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 칼럼] 달콤한 전통의 맛, 한국의 주전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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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주현 푸드칼럼니스트입니다.

국립세종도서관 <정책이 보이는 도서관>에
칼럼을 특별 기고 했습니다.





K-컬처의 시원(始原)

달콤한 전통의 맛, 한국의 주전부리


/ 이주현 푸드칼럼니스트


한국 음식문화를 관통하는 철학이 있다. 바로 ‘약식동원(藥食同源)’이다. 약과 음식은 그 근본을 같이 한다는 뜻이다.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약이 되는 건강한 음식을 만들어 왔다. 식사는 물론이고 식사 사이에 먹는 주전부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한국의 주전부리는 곡물, 꿀, 조청, 견과류 등 자연 재료로 만든 건강한 간식이라는 특징이 있다. 우리 민족의 전통과 멋이 고스란히 담긴 주전부리는 지금도 계속해서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세대를 이어가는 한국 대표 주전부리들을 소개한다.





‘속 빈 강정의 부드러운 달콤함’

한과는 유과와 유밀과로 나눌 수 있다. 대표적인 유과가 바로 강정이다. 강정은 마치 누에고치와 모양이 비슷하다고 하여 <규합총서>에는 ‘견병(繭餠)’이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다. 입 안에 넣으면 파사삭하고 부서지는 맛이 일품이다.


강정은 만드는 방법이 꽤 까다로운 편에 속한다. 먼저 고운 찹쌀가루에 술과 꿀을 넣어 반죽하여 찐다. 그리고 다시 꿀을 조금 섞어 두께와 너비 0.5cm, 길이 3cm로 썰어 바람에 말린다. 그 다음 술에 적셔서 다시 하룻밤 재웠다가 살짝 말려 기름에 튀긴다. 마지막으로 조청에 푹 담근 후에 고물을 골고루 묻히면 완성이다. 작고 가벼운 강정 하나가 만들어지기 까지 참으로 오랜 시간이 걸린다. 우리가 잘 아는 속담에 ‘속 빈 강정’이라는 말이 있다. 겉만 그럴 듯 하고 실속이 없을 때 쓰는 말이다. 그러나 강정 입장에서 보면 억울할 수도 있다. 원래 강정은 누에고치처럼 속이 비도록 팽창시켜서 바싹 튀긴 것이 잘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만드는 과정에서도 알 수 있듯이 강정은 시간과 품이 굉장히 많이 들어간다. 섬세한 기술과 숙련도가 요구되기 때문에 왕실에서도 즐겨 먹곤 했다. 고물에 지촛물을 들인 분홍색 강정, 송홧가루로 색을 낸 노란색 강정, 계핏가루로 색을 낸 갈색 강정 등 갖가지 화려한 강정들에 한약재를 넣어 왕실의 건강 간식으로 즐겨 먹었다.

‘금지령까지 내렸던 인기 절정 약과’

유밀과는 밀가루와 쌀가루에 꿀을 넣고 반죽하여 기름에 튀긴 것이다. 대표적인 유밀과로는 약과가 있다. 약과는 통일신라시대 불교에서 제사음식으로 사용하면서 그 역사가 시작되었다. 과일이 없던 계절에 곡물의 가루와 꿀 등으로 과일 형태를 만들어 제사상에 올렸다. 그래서 한과를 과일 대용품이라는 뜻을 담아 ‘조과(造菓)’라고 부르기도 했다. 약과는 원래 대추, 밤, 나비, 물고기 등 다양한 모양이었다. 그러나 제사상에 올리기 불편하다는 이유로 지금과 같이 평평하고 네모난 형태로 변형시켰다.


유밀과는 불교의 영향으로 더욱 대중화되었다. 불교에서 부처님께 차(茶)를 올리는 ‘헌다(獻茶)의식’이 성행하면서 다과문화 역시 본격적으로 발달했다. 약과는 차와 함께 곁들여 먹는 음식으로 왕실뿐만 아니라 일반 백성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궁중약과’는 약과를 만드는 틀에 찍어서 정교한 꽃 모양으로 만든 것이고, ‘개성모약과’는 한 입 크기의 작은 사각형으로 만든 약과이다. 같은 약과더라도 이렇게 다양한 이름으로 세분화 되어있다는 것은 그만큼 약과가 대중화 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찾았다는 것을 뜻한다.


약과의 인기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 수 있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다. 바로 나라에서 약과 제조를 금하는 ‘약과 금지령’을 내렸다는 사실이다. 너도 나도 약과를 만들면서 약과의 주재료인 곡물과 꿀이 고갈 났고, 약과 가격은 폭등하게 되었다. 이에 국가재정까지 고갈된다는 판단을 내려 1192년 명종은 유밀과 대신 과일을 사용하도록 명을 내렸다. 그러나 사람은 본래 먹지 말라고 하면 더 먹고 싶어지는 법이 아닌가. 사람들은 금지령이 내려졌음에도 몰래 약과를 만들었다. 결국 1225년 나라에서 다시 유밀과 사용을 허락했다. 이후 1282년 충렬왕도 유밀과를 금지시켰다가 1296년 다시 오랜 관습이라는 이유로 사용을 허가했다. 이후로도 약과 금지령을 내렸다가 풀기를 반복했다. 시간이 흘러 조선시대에는 일반 백성이 유밀과를 사용하면 곤장 80대에 처한다는 기록까지 전해진다. 이러한 사실은 그만큼 약과의 인기가 대단했다는 반증으로 볼 수 있다.


우리가 흔히 쓰는 표현으로 “그건 약과지”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약과란 바로 이 유밀과를 뜻한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쉽게 구할 수 없는 음식은 뇌물로 쓰이기 마련이다. 당시 금지령이 내려진 시기에 약과는 대표적인 뇌물용 음식으로 꼽혔다. 그런데 시간이 점차 흐르면서 산삼이나 녹용처럼 더 귀한 음식이 등장했고, 약과의 가치는 점점 떨어지게 되었다. 그러자 고위 관리직 양반 댁에서 선물을 정리하던 노비가 약과를 발견하고는 “에이, 이건 약과네”하고 구석에 던져버렸다고 한다. 이후로 별 일 아니거나 흔한 것을 표현할 때 “그건 약과지”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한 때 국민 간식으로 여겨졌던 약과가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취급을 받게 되었으니 흥미로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씁쓸한 기분이 든다.



‘봄과 함께 찾아오는 달콤한 화전’

우리 민족은 ‘세시음식’이라 하여 계절마다 특별한 음식을 챙겨 먹었다. 특히 봄과 함께 찾아오는 삼짇날 세시풍속의 일환으로 진달래 화전을 먹었다. 화사한 분홍색의 진달래 잎이 박혀있는 화전은 봄이 오면 아녀자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간식거리였다. 여성의 외출이 어려웠던 유교 사회에서 삼짇날에 떠나는 화전놀이는 일 년에 몇 없는 공식적인 나들이였기 때문이다. 이 때 여성들은 다양한 음식을 준비하여 풍경 좋은 곳에 놀러가 봄의 정취를 만끽했다. 수많은 산해진미 중 단연코 이날의 주인공은 진달래 화전이었다.


화전은 기름에 지진 떡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래서 ‘꽃부꾸미’ ‘꽃지짐이’라는 애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민가에서는 찹쌀반죽을 얇게 펴서 진달래 꽃잎을 얹고 기름을 두른 번철 위에서 지져 만들어냈다. 왕실에서는 귀한 참기름을 듬뿍 두르고 화전을 부쳤다. 고소한 냄새가 진동을 하는데 여기에 달콤한 꿀까지 흠뻑 머금게 하니 그야말로 거부할 수 없는 맛이었다. 이 봄의 간식거리는 일반 민가 뿐만 아니라 왕실에서도 참을 수 없는 별미였다. 삼엄한 분위기의 궁궐에서는 공식적으로 화전놀이를 행할 수 없었다. 그러나 왕비와 상궁들은 궁궐 안 금단의 정원에 들어가 은밀하게 화전을 부치며 봄의 정취를 만끽하곤 했다. 이 때 예쁘게 만들어진 화전은 임금에게도 선물로 드렸다고 하니 궁궐 안의 화전놀이는 암묵적인 공식 행사가 아니었을까. 이렇게 달콤한 맛의 진달래 화전은 봄이라는 한정된 계절에만 즐길 수 있던 특별한 간식거리였다.



‘먹을수록 복이 들어오는 엿’

과거 주전부리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음식이 바로 엿이다. 먹으면 먹을수록 입안에 달콤한 맛이 가득 차는 엿. 아이들 손에 엿 하나 쥐어주면 한나절 내내 빨아먹느라 정신없던 시절이 있었다.


우리 민족이 엿을 사용한 시기는 꽤 오래 전이다. 곡류를 기름에 튀기고 꿀이나 엿을 사용하여 만든 과자류가 고려시대 기록에 자주 등장한다. 이를 미루어보아 그 이전부터 엿을 만들었으리라 추정된다. 지금처럼 기술이 발달하지 않다보니 엿을 만들 때 정성과 시간이 많이 들어갔다. 그러니 예전에는 엿을 보양음식으로 여겨 ‘복엿 먹기’라는 풍습까지 있었다. 단맛의 엿을 먹으면 일 년 내내 건강하고 맛있게 음식을 먹을 수 있다고 여겼다. 또한 복엿을 먹으면 엿가락이 늘어나는 것처럼 살림이 늘어나서 부자가 된다고 믿었다.


지금은 엿이 사탕 대용 간식으로 인식되지만, 원래는 음식을 만들 때 맛을 내기 위한 용도로 만들어졌다. 쌀을 비롯한 곡식이나 감자, 고구마, 옥수수와 같은 전분질 식품에 엿기름을 넣어 삭히게 되면 전분이 단맛의 맥아당으로 분해되어 단맛이 나게 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엿을 요리에 넣으면 단맛이 더해지면서 감칠맛이 올라갔다. 그래서 겨울철이 되면 각 가정에서는 항상 엿을 만들어 상비하였다.


워낙 대중적인 음식이다보니 각 지방에서는 고유의 특징을 담은 독특한 엿이 개발되었다. 강원도의 옥수수로 만든 황골엿, 충청도지방은 숟가락으로 떠먹는 무를 넣은 무엿, 전라도 지방의 고구마 엿, 강원도 평창지방의 쌀엿도 유명하다. 흥미로운 점은 보양식으로 취급된 엿이 있었다는 것이다. 제주도에서는 엿에다 닭이나 꿩의 고기를 넣어 만든 닭엿, 꿩엿이 유명했다. 워낙 엿이 국민 간식이다 보니 지역별로 고유한 문화로 자리 잡아 지금도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




한국 전통 주전부리에는 한과와 강정을 비롯해 다식, 약과, 엿, 떡 등이 있다. 바삭하거나 쫀득한 식감, 은은한 단맛과 다채로운 색감은 우리 전통과 멋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이러한 음식을 통해 우리 민족은 맛과 영양을 채우는 것뿐만 아니라, 나눔 문화와 전통을 공유해왔다. 음식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 주전부리들을 다시 한 번 주목하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와 문화가 달콤한 맛 안에 진하게 녹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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