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은 셀프
결혼하고도 요리는 전혀 못했다. 살림과 첫째 육아를 내가 주도했지만, 요리만은 아내가 전담했다. 계란프라이도 안 해봤다. 안 해봤으니 할 줄 몰랐다. 어린이집 정기 상담을 갔을 때다. “어머님이, 아버님이 아이도 잘 보시고, 살림도 다 잘하신다고. 요리만 하면 완벽하다고 하시던데” 선생님에게 이런 말을 전해 들었다. 하, 인간의 욕심은 끝이 ...
맞벌이를 하면서 요리를 못하기 때문에 뭔가 위축되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다른 살림을 더 신경 쓴 것 같다. 내가 요리만 하면 완전 당당하게 큰소리 쳐야지 하며, 삼시세끼의 차승원이 되는 야무진 꿈만 꾸어봤다. 실상은 38년간 라면과 전자레인지만 오고갔으며, 라면에 계란도 못 넣어 먹었다.
역시 인간은 강제성이 있어야 조금씩 움직이나 보다. 요리를 하게 된 건 아내가 둘째를 낳고 일을 쉬었다가, 복직 했을 때다. 오랜만의 출근으로 아내는 야근이 잦았다. 나는 한 부서에서 오래 업무를 맡아온 터라 일을 조율해가며 일찍 퇴근할 수 있었다. 처음엔 시켜먹었지만, 알다시피 하루 이틀이다. 또 둘째가 어려서 적당한 배달 메뉴를 찾기도 힘들었다. 결국 밥을 하기 시작했다.
계량스푼 나오는 순간 채널을 돌려야 했던 시절은 끝났다. 구도자 백종원 선생님께서 숟가락으로 대충 따라만해도, 먹을 수 있게끔 인터넷에 많은 걸 남겨놓으셨다. 간단한 것부터 시작 했다. 그리고 주로 내가 좋아하고 먹고 싶었던 것들을 만들었다. 샌드위치와 호텔식 조식. 스테이크와 퀘사디아. 알리오 올리오와 바질페스토파스타. 청국장과 콩나물불고기. 미니언즈와 카카오톡 캐릭터 모양을 낸 아이 소풍 도시락까지. 이제는 어느덧 요리를 한지 2년 정도 지났다. 퇴근할 때 장을 봐서 그날 저녁식사를 차리는 게 내 일상이 되었다.
요리를 하면서 느낀 것이 몇 가지 있다. 우선 요리하는 것은 재밌는 일이다. 여러 재료를 조합해 새로운 것을 만든다. 이건 남자들이 무언가 조립하고 만들어내며 즐거워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반면, 휴직하여 아이가 방학일 때 세끼를 다 챙겨보니, 밥 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도 알게 되었다. 세 번 힘쓰는 게 어려운 게 아니다. 메뉴가 겹치지 않게 해야 잘 먹는다. 고기, 생선, 채소도 적절히 챙겨줘야 한다. 잘 먹는 것과 꼭 먹어야하는 것들을 잘 생각해야한다. 서태지가 창작의 고통으로 은퇴한 것은 핑계가 아니었다.
여기서 다다르는 깨달음이 있다. 삼식이라는 말은 괜히 생긴 게 아니다. 종종 간식까지 요구한다는 사람은 말 그대로 종간나세끼다. 그렇다고 외국처럼 그 집안과 그 남자만의 특별한 레시피까지는 필요 없다. 그저 자기 밥은 자기가 챙겨먹을 줄 알아야 할 것 같다.
그래야 내가 떳떳하고 편안하다. 자신감이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