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푸드 칼럼니스트이자 요리 연구가로
활동하는 이주현입니다.
오늘은 지난 11월에
안양대학교에서 진행한 특강
<음식 인문학 : 음식이 삶의 이야기가 될 때>
후기를 올려보려고 합니다 :)
안양대학교에서 준비한 MEET WEEK은
전공과목 외에 다양한 분야의 특강을
들을 수 있도록 준비한 행사인데요,
저는 음식인문학이 생소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음식인문학이란 분야가 무엇인지,
어떤 정보를 담고, 어떤 메시지를 전해주는지,
쉽고 재미있게 알 수 있도록 강의를 준비했습니다!
안양대학교는 얼마전 식품영양학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요리레시피 멘토링을 진행한 경험이 있어요,
그 때 학생들이 정말 열정적으로 따라와 주었기 때문에
이번 특강도 준비하면서 마음이 설레더라고요 :)
특강은 규모가 꽤나 큰 강당에서 진행했습니다,
식품영양학과 학생분들이 주를 이뤘고,
타전공 학생분들도 다양하게 참석해주셨어요.
본격적으로 강의를 시작해볼까요?!
평소 강의 때 제 소개는 길게 하는 편이 아니지만,
학생분들의 진로 고민에 도움이 될까하여
졸업 후부터의 저의 경력을 자세하게 풀어봤습니다!
저는 식품영양학과 - 식품공기업 기획팀 - 한국외교협회 영양사로
직장에서 경력을 쌓다가 프리랜서로 전향하여
현재는 요리연구가이자 푸드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는데요.
앞선 선례가 없기에 스스로 길을 개척해나가는
이 창의적이고 재미있는 일을 한 지도
곧 10년이 되어가네요 :)
학생들이 적성에 맞는 직업을 찾을 수 있도록
경력마다 필요했던 자격증, 업무 역량,
어떤 경험을 쌓으면 좋을지 등등을 얘기드렸어요.
본격적으로 음식인문학 강의를 시작해 봅니다.
음식 인문학이란?
인문학의 사전적 정의를 살펴보면
'인간과 관련된 근원적인 문제, 사상, 문학 등을 중심으로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기술되어 있습니다.
인문학(人文學)의 한자를 살펴봐도 사람과 문화를 다루는 학문이란 걸 알 수 있지요.
쉽게 풀이하면 결국 인문학이란 '사람이 살아가는 이야기' 정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사람이 모여 살다보면 당연히 집단마다 고유한 특징을 갖게 되는데 이것이 쌓여 '문화'를 형성하게 됩니다.
음식문화 역시 이러한 사화적 문화 현상과 밀접하게 영향을 주고 받으며 독자적인 색깔을 띄게 됩니다.
결국 '음식 인문학'이란 음식을 중심으로 둘러싼 사람이 사는 이야기라고 보면 될 것입니다.
각 시대마다 사회 배경, 가치관, 신분 차이 등에 따라 음식의 역사가 쓰여졌고,
특정한 음식문화가 형성되며 지금의 한식문화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평소 음식을 대할 때 '맛이 있는지' 또는 '건강에 어떻게 좋은지'에 대해 초점을 맞추곤 합니다.
이는 기능적인 시각으로 음식에 접근한 것인데요.
그렇다면 여기서 질문이 떠오릅니다.
음식에 대한 문화적 접근은 왜 필요할까?
사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하나의 음식을 먹을 때마다 크도 작은 문화적 선택을 거치게 됩니다.
아무리 작은 간식이라도 최소한 하나 이상의 문화적 선택을 거치지요.
강의 내용과 함께 학생들과 어제 먹은 저녁 메뉴를 떠올리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얼마나 많은 문화적 선택을 거쳤는지손가락을 하나씩 접어 숫자를 세보는 즐거운 시간도 가졌습니다 :)
프랑스의 전설적인 미식가이자 법률가인
'브리야 사바랭'의 명언입니다.
우리가 먹은 음식은 생각보다 우리에 대해 많은 것을 알려줍니다.
음식 인문학이란 분야가 왜 필요한지에 대한 대답이 될 수도 있겠네요.
나아가 음식을 기능학적인 측면으로만 바라 볼 뿐만 아니라,
사회문화적인 측면에서 연구해야 할 필요성도 알려줍니다.
이어서 음식 역사 탐구의 필요성과
음식의 역사를 읽는 다양한 방법에 대해 알아 본 뒤에
한식의 사례를 통해 더 구체적으로 살펴봤습니다.
(강의 내용은 일부분만 공개합니다.)
1. 음식과 사람
그 음식은 누가 먹었을까?
문화를 만드는 것은 사람이기 때문에
음식을 둘러싼 인간 관계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서민 반찬 '깍두기'의 짧은 역사
부자들의 김치 '보쌈김치'
우리 민족이 먹은 최초의 김치 형태는 '무짠지'였습니다. 이와 비슷한 형태인 '깍두기'는 오래 전부터 서민들의 가난한 밥상을 채워주던 반찬이었는데요. 재미있는 점은 이처럼 유구한 역사와는 다르게 깍두기에 대한 기록이 별로 남아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서민들이 늘 먹던 반찬이었기에 조리법이나 명칭을 크게 다룰 필요를 못 느낀 것이지요. 실제로 깍두기는 '각독기' 또는 '송송이'라는 엉뚱한 이름으로 불리다가 1923년이 되어서야 <조선일보>에서 깍두기의 명칭을 통일하고 담는 법을 표준화하기도 했습니다. 다소 푸대접을 받은 억울한 느낌이 없지 않죠?!
반면에, 부자들의 김치라고 불리던 '보쌈김치'는 깍두기와는 전혀 다른 대접을 받았습니다. 20세기 초반에 궁중음식으로 시작한 보쌈김치는 한양에서도 일반인은 구경조차 어려운 귀한 음식이었습니다. 조선 왕조가 멸망하면서 왕실 요리사들이 궁을 나와 고급 음식접을 개업하게 되는데요, 이 때부터 보쌈김치가 민간에 전파되기 시작합니다. 대중화된 이후에도 보쌈김치는 '개성김치'라고 불리며 개성에 사는 지식인, 상류층, 외국인들 한정된 사람들만 고급 음식점에서 먹을 수 있던 음식이었습니다. 이런 스토리를 듣고 나니 보쌈김치가 더욱 럭셔리해 보이죠?! :)
깍두기나 보쌈김치 모두 김치의 한 종류지만, 이처럼 누가 먹었느냐에 따라 다른 의미로 역사 속에 기록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마 보쌈김치가 과거와 달리 민간에서 먹기 시작했다면 그 모양새와 받는 대접이 지금과는 다른 운명으로 펼쳐지지 않았을까요?!
2. 식재료와 조리법
지금은 기피하는 쌀밥이
과거 사람들에게는 일생일대의 소원?!
지금은 평범하기 그지 없는 음식이 과거의 시대적 상황에 따라 굉장히 특별하게 취급된 경우가 있습니다. 대포적인 사례로 '쌀밥'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당시에 쌀밥은 왕, 귀족, 양반, 고관직의 높은 사람들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습니다. 서민들은 쌀밥은 커녕 잡곡반만 먹어도 잘 사는 수준이었지요. 이렇듯 쌀밥이 굉장히 귀한 음식이다보니 재미있는 현상이 벌어집니다.
<삼국유사>의 기록에 따르면 태종 김춘추의 한 끼 식사량은 '쌀 세말, 수꿩 아홉 마리' 라고 나옵니다.
쌀 1말이 8kg이니깐 한 끼에 24kg을 먹었다는 얘기지요.이 말이 안 되는 식사량은 대체 어디서 근거한 것일까요?!
쌀밥은 '권력'의 상징
당시에는 쌀밥이 아무나 못먹는 음식이다보니, 권력이자 힘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쓰였습니다.
그래서 삼국을 통일해 가장 파워가 막강했던 태종의 권력을 말도 안되는 쌀밥의 양으로 표현했던 것입니다.
쌀을 밟으면 발이 비뚤어진다.
쌀을 날리면 남편이 바람난다.
당시 서민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속담입니다.
그들에게 쌀밥은 일생일대의 소원처럼 여겨지다 보니, 쌀밥을 동경하는 것을 넘어서 외경시했던 것을 알 수 있지요.
이처럼 우리 민족에게 '쌀밥'이란 서글프면서도 민족의 근간이 되는 음식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3. 시대배경과 가치관
한 시대의 정치 상황이 고스란히 반영된 음식?!
조선시대는 권력을 잡은 양반들이 속한 당파 싸움이 굉장히 치열했던 시기입니다.
그러다보니 그 시대의 중요한 사건이 집약된 요리가 있습니다.
조선시대 권력을 사로잡던 양반들이 속한
당파의 색을 담은 탕평채
탕평채는 녹두묵에 고기 볶음, 데친 미나리, 구운 김등을 섞어 만든 묵무침입니다.
알록달록한 화려한 오방색이 특징인 요리인데요.
사실 이 고명의 색깔들은 당시에 권력을 잡았던 양반들의 당파로 알려진 서인, 남인, 동인, 북인을 대표하는 색입니다.
[ 청포묵 : 푸르스름한 흰색 -> 서인 ]
[ 붉은 고기 : 붉은색 -> 남인 ]
[ 미나리 : 푸른색 -> 동인 ]
[ 김 : 검은색 -> 북인 ]
당시에 서인이 집권하던 시기였기에 흰색의 청포묵이 주재료로 들어갔다고 합니다.
만약 다른 당파의 힘이 더 강했다면 청포묵은 지금과 다른 맛을 낼 수도 있었겠네요 :)
당시에 영조는 자신의 아들 사도세자를 귀주에 가둬 죽이는 비극적인 사건 이후로, 당파 싸움을 막고 탕평 정치를 펼치고자 신하들에게 이 탕평채를 하사했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구체적으로 한식 사례를 통한 음식 인문학을 살펴봤습니다.
이렇게 배운 내용은 단순히 지식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삶에도 적용할 수 있는 교훈으로 연결되어야 진정한 의미가 있겠지요.
과거를 공부하고, 역사를 반추하여, 현재에 적용시킬 때, 우리는 더 진보된 문화를 이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지향하는 '음식 인문학'의 최종 방향성이기도 합니다.
11월이었지만 유독 포근한 날씨에 마치 새학기처럼 설렘이 느껴진 날이었습니다.
이번 특강이 안양대학교 학생분들의 견문을 넓히는데 도움이 되고,
나아가 진로 고민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 한국일보 <이주현의 맛있는 음식 인문학>외
다양한 푸드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https://blog.naver.com/mood_cook/223339794446
https://blog.naver.com/mood_cook/2233110785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