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와 딸의 화장실 기행

딸과 남자화장실 가기

by 무진

딸 앞에서 아빠의 몸을 보여주지 않은 게 언제부터였을까.


첫째가 갓난아기였을 땐 목욕시키는 일이 서툴러, 나도 옷을 벗고 씻기곤 했다. 그러고 나서 내가 목욕 할 때, 아이가 내 몸을 보는 일도 아무렇지 않았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아빠가 목욕할 때 함부로 문 열지 말라고 일러주게 되었다.


딸에게 남자의 성기를 보여주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인 것 같다. ‘인 것 같다’고 말하는 건 나도 왜 함부로 문을 열지 말라고 했는지 지금도 정확히 모르겠어서다. 아빠 몸을 감추는 게 성별 차이와 성기 때문인지. 가족 간에도 개인으로 지켜야할 에티켓 때문인지. 집밖에서 딸을 화장실 데려갈 때도 그렇다. 남자들은 공중화장실에서 대부분 소변기를 사용한다. 딸이 크면서 비슷한 이유로 남자화장실도 불편해졌다.


휴직하고서 엄마 없이 딸과 둘이 자주 놀러 다녔다. 화장실은 피할 수 없는 문제다. 휴직 중 딸과 다녀본 가장 쉬운 화장실은 호텔 객실 화장실이다. 알다시피 호텔은 집처럼 독립된 공간이고 청결하다. 역시 비싼 건 종종 비싼 값을 한다. 또 청결하고 편안한 화장실이 있는 곳은 백화점이다.


백화점 화장실은 청결한데다가 인테리어마저 안정감을 준다. 주로 차분하고 낮은 톤이다. 자본의 정점인 장소답게 가끔 집보다 백화점 화장실이 더 좋다는 생각도 든다. 이런 남자 화장실에는 딸을 데리고 가도 불편한 느낌이 들지 않는다. 아이들 체격에 맞춘 전용 소변기, 대변기, 세면대가 준비되어 있다. 이렇게 아이들이 이용하기 편한 환경이면, 아빠가 신경 쓰지 않아도 아이 스스로 용변을 보고 손을 씻는다.


영화관 화장실은 대체로 깨끗하지만 상영관과 화장실의 거리가 멀다. 아이들은 영화를 보다가 집중력을 잃으면 화장실 가고 싶다고 한다. 성인에게는 멀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영화 상영 중 소변이 급하다는 아이를 안고 뛰면 오래달리기 하는 기분이 든다.


영화관 화장실부터 아래 소개할, 생각하고 싶지 않은 화장실들은 대체로 아이를 위한 변기가 없다. 아이가 아주 작을 때는 변기에 빠지지 않도록 양쪽 겨드랑이를 받쳐서 변기에 앉혀 줘야한다. 조금 크면 스스로 손으로 변기커버를 지지한 채 용변을 본다.


그래서 화장실이 청결하지 않으면 데리고 들어가기가 꺼려진다. 남자 아이들은 그냥 서서 소변을 보니 별로 불편하지 않을 것 같은데, 아들을 키워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다. 휴게소 화장실은 그런 이유로 힘들다. 휴게소에 들러보면 남자화장실 대변기가 대체로 깨끗하지 않다.


또 하나 난이도 높은 화장실은 야구장 화장실이다. 야구 경기 중일 때 남자화장실은 여성분들이 화장실에 들어가기 위해 줄서는 것처럼 혼잡하다. 그래서 또 그만큼 지저분하다. 사람이 가득 찬 뒤숭숭한 화장실에는 딸을 데리고 들어가기가 꺼려진다. 한 가지 좋은 방법은 이닝 중간 쉬는 시간이 아닌 한화이글스가 공격할 때 화장실에 가는 거다. 이때는 화장실이 대체로 한산하다. 물론 홈팀의 공격을 보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다. 하지만 경험상 한화이글스가 공격할 때는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두산 팬이 아니라서 다행이다.


요즘 멋진 커피숍이나 브런치 카페 같은 경우 화장실이 아예 없는 곳들도 있다. 그런 곳에서는 음식을 한 번에 입에 털어 넣고 나오기도 했다. 이런 저런 화장실을 다니면서 생각했다. 유아 전용 화장실이 의무화 되는 일. 조금 더 나가면, 각자 다른 성별의 아이 화장실 칸을 하나씩 만들면 어떨까 싶었다. 하지만 누가 들어주지 않을 것 같다. 그저 조금 불편한 일이니까.


이제 초등학교 2학년이 된 딸은 밖에서도 점점 혼자서 화장실을 간다. 그렇게 아이는 조금씩 커가고 멀어져간다.



Photo by Tim Mossholder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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