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프가 휴직해야지

육아휴직 두 번한 남자

by 무진

2012년, 첫 번째 육아휴직을 했다. 직장에서는 인력관리를 위해 정기적으로 휴직 예정자 조사를 했다. 조만간 육아휴직을 하겠다고 서류로 알렸다. 남성 육아휴직 제도가 2001년에 도입되었다곤 하지만, 사용하는 사람을 찾아보긴 어려웠다. 그래서 다들 놀랄 줄 알았는데,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남자가 육아휴직을 하겠다고 하니, 조직에서는 업무 불만을 표시한 것으로 생각했다. ‘그냥 저러다 말겠지’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실제로 업무에도 지쳤었다. 게다가 갓 돌 지난 아이가 대학병원에 치료를 받으러 다녔다. 혼자 아이를 돌보던 아내도 지친 상황이었다. 시간이 흘러 절차대로 휴직 신청서를 냈다. 소란스러워졌다.


“다른 부서로 보내 줄 테니까, 휴직하지 마”

“너 인마, 남자가 휴직하면 계속 한직으로만 돌아! 휴직 취소해”

"직상생활 그렇게 하면 안 돼"


이전에 휴직한 남성 직원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분위기로는 거의 첫 남성 육아휴직 사례로 여겨졌다. 첫빠따의 길은 역시 쉽지 않았다. 육아휴직은 신청하면 적합 여부 판단 없이 바로 수리하게 돼 있다. 하지만 그마저도 처리가 되지 않았다. 처리가 지연되면서 출근하면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복도로 불려 나가 저런 이야기를 들었다. 남자가 휴직하면 제때 승진하거나, 요직으로 배치되건 불가능한 일로 받아들여졌다. 나도 그런 부분을 아예 포기할 각오로 휴직을 신청했다. 상위기관에 육아휴직에 관한 질의까지 올린 끝에 결국 휴직이 처리됐다.


공식적으로 휴직이 문서로 알려졌다. 복도에서 마주친 다른 부서 여자 팀장님이 나를 보자

“휴직해?”라며 말을 걸어오셨다.

“네, 육아휴직이요”

“와이프가 해야지”

“네 아내가 1년 했는데, 아이도 좀 아프고 그래서 어린이집 좀 늦게 보내고 싶어서. 제가 이어서 하려구요.”

“그래도 여자가 해야지, 남자가 휴직하면 안 돼”


이런 말들을 계속 들으며 2012년 휴직이 시작됐다. 양가 부모님도 남자가 일하지 않는 다는 걸 걱정스럽게 생각하셨다. 하지만 점점 아이가 아빠와 지내는 모습에 익숙해지셨다. 복직할 때는 아이랑 좀 더 시간을 보내면 좋겠다는 말씀까지 하셨다. 그렇지만 아파트 대출금 원금 상환이 도래했다. 결국 휴직 1년을 다 채우지 못하고 8개월 만에 복직했다.


복직해서 친근한 고등학교 선배님이자 타부서 팀장님을 마주쳤다.

“복직했어?”

“네”

“야, 인마. 너 다신 그렇게 하지 마. 진짜. 정말 다신 휴직하면 안 돼”

정말 걱정스러운 말투로 몇 번이나 다시는 휴직하지 말라고 당부하셨다.


4년의 세월이 흘렀다. 내년이면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할 나이가 된다. 마음이 여린 첫째가 초등학생이 될 때는 휴직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둘째는 첫째와 정반대다. 어디 가도 활발하고 금방 적응한다. 그래서 나중에 변할지도 모르지만, 둘째 때는 휴직이 필요 없겠다고 결론을 내렸다. 첫째 1학년 때 아내가 휴직하기로 했다. 그러고 나서 몇 달 후 둘째 출산과 육아로 휴직했던 아내가 복직했다.


아내는 막상 출근하고 보니, 8개월 후 다시 휴직하는 게 부담이 된다고 했다. 직장생활을 하며 계속 일을 쉬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아내는 나에게 휴직할 수 있겠냐고 물었다. 아내는 내가 지금 좋은 부서에서 한창 일하고 있는데, 괜히 또 휴직해서 안 좋은 영향이 있는 건 아닌지 걱정했다. 하지만 이미 한 번 휴직을 경험해 본 나는 별다른 고민 없이 휴직하기로 했다.


직장에서 괜한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 이번에는 5개월 전부터 내년 아이 입학식에 맞춰 휴직한다고 지속해서 알렸다. 남자 직원들의 육아휴직도 점차 늘어났다. 휴직을 고민하며 나를 찾아오는 남자직원들도 꽤 많았다. 2012년과 달리 2018년 육아휴직은 별다른 제지 없이 어느 정도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졌다. 5개월 전부터 알린 것 때문이기도 했다. 비록 휴직 직전 부서이동이라는 인사 조처를 받기도 했지만, 2012년에 비하면 직장에서 남자의 육아휴직을 받아들이는 분위기는 꽤 많이 변했다.


휴직을 고민하며 찾아오는 동료직원들에겐 꼭 휴직하라고 권했다. 우리나라도 몇몇 나라들처럼 남자의 육아휴직을 강제해야 한다고 내 생각을 말했다. 그러면서 휴직을 하게 되면, 술 마시러 다니며 시간보내지 말 것을 조언했다. 집에서 식사 준비를 하고, 청소와 빨래같은 살림을 하고, 아이를 돌보면서 집에서 충실히 지내보라고 이야기했다.


그래야 왜 엄마가 밥도 다 안 차려놓고, 매번 빨리 밥 먹으러 오라고 하는지. 밥을 깨작대면 왜 서운한지. 왜 양말은 구겨놓지 말고, 옷은 거꾸로 벗어놓지 말라고 하는지. 왜 집에만 있으면서도 마음이 힘든지. 그제야 알게 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것들을 글과 머리가 아닌 몸과 마음으로 알게 되면, 지금 우리 사회의 갈등도 조금씩 풀려나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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