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식탁]‘한강의 기적’을 잇는 ‘삼겹살의 기적’


새마을금고 월간 매거진의 <인문학 식탁> 코너에
칼럼을 정기 연재하고 있습니다.

음식 속에 문학을 녹여내어 맛 뿐만 아니라
더욱 풍성하고 깊은 의미까지 담고자 합니다.

11월호 음식 주제는 '삼겹살' 입니다.






<인문학 식탁>

/ 푸드 칼럼니스트 이주현


‘한강의 기적’을 잇는 ‘삼겹살의 기적’


봄이 오면 향긋한 미나리와 삼겹살을 입 안 가득 넣어 먹고, 무더운 여름에는 보양식으로 삼계탕 대신 지글지글 구운 삼겹살을 찾는다. 가을의 단풍놀이 끝에는 삼겹살 회식으로 화룡점정을 찍고, 겨울에는 삼겹살에 소주잔을 부딪치며 한 해를 마무리한다. 한국인이라면 삼겹살을 먹어야 하는 이유는 사시사철 내내 차고도 넘친다. 이 정도면 삼겹살을 향한 한국인의 애정은 각별하다 못해 유난스러운 정도가 아닐까.



한국인이 즐겨 먹는 외식 메뉴에서 삼겹살을 빼놓을 수 없다. 이처럼 ‘국민 고기’로 자리 잡은데 비하여 사실 ‘삼겹살’이라는 단어를 쓰기 시작한 건 오래 되지 않았다. 지금 우리에게 사랑받는 삼겹살 구이 식당은 1970년대 후반부터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 무렵부터 삼겹살이란 단어가 나왔으며, 198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널리 쓰이기 시작했다. 국어사전에 삼겹살이 오른 것도 지금으로부터 얼마 안 된 1994년도의 일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삼겹살을 “돼지의 갈비에 붙어 있는 살로 비계와 살이 세 겹으로 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고기이다. 비슷한 말로는 세겹살이라 한다.”고 정의하고 있다.


그렇다면 과거에는 삼겹살이 없었던 걸까?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돼지고기를 먹긴 하였으나, 지금과 같은 삼겹살은 없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우리 선조들은 돼지고기를 그다지 즐겨 먹지 않았다. 오죽하면 “여름에 먹는 돼지고기는 잘 먹어야 본전”이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였다. 여러 선입견이 있던 탓인지 돼지고기 조리법도 다른 육류에 비해 크게 발달하지 않았다. 그 후 일반 가정에는 돼지고기를 주로 삶아서 새우젓과 함께 김치에 싸 먹는 정도였다. 그러다 1960년대 후반이 되어서야 돼지고기를 구워 먹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돼지갈비 음식점들이 서울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퍼졌다. 그러다 돼지갈비 인기가 시들해질 무렵부터 대체 음식으로 지금의 ‘삼겹살 구이’가 등장한 것이다.


삼겹살이 이토록 폭발적인 인기를 끌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1960년대 이후 산업화 시대를 맞이하여 급속도로 경제가 발전하였는데, 이에 따라 육류 소비 역시 대폭 늘어났다. 이 시기만 해도 돼지고기는 쇠고기에 비해 선호도가 낮았고, 자연스레 쇠고기가 비쌀 수밖에 없었다. 결국 1970년대 정부가 쇠고기 가격 폭등을 막기 위해 돼지고기 소비 육성책을 쓰면서 서민 중심으로 수요가 점차 증가하기 시작했다. 이 때의 양돈 정책으로 돼지고기 생산이 확대되었다. 또한 이전과 달리 냄새가 안 나는 돼지고기가 생산되어 양념 조리법 대신 로스구이 방식으로 먹는 삼겹살이 본격적으로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삼겹살이 ‘국민 고기’로 자리 잡은 데에는 IMF가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회식, 외식 문화 등의 식생활 변화로 육류 소비는 증가하였는데 IMF로 주머니 사정이 안 좋아지자, 가격이 낮은 삼겹살을 찾으면서 삼겹살 열풍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삼겹살을 한국 경제 변천사를 그대로 반영한 고기라고 볼 수 있다. 힘든 상황 속에서 경제 위기를 극복할 때 우리와 함께 울고 웃으며 식탁을 지켰던 것이 삼겹살이 아닌가. 그렇기에 삼겹살은 한국인에게 음식 그 이상의 의미를 준다.


식당을 찾은 손님들은 뜨거운 불판을 앞에 두고 직접 삼겹살을 구워먹는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는다. 시끌벅적한 식당 안에서 소주 한 잔을 부딪치며 먹는 삼겹살에는 삶의 고단함을 위로하는 맛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기쁜 일은 두 배로 늘려주고, 힘든 일은 반으로 줄여주는 삼겹살은 한국인에게 변치 않는 힐링 푸드이다. ‘한강의 기적’을 잇는 ‘삼겹살의 기적’은 지금도 여전히 우리의 식탁 위에서 펼쳐지고 있다. / 푸드 칼럼니스트 이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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