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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일요특선다큐 촬영] 푸드칼럼니스트 이주현


안녕하세요,

푸드 칼럼니스트이자 요리 연구가로

활동하는 이주현입니다.

지난 11월에 SBS에서 방영하는 <일요특선다큐>에

푸드칼럼니스트로서 인터뷰 촬영을 하였습니다.




캐비아가 대중에게 알려지게 된 역사와 

귀족음식으로 신분상승하게 된 숨겨진 에피소드를 소개드렸습니다.

더불어 캐비아가 요즘 MZ세대에서 대중화되고 있는 현상에 대한 저의 의견도 말씀드렸어요.



영상은  총 2개로 정리해 봤습니다!




이번 회차는 <블랙 다이아몬드의 귀환 캐비아> 편으로

프랑스 현지 인터뷰부터 캐비아 요리, 양식장, 뷰티 분야까지

정말 볼거리 풍부하게 45분이 꽉 채워져 있더라구요! 

다시 보기로 보셔도 안 아까울 정도로 정말 유익할 회차입니다 :)



이전의 방송 촬영에서는 주로 한식 인문학과 관련된 내용을 다뤘는데,

이렇게 서양 음식의 재미있는 문화를 알릴 수 있어 기쁘고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




방송 전에 인터뷰지는 총 6문항으로

1시간이 넘는 시간동안 쉬지 않고 인터뷰를 했는데요,

역시 방송은 편집을 거치고 나면 굉장히 적은 분량으로 나가게 됩니다 ^^;



제가 미리 준비해간 내용은 상당히 분량이 많지만

혹시나 캐비아에 대해 공부하실 분들을 위해서 올려봅니다!

앞으로도 무궁무진하게 펼쳐질 캐비아의 활약을 기대하면서

촬영장에 계셨던 피디님, 작가님, 스탭분들 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Q1. 캐비아가 고급음식이 된 이유

현대에는 캐비어가 푸아그라, 트러플과 함께 세계 3대 진미로서 고가의 가격을 자랑합니다. 하지만 고대 로마 제국 시절만 해도 싸구려 음식으로 취급받으면서 가난한 서민들의 배를 채워주는 음식으로 여겨졌습니다. 당시에는 이 캐비어가 철갑상어를 잡으면 생기는 처치 곤란한 부산물에 불과했는데요. 사실 고대에는 철갑상어의 알 보다는 철갑상어의 고기가 굉장히 인기가 좋았습니다. 이에 중세 대부분의 유럽 왕들이 철갑상어의 소유권을 두고 신경전을 벌일 정도였지요. 따라서 철갑상어 고기는 부르는게 가격일 정도로 굉장히 비싸게 판매되었습니다. 반면에 철갑상어의 알은 지금의 인식과 다르게 찬밥 취급을 받았는데요.  철갑 상어알은 러시아를 제외한 다른 나라에서는 버리거나 동물의 먹이로 줄 정도였다고 합니다. 먹을 음식이 부족한 서민들은 이렇게 버려지는 철갑상어 알로 배를 채우곤 했습니다. 

 


< 종교적 의무를 지킬 수 있도록 도와준 캐비어 >

 캐비아는 러시아의 가난한 농민들이 종교적 의무를 지킬 수 있도록 도와준 고마운 음식이었습니다. 당시 중세 로마 시대에는 정교회의 영향력이 굉장히 강했습니다. 1년에 최대 200일 동안 육식을 금지하는 금식기간이 있었는데요, 이 때 철갑상어만이 유일하게 금식 기간에 먹어도 되는 고기로 정교회의 허가가 내려진 음식이었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러시아 농민들이 비싼 철갑상어를 먹기는 어려웠고, 대신에 훨씬 저렴한 철갑상어의 알을 먹으면서 종교적 의무를 지켜나갈 수 있었습니다. 또한 수도원에서 부활절 직전의 금식 기간에는 먹을 게 부족해지곤 했는데요. 이때 수도사들이 역시 캐비어를 찾았고, 이것이 귀족을 거쳐 황제에게까지 전해지게 됩니다. 이를 계기로 평범한 음식이었던 캐비아가 점차 신분 상승을 하게 됩니다.





Q2. 캐비아가 유럽 전역에 퍼지게 된 시기

<선사 시대>

철갑상어는 지금으로부터 약 2억 5천년 전의 선사시대의 화석으로 발견되면서 그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철갑상어의 고기만을 먹다가 약 9세기 무렵부터 페르시아인이 철갑상어의 알인 캐비어를 먹기 시작합니다. 당시에 페르시아인들은 약용 목적으로 다양한 생선의 알을 채집하였는데요. 그러다 카스피해 부근에서 철갑상어 알인 캐비어를 발견하게 됩니다, 이 당시만 해도 맛을 음미하기 보다는 캐비아에 건강에 이로운 뛰어난 약효가 있다고 믿으면서 먹었습니다. 

실제로 캐비어에는 오메가3나 지방산이 풍부해서 체내에서 세포를 재생하거나 에너지를 생성하게 도와줍니다. 또한 노화를 방지하는 효과가 있어 당대의 유럽 왕들은 젊음을 유지하는 묘약으로 캐비어를 찾았다고 합니다. 

 

캐비아는 과거 페르시아의 시(詩) 속에서 최음제로 표현되었을 정도로 정욕을 상징하는 음식으로 유명합니다. 실제로 철갑상어에는 ‘베시가’라는 골수가 있는데 이는 최음제의 성분으로 사용되기도 하지요. 아마 이 같은 효능 덕분에 캐비어가 ‘세상에서 가장 섹시한 음식’이라는 애칭이 붙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이 때부터 페르시아인들에 의해 캐비어를 소금에 절여 먹는 전통이 생깁니다. 이는 당시 중국이 잉어알을 소금에 절여 먹었던 방식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이 염장 방식 덕분에 캐비어의 짧은 보존 기간을 조금이나마 더 늘릴 수 있었습니다. 

 

< 고대 - 캐비아 요리, 러시아 차르족>

고대 페르시아인들과 그리스인들이 약용 목적으로 캐비어를 먹었다면, 본격적으로 캐비어를 요리 세계에 끌어들인 것은 바로 러시아의 차르족입니다. 러시아 궁정에서 황제를 위한 호화로운 연회를 열 때 바로 이 캐비어를 대접했는데요. 맛도 맛이지만 워낙 먹기 어려운 캐비어의 희소성 때문에 당시 미식가들만이 즐겨 먹는 귀한 음식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어느 정도였냐면 고대 로마(10세기 전후) 시기에는 캐비어가 식탁에 오를 때 꽃으로 장식한 접시에 담을 정도였고, 또한 캐비아가 식탁에 오르는 순간 악대가 팡파레를 울려 굉장히 영광스러운 순간으로 기록했다고 합니다. (로마제국 영토가 가장 넓었을 떄인 세베루스 황제때의 기록입니다.)

 

< 중세 유럽 (중세 시대 : 476년~1492년) > 

이후 중세 시대에는 캐비어가 훨씬 더 중요한 음식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특히 러시아와 페르시아에서 캐비어 생산이 늘어나면서 궁중과 귀족들 사이에서는 더욱 호화롭게 캐비어를 즐겼는데요. 캐비어가 왕실과 교황청의 정식메뉴로 지정되기도 하였습니다. 

영국에 캐비아가 전해진 것도 중세 무렵 쯤 인데요. 영국의 왕 에드워드 2세는 캐비어 맛에 푹 빠져서, 캐비어를 만드는 철갑상어를 아예 ‘왕실 물고기(royal fish)' 로 지정하였습니다. (기사 작위 수여) 그리고 철갑상어 잡으면 무조건 왕실에 바치라는 명령까지 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 어떤 나라보다 유럽에서 캐비아를 가장 즐겨 먹던 사람들은 역시 러시아 황제인 짜르와 귀족들이었습니다. 러시아 황제는 “그 해 처음 만든 신선한 캐비아는 오직 황제만이 먹을 권리가 있다”고 선언했을 정도로 캐비아에 집착했다고 합니다. 또한 러시아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와 가족들이 매일 캐비아를 한 스푼씩 먹었다는 유명한 일과가 있는데요.

마지막 황제는 자녀들에게 하루 한 숟가락씩 캐비어를 꼭 먹게 했으나 아이들이 캐비어를 먹으려 하지 않자, 요리사가 바나나를 으깨 캐비어와 섞어서 바케트에 발라 먹도록 했습니다.  이를 보면 캐비아를 먹는 것 자체가 지위와 부의 상징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8세기 19세기 무렵, 유럽의 귀족들은 캐비어를 자신의 재력을 나타내는 용도로도 활용했습니다. 캐비어는 저장이 쉽지 않은데요. 그런데도 갑작스럽게 찾아온 손님을 위해 항상 신선한 상태의 캐비어를 준비해놓는 것을 자랑으로 삼을 정도였습니다. 

 


<바투칸 - 몽골이 러시아 지배한 기간 (1240~1480)>

캐비아가 본격적으로 귀족 음식으로 자리 잡은 데에는 ‘바투 칸’이라는 인물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바투 칸은 1240년에 러시아를 지배한 몽고의 징기스칸의 손자입니다. 바투 칸이 러시아를 정복하고 그의 아내와 함께 러시아의 한 수도원을 방문하게 되는데요. 이 때 수도원에서는 그 당시에 귀한 음식이었던 철갑상어 고기를 이용한 요리와 또 철갑상어 알로 만든 디저트를 접대합니다. 바투 칸은 소금에 절인 철갑상어 알, 즉 캐비어의 묘한 맛에 매료되었고 이 때부터 캐비어는 상류층이 즐기는 귀한 음식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Q3. 캐비아의 독특한 수출법


이후 러시아를 지배하게 된 몽골인들은 중국과 유럽을 잇는 실크로드의 한 가운데서 활발히 교역활동을 벌였습니다. 14세기 무렵에는 베네치아의 상인들을 통해 러시아의 캐비아가 이탈리아로 건너가게 되었는데요, 캐비아에 대한 이탈리아인들의 반응이 굉장히 안 좋았습니다. 마치 소금과 파리와 똥을 먹는 것 같다는 기록이 있는데요, 아마도 먼 거리를 이동하는 동안 부패 방지를 위해 소금에 잔뜩 절여서 이동했을 것이고, 그럼에도 신선하지 못한 상태로 캐비어를 접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또한 캐비어가 푸대접을 받은 유명한 일화가 있는데요. 훗날 러시아가 서유럽과 교류가 활발해졌을 때, 러시아의 ‘표트르 대제’가 프랑스의 루이15세에게 러시아산 최고급 캐비어를 보냈습니다. 지금도 귀한 캐비어를 주고 받으면서 외교 전략을 펼치는 것처럼 과거에도 캐비어 외교가 이뤄졌던 셈이죠. 하지만 나이가 어렸던 프랑스 루이 15세는 익숙치 못한 캐비아 맛에 그만 베르사이유 궁전 카페트에 캐비어를 먹다 뱉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외부의 악명과는 다르게 러시아 내부에서는 여전히 캐비아가 중요한 고급 음식으로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이후 몽골이 쇠퇴하면서 러시아가 카스피해, 북해 등 풍부한 어족자원을 획득하였고, 철갑상어는 러시아의 중요한 산업 자원이 되었습니다. 


 




Q4. 품질 좋은 캐비아의 수출 방법 


캐비아는 지중해를 포함한 유라시아에서 본격적으로 산업화되기 시작하였습니다. 18세기 무렵, 프랑스가 러시아로부터 캐비아를 본격적으로 수입한 이후부터 캐비아가 널리 알려집니다. 캐비아를 유통하는데 가장 큰 영향을 준 인물이 18세기 후반의 <요아니스 바르바키스>입니다. 그는 한 때 해적이었지만, 러시아 카스피해에 있는 아스트라한에서 어업을 개발하며 러시아 정부로부터 그 능력을 인정받는데요. 당시 캐비어는 장기간 보관하기 위해서는 많은 양의 소금에 푹 절여 나무상자에 넣고 유통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아니스 바르바키스가 귀한 캐비아 알을 덜 상하게 하는 ‘참피나무 목재 상자’를 만들었고, 덕분에 신선한 상태로 더욱 먼 곳으로도 캐비어의 유통이 가능해졌습니다. 게다가 당시에 산업혁명시대로 곳곳에 철도가 깔리게 되는데요. 이를 계기로 캐비아는 날개를 달고 유럽 전역으로 뻗어나가기 시작합니다. (그의 일대기는 2012년에 영화로도 만들어졌습니다.) 




Q5. 미식의 나라 프랑스 인들에게 고급 식재료가 된 이유

 러시아 혁명을 살린 일등공신, 캐비아 

캐비아는 사실 서민들은 넘볼 수 없는 상류층만의 최고급 요리였습니다. 반대로 생각하면, 캐비아를 생산해야 하는 어부들에게는 눈물과 고통의 음식이었겠죠. 하지만 1917년 러시아에서 일어난 공산혁명은 아이러니하게도 이 캐비아 덕분에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프롤레타리아 혁명으로 러시아 황제는 쫓겨났지만, 그 과정에서 농촌은 황폐해지고 밀 생산량은 절반으로 줄어듭니다. 혁명정부는 자금이 부족했고, 당시 유럽의 다른 나라들로부터 승인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원조를 받는 것도 불가능했습니다. 수백만명의 러시아 인민들이 굶주릴 위기에 처해 있을때, 러시아를 구한 것이 바로 캐비아입니다. 

캐비아의 주 소비층이었던 귀족 계급이 혁명으로 인해 타국으로 망명을 가거나 귀족 신분을 숨기고 지내게 됩니다. 귀족들이 사라지다보니 자연스럽게 캐비아의 수요가 줄어들게 됩니다. 최고급산으로 대우받는 러시아 캐비아가 산더미처럼 쌓이게 된거죠. 다른 나라와 모든 무역 거래가 중단된 상태에서 유일하게 캐비아만 주문이 들어옵니다. 결국 혁명정부는 캐비아를 현물로 지급하면서 대량으로 밀을 수입할 수 있었습니다. 과거에는 인민의 적이었던 캐비아가 역설적으로 혁명 초기의 위기를 모면하는데 일등공신 역할을 한 셈이죠. 

재미있는 점은 아직 캐비아가 익숙치 않았던 서방 자본국가를 위해 러시아는 서방 각지에 캐비아 무료 시식회를 열었는데요. 캐비아를 한 입 먹어보고는 낯선 맛이 이상해서 뱉어버리는 사람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캐비아 시식회 때 캐비아를 뱉는 통까지 따로 준비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점차 지나면서 캐비아 맛이 서방 일반에 알려지기 시작합니다. 또 러시아에서 탈출한 반공 난민이 미국에 자리 잡게 되는데요, 이들에 의해 캐비아가 러시아 황실과 귀족들이 즐기던 고급 만찬이라는 이미지가 퍼지기 시작합니다. 이런 각고의 노력으로 캐비아의 수출 판로가 본격적으로 열리게 됩니다. 


그 당시 서방국가에서 캐비어가 가지는 의미 

 미국이나 프랑스 등에서 캐비아를 새로 접하는 사람들에게 캐비어의 비린 맛은 쉽게 익숙해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냉전시대(1945년)에  서방에서는 한동안 캐비아를 주로 양파에 곁들여 먹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캐비어 고유의 풍미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없었겠지요.  이를 보면 당시 서방에서는 캐비어의 맛을 제대로 즐겨서 먹은 것이 아니라, 새로이 부상한 자본가 계급, 즉 부르주아들에게는 캐비아가 동유럽 귀족들과 황실이 즐겨 먹는 고급음식이었기에 이를 동경하는 개념으로 캐비어를 먹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후 수십년에 걸쳐 서방에서도 역시 캐비아를 즐겨 먹는 문화가 천천히 정착했습니다. 이에 양파와 캐비아를 같이 먹던 문화는 과거의 유산으로만 남아있지요. 

 

=> 캐비아의 신분 상승에는 바로 ‘희귀성’이 한 몫을 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보존기술과 설비들이 부족했습니다. 당연히 해안가 음식을 신선하게  보관하기란 매우 어려웠겠지요. 캐비아는 자연스럽게 희귀해졌고,  귀족들의 사치품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공급량이 절대적으로 적은 캐비아는 당시 사교계층에서도 최고급 사치품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Q6. 철갑상어캐비아 개체수가 줄어드는 이유는?!

<미국 캐비어 사업>

 미국의 캐비어 산업은 1873년 뉴저지의 펜실베니아 그로브에서 미국으로 온 독일인 이민자인 <헨리 샤흐트>에 의해 개발되었습니다. 헨리 샤흐트는 전세계에 알을 유통하는 최초의 회사를 설립하였는데, 당시 철갑상어가 풍부했던 델라웨어 강을 이용하여 저렴한 가격으로 캐비아를 수출하였습니다. 

그 후,19세기가 시작될 무렵 유럽으로 수출되는 미국 캐비어의 양은 러시아에서 수출되는 양보다 많을 정도였습니다. 캐비아가 얼마나 널리 퍼졌고 가격이 저렴했냐면 당시만 해도 미국 술집에서 캐비아는 땅콩 대신에 술과 함께 제공되는 안주였다고 합니다. 캐비어의 짠맛이 술 주문량을 늘릴 수 있다고 생각하여 선정한 메뉴였겠지요. 이처럼 19세기 말까지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큰 캐비아 수출국이었습니다. 그야말로 '캐비아 붐'이라 불러도 과장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무분별한 남획과 지나친 소비 가속화로 인해 철갑상어는 거의 멸종 위기에 이르렀습니다. 1915년에 이르어 대서양 철갑상어와 흰 철갑상어의 수는 거의 멸종 위기에 이르지요.  급격한 공급 부족으로 인해 캐비아의 가격은 더욱 치솟았습니다. 이후 2006년 멸종 위기에 처한 종 거래를 규제하는 '멸종 위기에 처한 야생 동·식물 종의 국제 거래에 관한 유엔 협약(CITES)'은 철갑상어 알과 자연산 철갑상어 식품 국제 거래 자체를 금지하기도 했습니다. 





Q7. 최근 양식 기술의 발달과 젊은이들(mz세대) 사이에 고급 음식을 향유 하는 문화가 발달 하면서 캐비아가 대중에게 다시 돌아오게 된 것의 소견은?

캐비아는 지금도 굉장히 비싼 음식에 속하죠. 하지만 과거와 다른 점이 있다면, 지금 젊은층은 미식을 위한 특별한 경험이라면, 아무리 비싼 가격이라도 기꺼이 소비를 한다는 점입니다. 아마 mz세대의 소비 성향이지 않을까 싶은데요. 물건보다는 가치를 소비하려고 하는 이들에게 캐비어가 가진 유구한 역사와 문화는 비싼 돈을 내고서라도 맛보고 싶은, 희소성이 높은 가치가 아닐까 싶습니다. 


지금은 자연산 캐비아보다는 양식 캐비어를 접하기 쉽지만, 어찌되었든 캐비아는 죽기 전에 꼭 먹어야 할 음식으로 세계적으로 극찬받는 음식입니다. 한때 철갑상어의 멸종 위기로 우리의 식탁에서 다시는 못보는 줄 알았는데, 양식 기술이 발달하면서 이렇게 다시 먹을 수 있어 매우 반가운 마음입니다. 

초창기의 캐비아는 서민을 위한 대중적인 음식이었지만, 지금은 최고급 음식으로 자리 잡은 것처럼, 또 앞으로 캐비아가 우리 삶에서 어떤 의미로 변화할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 같습니다. 바다의 보석이라고 불리는 캐비어에 또 어떤 기발한 요리법과 신선한 문화가 더해질지 기대가 됩니다. 수백년의 캐비아 역사 위에 새롭게 쓰여질 또다른 이야기를 그려보면서 캐비아가 앞으로도 우리 곁에 오래도록 있어주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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