돼지고기 140g, 가지 반 개, 굴소스 1TS, 생강가루 0.5ts, 파, 마늘
* 두반장 소스 : 두반장 2TS, 치킨육수 130ml, 설탕 0.5ts, 참기름, 후추, 녹말물 적정량 (녹말과 물 동량)
■ 만드는 과정
1. 기름을 두른 팬에 다진 파와 마늘을 볶아준다.
2. 돼지고기를 볶다가 굴소스, 생강가루를 넣고 고기를 익혀준다.
3. 분량의 두반장 소스를 넣어준다.
4. 가지는 한입 크기로 썰어 170도의 기름에서 튀긴다.
기름기를 제거한 가지를 넣고 30초간 익혀 완성한다.
* 칼럼 전문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기상청 - 자료실 - 기상간행물 - 2023년 9월호 하늘사랑 pdf 다운로드)
https://www.kma.go.kr/download_01/kma_202309.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