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을 이야기하는 동안 내 삶을 빼앗긴다.
나이 들수록 인생이 점점 재밌어지네요
일요일 오후. 맥도날드에 갔다. 옆자리에 육칠십 대로 보이는 여성 세분이 앉아계셨다. 맥도날드 직원이 머그컵에 담긴 커피 세잔을 그분들 자리에 가져다준다.
테이블이 워낙 가까이 붙어있어, 그분들의 대화가 강제로 들려온다. 교회 커피는 이 맛이 안 난다고 했다. 그래, 맥도날드 커피가 맛있긴 하다. 예배 후 교회에서 식사를 하고 오셨나보다.
다음 이야기는 타인들이 주인공이었다. 좋은 이야기는 아니다. 내가 1955더블버거세트를 다 먹는 동안 한 명 한 명 그 이야기에 올려졌다. 뒷담화가 인생의 큰 행복이긴 하다. 그래도 하나님을 방금 만나고 온 분들 입에서 그런 음성이 나오는 건 조금 슬프다.
젊은 연예인이 타인의 목소리에 상처받아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언론보도나 인터넷에서 하는 말들로는 그렇게 보인다. 하지만 나는 그게 진실인지 알지 못한다. 내가 그 연예인을 모르기 때문이다. 또한 한 사람의 삶이 그렇게 딱 부러지게 분석될 수 있는 건지도 의문이다.
한 사람의 삶이 그렇게 단순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의 생은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그 이면에 더 많이 존재한다. 내 자녀의 속마음도 모르는데, 동료나 이웃의 삶을 어찌 알까. 하물며 유명인의 삶은. 그래서 함부로 이야기 할 수 없다. 그리고 특별히 타인의 삶을 이야기할 이유도 없다.
82세에 아이폰 게임앱을 만들어 애플 CEO의 초대까지 받은 와카미야 마사코는 '나이 들수록 인생이 점점 재밌어지네요'에서 이렇게 말한다. '어느 교수가 그랬다'라고 하지 말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라고 조언한다. 법륜스님은 결혼하지 않는 자녀를 걱정하는 부모에게, 본인의 결혼 생활이 행복한지 묻는다. 부모는 행복하지 않다고 말한다. 법륜스님은 본인도 행복하지 않았으면서 왜 자녀에게 결혼을 강요하느냐며, 그 만큼 살았으면 삶에서 배운 게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유명인과 철학자의 이야기를 빌리지 않아도 우리는 삶에서 충분히 배울 수 있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자신에게 묻고, 자신의 삶에서 깨우쳐야 한다. 내가 타인을 이야기를 하는 동안. 내가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만 기대는 동안. 우리는 타인의 삶을 살게 된다. 내 삶을 빼앗긴다.
이 짧은 글을 쓰면서, 네 번이나 타인을 이야기 했다. 하루 중 나로 사는 시간이 얼마나 될까. 내 이야기를 하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