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푸드칼럼니트 이주현입니다.
단국대학교 학보인 단대신문
교양코너 <맛의 멋>에
푸드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네 번째 칼럼 주제는
"디저트"입니다
초콜릿으로 뒤덮인 찐득한 디저트를 눈앞에 두고 여자가 망설이고 있다. 그런 여자를 보며 남자가 말한다. “죄책감은 소화에 좋지 않아” 과연 현명한 조언이 아닐 수 없다. 지금은 이름도 기억 안 나는, 아주 예전에 본 영화의 한 장면이었다.
달콤한 디저트는 언제나 모순되는 두 감정을 동반한다. 하나는 입 안에서 스트레스가 살살 녹는 황홀함, 또 하나는 마음을 무겁게 만드는 엄청난 칼로리에 대한 죄책감이다. 스트레스를 풀려고 먹는 음식인데 어째 푼만큼 다시 쌓이는 기분. 달콤한 맛에는 애증의 감정이 뒤섞여 있다.
소화가 되거나 말거나 어쨌든 달콤한 디저트를 포기할 수 없는 사람이 있다. 바로 내가 그렇다. 아무리 배가 불러도 달콤한 케이크 한 조각은 포기할 수 없는 사람. 그러니 늘 마음 한 구석도 불편하다. 그나마 죄책감을 줄이기 위해 쥐어짜낸 방법이 홈디저트였다. 그래도 직접 만드니 조금이나마 건강하게 먹을 수 있지 않을까. 몸도 마음도 이런 주인을 만나 바쁘고 할 일이 많다.
그 당시 내가 선택한 메뉴는 ‘바나나 플랑뵈’였다. 바나나 자체가 워낙 달콤하니 설탕과 버터같은 죄책감 유발 재료를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으리라는 얄팍한 생각이 깔려 있었다. 그러나 정작 더 심각한 문제는 따로 있었으니, 바나나 플랑뵈의 ‘끊어낼 수 없는 맛’을 간과한 것. 인간의 의지력이란 얼마나 미약한 존재인지. 그 무시무시한 중독성을 간과한 결과는 그야말로 참담했다. 한동안 바나나 플랑뵈의 블랙홀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던 나는 체중계의 바늘이 두 칸 더 앞으로 전진하는 끔찍한 광경을 마주해야 했다.
끊기 어려운 달콤함, 바나나 플랑뵈
‘플랑뵈’는 과일을 달콤한 소스와 함께 조리해 먹는 프랑스 요리이다. 주로 식후 디저트를 먹기 직전에 내는 음식이다. 하지만 ‘바나나 플랑뵈’는 바나나가 주는 포만감이 크기 때문에 메인 디저트로 삼아도 충분하다. 원래 정통방식은 센 불에서 럼주를 부어 불쇼를 하듯이 강한 화력으로 요리를 한다. 그러나 일반 가정에서는 자칫하면 화재경보기가 울릴 수 있으니 조금 더 간단히 만들어보자.
먼저 바나나 2개를 두께 1cm정도로 썰어 준비한다. 달군 팬에 설탕 4큰술, 버터 2큰술, 레몬즙 1큰술을 넣고 녹인다. 바나나, 시나몬 파우더 소량을 살짝 넣고 조심스럽게 섞어준다. 마지막으로 럼주 1큰술을 넣어 향을 낸다. 이제는 근사한 그릇에 담아 차가운 아이스크림을 곁들인다. 럼주, 아이스크림은 기호에 따라 생략 가능하며 견과류, 건과일 등 다양한 토핑을 추가해도 좋다.
이 디저트는 심하게 달아야 맛있다. 그날그날 마음가는대로 흑설탕을 듬뿍 넣어보자. 다른 정밀한 디저트를 만들 때와 달리 분량이 조금쯤 틀려도 괜찮다. 나는 스트레스를 받아 마음이 흑설탕처럼 새까매지는 날에는 망설임 없이 흑설탕을 한 숟갈 추가했다. 반대로 넉넉하게 맞던 바지가 왠지 타이트하게 느껴지면, 슬그머니 한 숟갈 정도를 덜기도 했다. 버터며, 설탕이며 양은 그리 중요치 않다. 어찌 되었건, 바나나 플랑뵈가 나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데 단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동안 나의 지루하고 피곤한 일상의 끝에는 바나나 플랑뵈를 먹는 습관이 자리 잡았었다. 어찌나 달콤하고 황홀한지 그 습관을 끊어내느라 애를 먹었다. 블랙홀처럼 새까만 흑설탕과 부드러운 바나나의 매력에 빠져 한동안 헤어나지 못할 수 있으니, 마음 단단히 먹고 바나나 플랑뵈를 만나보길 바란다. / 이주현 푸드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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