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 이슬아 수필집
금요일. 평일 오전 아침. 스타벅스 가는 길에 도서관에 들렀다. 일간 이슬아 수필집 을 빌렸다. 매일 한 편의 수필을 유료 독자에게 이메일로 발행하고, 그 글을 모은 책이다. 1일차를 읽고 2일차를 읽었다. 매일 매일 이렇게 농밀한 글이라니, 이 글은 꼭 돈을 내고 읽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보다도 어린 분들이 쓴 요즘의 수필들과 독립출판물은 살아 있는 글이라는 느낌을 준다. 물론 그것이 다큐가 아니라 가공된 수필이라 할지라도. 교훈도 결론도 잘 제시하지 않는다. 독자의 몫으로 남겨둔다. 유머도 있고, 글도 잘 쓴다.
대단한 사람들의 수필이 진지한 내용을 담고 있어 이해하기 어렵고, 우리처럼 작은 사람들의 글은 가벼워 읽기 쉬운 건 아니다. 많은 사회적 지위를 가진 사람들보다, 더 많이 배운 사람들보다 철저하게 문장 자체를 올바르고 리듬감 있게 쓰려했다는 느낌이 든다.
두 달 전 어느 회의에서, 외부 전문가가 문구회사와 협업하는 아이템을 설명했다. 요즘 젊은 층에게 글 쓰는 게 트렌드라고 했다. 그것이 트렌드여서든 아니든, 새로운 세대에 의해 세상은 한발씩 움직이고 있다.
기성출판과 유명작가에만 눈을 돌린 나 같은 기성세대들이 알아보지 못했을 뿐이다. 우리 조직에도 분명히 나보다 보고서 잘 쓰고, 글 잘 쓰는 후배가 있을 것이다. 그저 기회를 못 얻었을 뿐이겠지. 이런 좋은 책을 쓰는 사람들이 아주 많이 알려지지 않은 것처럼.
한참을 앉아서 책을 읽었다. 너무 큰 충격을 받았다. 어떤 사람이 되면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걸까. 삶과 나와 타인을 세밀하게 바라보는 태도. 나는 정말 이런 정도의 훌륭한 사람은 못되었구나 생각한다. 마흔에 한 생각치고는 참 철없는 생각이다.
스타벅스에서 그래도 제일 낫다는 오늘의 커피를 시켰다. 그것도 이제는 집에서 원두 갈아 마시는 것만 못 하다. 또 스타벅스의 멋진 장 테이블보다 우리 집 테이블이 훨씬 크고 멋있다. 아마 가격도 더 비쌀 것 같다. '그래 나는 저런 뛰어난 사람은 아니지만, 그런대로 나도 잘 살았네.' 하고 합리화 프로세스를 가동한다.
아무튼 카페보다 집이 좋을 정도만큼만 잘 살아온 나는, 그런 이유로 이제 카페에 잘 안 온다. 그런데 오늘은 대상포진 마지막 약을 먹는데, 밥하기가 싫어 나왔다.
대상포진에 걸렸어도 밥은 먹어야 한다. 몸에 힘이 계속 빠져서인지 오히려 평소보다 배가 자주 고프다. 몸에 아무 힘도 없는 상태가 되는데 1시간 움직이면 2~3시간 정도는 누워있어야한다. 뭘 먹으면 좀 나은 기분이 든다. 병 걸리고 살도 찔 것 같다.
다진고기를 넣고 감자를 큼직하게 넣은 카레를 만들면 고기가 많아서 별로라고하고. 오므라이스를 해주고 핫도그를 올려주면 오므라이스 먹은 건 잊고 핫도그만 먹었다고 하고. 뭐 안사다 놨냐고, 오늘 밥 뭐 먹냐고, 나는 뭐 먹냐고... 아파서 일어나기 어려웠지만, 아침부터 일어나 밥을 해서 유부초밥을 싼다. 소고기랑 채소를 볶아 치즈를 넣어 퀘사디아를 만들어 소풍 도시락을 쌌다.
그래서 오늘은 밥하기가 싫다. 스타벅스에서 머핀으로 아침을 먹고, 점심엔 라멘을 먹었다. 그래도 저녁에 또 밥을 하고, 계란말이가 잘 말아져 뿌듯하다. 왜 사나 싶기도 하고, 훌륭한 사람은 못 되었구나 싶기도 하다. 그러다 또 잘 살았다 싶기도 하다. 오락가락한다. 대상포진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