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공부시킬 생각이 없는 아빠

초등학교 1학년, 학부모 상담

by 무진

“아유, 혹시 무슨 문제가 있으신가? 했어요. 학부모 상담 때 부모님만 안 오셔서”


1학년 딸의 공개수업을 참석하러 학교에 갔다. 1학기 상담 때 학부모 중 우리만 오지 않았다며, 우리 부부를 제대로 처음 본 선생님이 안도하는 말투로 이야기 하셨다.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이 되면 공식 행사로 학교 갈 일이 몇 번 있다. 입학식, 공개수업, 학급발표회가 각각 1번씩. 그리고 학부모 상담은 학기별로 한 번씩이다. 아이가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학부모 상담 안내문이 왔다. 선생님과 상담을 희망하는 경우 원하는 날짜를 제출하라고 했다.


희망자 대상이라기에 부모가 판단해서 선택하라는 의미라고 생각했다. 입학한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선생님께 아이에 관한 부모의 선입견을 전달하고 싶지 않았다. 아이가 학급 친구들과 선생님. 새로 접할 이 세계에서 스스로 있는 그대로 적응해 나가기를 바랐다. 그래서 상담을 신청하지 않았다. 내가 생각을 너무 많이 했나보다. 모든 부모가 오는 줄 알았으면, 나도 갔을 텐데. 아빠다 보니 엄마들처럼 세세하게 못 챙긴 건 아닌가 싶었다.


어느덧 2학기가 되고 다시 학부모 상담이 돌아왔다. 입학식 때나 공개수업 때 담임 선생님을 이미 뵀고,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낼 때도 선생님과 상담을 종종 해봤다. 그런대도 초등학교 상담을 가려니 가기 전부터 약간 떨렸다. 초등학생이 된 당사자 보다 어째 내가 더 긴장을 한다.


‘선물을 사가고 그런 건 당연히 안 될 테고’, ‘커피라도 사가야 하나, 커피는 많이 드셨을 지도 모르는데 다른 걸 사야하나’ ‘지금 김영란 법으로 난리고, 경찰도 민원인이 몰래 놓고 간 커피 한 잔 때문에 떠들 썩 했다는데’ ‘선생님도 공직잔데 괜한 오해 만들면 안 되겠지.’ 이런 고민 끝에 학교 앞 커피숍에 몇 번이나 눈길만 준채 선생님이 계신 교실로 들어갔다.


1학기 때 학부모 상담에 안온 일. 다들 엄마가 오는데 특이하게 아빠가 오게 된 이유. 휴직을 하게 된 사연들로 인사를 나누었다.


“아이가, 수학이 좀 떨어져요. 아시죠?” “국어는 좋아 하구요” “색칠하기나 글씨 쓰는 속도가 느린 편이에요”


아이가 여러모로 손이 느리다거나 수에 약한 건 이미 알고 있었다. 내 딸은 남들이 어린이집 시절부터 시키는 여러 가지 학습을 별로 하지 않았다. 초등학교에 입학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주변에서 이걸 시킨다, 저걸 시킨다 해도. 아이가 일찍부터 공부에 시달리게 하고 싶지 않았기에 흔들리지 않았다. 어쩌면 엄마들과 네트워크가 전혀 없는 아빠라서 가능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상담이 시작되며 선생님이 하신 이런 말씀에 당황했다. 공부가 다른 아이들보다 늦다는 이야기 때문이 아니었다. 평소 아이와 대화를 하며 초등학교 1학년은 새로운 사회관계를 처음 경험하는 중요한 시간이라 느꼈다. 아이가 학교에 입학해 나와 나눈 대화도, 대부분 친구관계의 좋고 나쁨이 주제였다. 그래서 아이에게 매일 아침 차안에서 ‘즐거운 일이 많고, 선생님과 친구들과 즐겁게 하루를 지내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마음속으로 기도하라고 일러주곤 했다.


그렇기에 나는 초등학교 1학년 상담은 인성이나 태도에 관한 내용일거라 생각했다. 물론 태도나 친구 관계 이야기도 나누었지만, 그건 내가 그 주제를 계속 언급해서였다. 상담의 초점은 온전히 학업에 맞춰져 있었다. 나는 속으로 ‘아직 1학년인데...’라고 생각했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 대학시절 은사님께 아이가 태어나면 어떻게 키워야할지 모르겠다고 여쭤봤었다. 교수님은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통제라는 걸 알려주는 게 좋아. 우리 애가 컴퓨터로 온라인 게임을 하는데, 승부 때문에 게임을 하면서도 즐겁지가 않고 스트레스를 받는 거야. 그래서 아이에게 네가 무엇을 통제 하는 게 좋냐, 아니면 통제 받는 게 좋냐 하고 물었지. 애도 통제 하는 게 좋다고 대답하지”

“그래서 그럼 네가 지금 그 게임을 직접 켜고 끌 수 있지만, 실제로는 승부 때문에 화가 나고, 게임을 끌 수도 없지.” “네가 지금 그 게임을 통제하고 있냐? 게임에게 통제 당하고 있냐?”


내가 물었다. “교수님, 그런 통제라는 개념을 어린애가 알아들어요?”


“애들이 어려운 말 하면 못 알아들을 것 같지만, 행여 표현을 못해도 다 알아 들어.”


지금 와서 생각하니 통제라는 단어가 내 인생을 남이 휘두르게 나눌 것이냐, 내가 내 삶의 주인으로 살 것이냐를 물어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며칠 동안 고열로 일어나 앉지도 못하고, 학교를 결석하면서도 숙제를 걱정하는 모습. 받아쓰기 100점을 받아도 별로 기뻐하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그리고 학부모 상담을 하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무슨 말장난인가 싶었던, ‘똑똑한 사람보다 현명한 사람이 되라’는 말을 이제 좀 알 것 같다. 아이가 현명했으면, 그리고 그 보다 자신만의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4학년 되면 기초 수리력 문해력은 다 비슷해지겠죠." 계속되는 선생님의 학업질문에 별로 공부시킬 생각이 없는 아빠인 나는 이런 답변을 했다.


선생님은 “아빠가 그렇게 딱 생각하시면 다행이네요” 라고 말씀하셨다. 물론, 딱히 이해는 안 된다는 표정이셨다. 상담시간이 끝나가자 밖에는 다른 엄마가 기다리고 있었다. 손에는 커피가 두잔 들려있었다.


‘아, 커피나 사올 걸’




Photo by Jonas Jacobsson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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