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100점
"제가 선생님보다 먼저 가서 친구 위로해줬어요."
휴직하고 금요일은 아이와 노는 날로 정했다. 학교만 가고 학원은 가지 않는 날이다. 아이와 둘이 영화를 보고, 저녁 외식을 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캄캄한 밤, 신호대기 하는 차안에서 조용하던 아이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OO이가 받아쓰기 90점 받았다고 울어서 제가 선생님보다 먼저 가서 친구 위로해줬어요."
"친구 자리로 가서 위로 해준 거야?"
"네"
나는 놀라며 다시 물었다 "뭐라고 위로해줬어?"
"다음에 100점 받을 수 있다고, 나도 100점 받고 싶었지만 90점 받은 적 두 번이나 있다고, 괜찮다고 해줬어요. 한 개 틀린 것도 잘한 거예요."
초등학생이 되고 아이의 최대 이슈는 친구와 받아쓰기였다. 친구관계는 매일 매일 변했다. 어제 제일 친한 친구가 오늘은 가장 사이 나쁜 친구가 되기도 한다. 친구들끼리 그룹이 지어지면 그 속에 들지 못하는 것을 아쉬워하는 날도 있고, 멤버가 되어 즐거워하는 날도 있다. 그래서 늘 학교가기 전에 오늘은 친구들과 즐거운 날이 될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라고 말해주었다. 금요일이나 주말에 아이의 친구와 함께 놀아줄 시도도 했지만, 실제로 그렇게 한 건 두어 번 정도였다. 엄마도 아니고 남의 아이 아빠에게 아이를 맡기는 것은 아직 생소한 일이었다.
받아쓰기 점수가 좋지 않으면, 집에서 손바닥을 맞는 친구가 있다는 말을 듣고 놀란 적이 있다. 나는 어릴 때 받아쓰기를 잘 못했다. 살아보니 그 시절 받아쓰기로 삶이 뒤바꾸는 것도 아니다. 이제 막 학교 들어간 아이에게 스트레스 주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요즘 아이들은 받아쓰기를 별로 틀리지도 않는다. 일 년에 몇 번 80점만 맞아도 기세등등했던 나를 떠올려보면 지금 애들은 모두 천재다. 아이에게 늘 '아직 배우는 과정이니 틀려도 괜찮아' '처음부터 다 잘하면 배울 필요가 있어?' '시험보기 전에 어제 열심히 노력했으니, 이미 잘 한 거야'라고 말해주었다.
공부 잘하는 아이들끼리만 노는 그룹이 있다고도 했다. 국어도 잘하고 수학도 잘하고 발표도 잘하고 뭐든 잘 하는 아이들이란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이런 일이 존재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공부가 그렇게 중요한 건지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 아이들끼리 어울리는 걸 부러워하지 말고, 지금 친한 친구들과 재밌게 지내라고 말해주었다.
초록불 신호가 들어오고, 아이는 계속 말을 이었다.
"OO이는 공부를 못하지만 괜찮아요. 항상 양보하고 그러거든요."
내가 물었다. "아, 그래? 매번 양보하고 그러는 거야?"
"네 지우개 같은 것도 잘 빌려주고, 친구들한테 항상 양보를 잘해요."
흐뭇해서 내가 말했다. "그럼 그 친구한테도 잘해주고 그래야겠다."
"네, 그 친구는 받아쓰기는 잘 못하지만 마음이 100점이에요."
그 양보 잘하는 친구가 예쁘고, 친구를 위로할 줄 아는 내 딸이 있어 좋은 저녁이었다. 아이가 하는 말들이 흩어질까 아쉬워 메모장과 SNS에 종종 기록으로 남겨두었다. 아이가 한 말들만 모아 학급발표회 때 발표할 시를 만들어 주었다.
<마음이 100점>
우리반에는 공부를 잘하는
친구들이 있어요.
그 친구들끼리 사이가 좋아요.
받아쓰기도 100점 받고,
뭐든지 잘해요.
하지만 공부는 중요한게 아니에요.
친구들에게 어떤 재능이 있을지 몰라요.
우리반에는 양보를 잘하는
친구들이 있어요.
모두에게 고마운 친구에요.
받아쓰기 점수는 다르지만
마음이 100점이에요.
아빠는 믿을 수 없다고 했지만,
학교에 가는게 좋아요.
우리반에는 마음이
100점인 친구들이 있어요.
그래서 좋아요.
Photo by Niamat Ullah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