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중의 역사
키 170에 몸무게 45킬로그램. 스무 살, 군 입대를 위한 신체검사에서 받은 결과다. 형은 나에게 여자들이 꿈꾸는 수치라고 했다. 입대 후 선임들은 '살을 조금만 더 뺐으면 군대 안왔을텐데' 라고 했다. 하지만 몸무게가 더 가벼웠다면 군대 면제가 아니라 인생이 면제 될 뻔 했다.
어머니는 내가 태어나자마자 호흡기와 인큐베이터 신세를 졌다고 했다. 어떤 할머니로부터 애가 오래 못산다는 이야기도 들었다고 했다. 개근상은 나에게 존재할 수 없는 상이었다. 물론 다른 상을 탔다는 그런 이야기는 아니다.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두통, 이명, 고열, 소화불량 등 아픈 게 일상이었다.
고등학생이 되서야 기적처럼 감기도 잘 안 걸렸다. 그래도 몸무게가 늘지는 않았다. 군대 가서 규칙적인 생활과 삼시세끼로 몸무게가 늘었다. 2년 2개월 후 제대할 때 10kg이 늘어 55kg이었다.
취업하고 결혼을 했다. 그렇게 수년이 흐른 후, 내 몸무게는 65kg을 찍었다. 몇 년에 한번 씩만 측정해봤기에, 낯설고 당황스러운 숫자였다. 하지만 그 때까지도 너무 말랐다는 평가를 듣던 나는, 이제야 사람들이 보기에 적당한 몸이 되었다.
문제는 여기서 부터다. 대규모 행사를 하는 부서에 배치되었다. 밤 열시 열한시까지 야근이 계속 되었다. 야근이 끝나면 간단하게라도 늘 회식으로 마무리하는 팀이었다. 그 결과 내 몸은 75kg이 되었다. 키에 비해 과중한 무게는 몸에 많은 부담을 주었다. 살 안찌는 체질에서, 찌는 체질로 변한 것은 아닌가 싶었다.
그 무렵 첫 번째 육아휴직을 했다. 당시 요리는 못 했고, 살은 빼야했다. 1일 1식을 하기에 적합한때였다. 아침을 안 먹은 지는 오래되었으니, 아침 생략은 어렵지 않았다. 점심에 배고프면 식빵에 양배추를 올리고 케첩을 뿌려 먹었다. 저녁은 먹고 싶은 걸로, 먹고 싶은 만큼 먹었다. 앉은자리에서 피자한판에 콜라를 때리고 치즈오븐스파게티까지 먹는 식이었다.
몸은 금방 적응했다. 점심에 배고픔을 못 느끼기까지,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저녁에 아내가 퇴근하고 오면 아이를 맡기고, 이틀에 한 번 공설운동장 트랙을 걸었다. 한 시간에 6Km를 걷는, 조금 빠른 걸음의 파워워킹이었다. 이렇게 해서 열흘 만에 7kg이 빠졌고, 한 달 만에 65kg으로 체중이 돌아왔다.
복직을 하고도 습관을 유지 해, 총 2년 정도 1일 1식을 했다. 휴일에 가족들이 모였을 때는 세끼를 다 먹었다. 신기한 것은 1일 1식을 유지하고, 운동을 계속해도 저 밑으로는 체중이 내려가지 않았다. 이게 나의 적정 체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3~4년 이상 체중을 유지했다.
하지만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기 마련이다.
내 체중은 2018년 다시 휴직할 때 75kg이었다. 참으로 인간적이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오전 자유 시간에 걸었다. 컴컴한 밤에 걷는 6년 전 휴직과 전혀 달랐다. 출근과 등교의 흐름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도심을 걸으면, 알 수 없는 평온함으로 마음이 가득 찼다. 공원의 꽃, 햇빛, 수치상으로 미세먼지가 가득하다지만 쨍한 하늘.
어느 날은 라디오를 듣고, 어느 날은 그냥 아무런 생각 없이. 그렇게 휴직의 아침을 만끽하며 운동을 했다. 등이 흠뻑 젓은 채로 집에 돌아와 샤워를 했다. 음악을 듣고 커피를 마시며 오전을 보냈다. 오롯이 혼자서 몸과 마음을 쓰는 이 시간이, 내 마음을 평안하고 차분하게 만들어 주었다. 모든 것이 완벽하다.
그런데...
살이 빠지지 않는다……. 하...
6년 전 기억을 떠올리며 그깟 10kg따위를 외치고, 1일 1식과 걷기를 시작한 지 한 달 째였다. 체중계의 숫자가 전혀 변하지 않는다. 당황했다. 하지만 어차피 휴직도 1년인데, 1년 안에는 빠지겠지 하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잡았다. 다행히 1달이 지나면서 조금씩 살이 빠지기 시작했고, 어느 시점부터 급격히 체중이 하락하기 시작했다. 48일 만에 8.4kg을 감량했다. 총 두 달 정도의 시간이 흐르자 다시 65kg이 되었다.
살이 빠져 다행이지만, 체중이 미동도 않던 한 달가량도 그리 나쁘지 않은 날들이었다. 혼자서 공원과 도심의 작은 뒷산을 걸으며 여유로운 시간을 가득 누렸다. 살 빼자는 미래의 목표가 있었지만, 오늘 오전의 순간순간에서 즐거움을 느꼈다. 배고픔이 아닌 속이 편안해지는 기분 좋은 공복도 느꼈다.
우리는 현재도 살고, 미래도 산다. 지금 현재에 살기를 강조하며 아메리카노 사먹기를 아끼지 말라는 영상을 본적이 있다. 맞는 말이다. 우리는 당장 1분 뒤에 죽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미래도 산다. 혹시 모르지만 우리가 아무 일 없이, 내일도 모레도 살아 있을 수 있다. 지구가 멸망하는 것처럼 오늘에 돈과 시간과 에너지를 다 허비할 수도 없고, 영원을 살 것처럼 20년 만기 보험을 잔뜩 들 수도 없다.
나를 들뜨게 하는 미래를 그리며 천천히 걷되, 하루하루를 세밀하게 느껴야 한다는 것. 이게 휴직하고 살을 빼며 알게 된 것이다.
그리고 나이가 들수록 살이 잘 안빠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