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미해져가는 것들'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봄의 제전>

- 푸드 칼럼니스트가 소개하는 클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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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맛의 스펙트럼을 확장시키는 일에 몰두한다. 푸드 칼럼니스트이자 요리 연구가에게는 익숙한 업무의 연장선이다. 그럼에도 예고 없이 툭 튀어나온 새로운 맛의 등장에는 언제나 커다란 충격을 받는다. 기존의 질서를 보기 좋게 깨부수는 맛. 그 충격이 클수록 미각의 세계는 한 뼘씩 넓어진다.


하지만 아쉽게도, 경이로웠던 첫 느낌은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휘발되고 만다. 학습력이 뛰어난 인간의 감각은 자연스레 그 맛에 동화되고 흡수해버리기 때문이다. 제 아무리 유례없던 참신한 것들도 ‘익숙함과 허용‘이라는 장벽 앞에서는 불가항력으로 처음의 신선함을 잃어버린다. A.I 라면 리셋 버튼이라도 누를 수 있을 텐데... 인간인지라 어쩔 수 없이 희미해지는 것들에 슬퍼질 때면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을 찾게 된다.

<봄의 제전>. 기존의 틀을 과감히 깬 이 곡은 1913년 발레 공연으로 처음 소개 되었다. 곡명처럼 ‘화사한 봄’과 ‘우아한 발레’를 기대하고 온 청중들은 그야말로 청천벽력 같은 혼돈에 휩싸인다. 난생 처음 들어보는 이상야릇한 서주는 시작에 불과했다. 공연이 절정에 치닫을수록 악단이 쏟아내는 요란한 음향과 청중들의 고함이 처절하게 뒤엉켰다. 마치 한 편의 혼란스러운 행위예술처럼 막을 내린 이 공연은 공연 역사상 가장 유명한 스캔들로 기억된다.

하지만 악명 높은 <봄의 제전> 역시 ‘익숙함과 허용’의 장벽을 뛰어넘지는 못한 걸까. 저항에 가까웠던 논란은 점차 수그러들기 시작했다. 거세게 항의했던 청중들은 자연스럽게 곡을 받아들였고, 연주 횟수가 거듭될수록 불편함 없이 감상했다. 파괴적일 정도로 엄청났던 충격은 대체 어디로 간 걸까. 나 역시 그 시대의 청중들이 받았던 처음의 충격을 어렴풋이 짐작해볼 뿐이다.


눈을 감고 상상해본다. 우리에게 리셋 버튼이 있어 매번 똑같은 충격을 감내해야 한다면? 그렇다면 이 곡의 운명은 달라졌을 수도 있다. 지나치게 시대를 앞서나간 참신성은 비난과 야유에 묻혀 사라지고 말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이 논란 많은 작품을 시간으로부터 지켜준 것도 역시 ‘익숙함과 허용’일 터.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 동전의 앞뒷면처럼 잃는 것과 얻는 것이 동시에 존재하는 세상의 이치를 온 몸으로 받아들일 뿐이다.


오늘도 <봄의 제전>의 기괴하고 오싹한 선율을 들으며 소멸되어 가는 것들을 따스하게 배웅해 본다.





Bring People Together With Music

롯데콘서트홀 #BPTM 캠페인

각 분야의 인플루언서들이 즐겨 듣는 클래식 명곡을 소개하는

BPTM 캠페인에 참가하여 칼럼을 작성했습니다.



- epilogue -

분야를 막론하고 적용되는 세상의 이치에

자주 웃기도, 종종 울기도 합니다.

희미해져 가는 것들을 음식과 클래식을 통해

풀어낼 수 있어 영광이었습니다 :)


즐거운 작업 제안해주신 롯데콘서트홀 감사합니다!




칼럼 원문은 롯데콘서트몰 공식 인스타그램

@lotteconcerthall 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s://www.instagram.com/p/CxosQC6yoMt/?igshid=MTc4MmM1YmI2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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