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를 배우며
온라인 글쓰기 모임에 참가했다. 글쓰기를 배워본 적이 없다. 그래서 독립서점이 진행하는 글쓰기 모임부터 신문사에서 소설가가 진행하는 유명한 에세이 강의까지 알아보고 있었다. 그러다, 독립서점 오키로북스에 온라인 글쓰기 모임이 개설되어 신청했다.
각자 글을 게시판에 올리면 참가자들이 서로 덧글로 평가 해준다. 실제 얼굴을 보면서 하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효과가 있을지 걱정됐다. 하지만 글쓰기 배우는 걸 즐겁고 장기적인 취미로 생각하니, 오히려 첫 시작으로 가볍고 좋았다.
그런데 왜 글쓰기를 안 배운 사람이 많을까. 한글을 알고 있으니, 글쓰기를 당연하고 쉽게 생각하는 것 같다. 말을 할 수 있고, 말을 문자로 옮길 수 있으니 일단 쓸 수 있다. 그러니 글쓰기는 배울 필요가 없는 일이 된다.
본인이 글이나 보고서를 못 쓴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직장에서 보지 못했다. 직장이 아니라도 마찬가지다. 학생이든 SNS에 글을 쓰는 사람이든, 다들 글 잘 쓴다는 자신감이 있다. 디지털 시대가 되고 글쓰기 플랫폼이 다양해지면서 글 쓸 일이 늘어났다. 자주 쓰기 때문에, 잘 쓴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게다가 요즘은 플랫폼마다 품앗이 성격의 좋아요 버튼이 생기면서 착각의 늪에 빠지게 된다.
아무튼 이 글쓰기 프로그램에도 선생님이 있다. 선생님은 맨 마지막에 코멘트를 달아준다. 독립출판계의 유명인 김경희 작가다. 프로그램에 샘플로 소개된 선생님의 책 ‘찌질한 인간 김경희’를 읽었다. 적을 알고 나를...이 아니라, 선생님이 궁금해서 읽었다.
책에는 스물아홉, 서른 즈음의 고민이 담겨있다. 취업과 이직. 스스로 돈을 벌어야, 먹고 살 수 있는 치열함. 반면,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편하게 사는 친구가 외제차를 선물로 받는 모습을 보는 것. 통장에 돈이 있어도, 돈 버는 일의 무거움을 알기에 간식 앞에서 망설이는 모습. 그럼에도 삶에서 종종 만족스러움을 발견하는 기쁨. 나는 그런 글들에서 저자가 삶에서 도망치지 않는 모습을 봤다.
이런 이야기들을 쓰고 남에게 내보이려면, 자기 삶을 제대로 바라보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또 거꾸로 글쓰기가 삶을 제대로 보게 해주는 도구라고 느꼈다. 글쓰기 프로그램에서 살아있는 글을 쓰려고 노력해보니, 과거의 세세한 감정과 환경을 떠올려야했다. 이십대 때 내가 푹 빠졌던 사진 찍기와 비슷했다. 사진을 찍고 전시회에 참가하며, 사람과 풍경을 항상 예민하고 세심하게 바라봤던 그 시절이 떠올랐다.
나도 이십대 때 저런 고민을 했다. 어쩌면 시절고민은 아닐까. 그러고 보면 무슨 세대라며 구분을 짓고 분석하는 것보다 이런 책을 읽는 게 더 좋다고 생각한다. 90년대 출생자만 일과 삶의 균형을 중시하는 건 아니다. 요즘, 나이 많은 팀장님들도 일보다 자기 삶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분이 많아졌다. 어쩌면 그저 시대흐름인건 아닐까.
삶을 제대로 볼 수 있게 해주는 글쓰기를 나보다 나이 어린 선생님에게 배웠다. 따지고 보면 45억년 된 지구에, 다들 온지 몇 십 년밖에 안됐다. 별 차이 없다. 올해 초 후배들에게 말 걸지 않기를 새해 목표로 삼은 건, 지금 생각해도 너무 탁월한 다짐이다.
Photo by Hannah Jacobson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