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혹은 공자만 되는 것으로
집에서 티비로 새해가 되는 걸 꼭 지켜보던 때가 있었다. 그게 연예프로그램 시상식이든, 타종하는 모습이든. 해가 바뀌면서 마음에 뭔지 모를 의욕의 씨앗이 움트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언젠가부터 12월 마지막 밤에도 일찍 잠이 든다. 시간은 단지 우리가 만들어내 인식할 뿐이고, 연도가 바뀌는 것도 숫자의 변화일 뿐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시간의 인위적 구분보다 영화 ‘인터스텔라’나 소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처럼 과거-현재-미래가 동시에 존재한다는 이야기에 더 마음이 간다.
하지만 2018년 12월 31일. 이날은 좀 다르다. 2분 전. 1분 전. 수치적인 시간을 지켜본다. 2019년이다. 내가 마흔이 됐다. 39 다음이 40이라는 것은 초등학생도 안다. 하지만 이성적 사고가 아닌 마음이 인식하는 마흔은 꽤 당혹스럽다. 무라카미 하루키도 이렇게 말했다. "제 나이 스무 살 무렵엔, 잘 이해되지 않았던 일입니다. 스무 살 청년이 20년이 지나면 마흔 살이 된다는 것 말입니다.”
내가 방에 있는데 SWAT 특공대가 무브 무브 무브를 외치며 문을 박차고 열며 총으로 마흔이라는 단어를 쏘는 그런 기분이랄까. 내가 아버지의 나이를 처음 인지했던 게, 아버지가 마흔이셨을 때다. 이제 내 나이가 마흔이라고 하자, 우리 아버지도 흠칫하셨다.
마흔에는 뭔가 특별함이 있는 것 같다. 마흔은 불혹이라 불린다. 불혹, 세상일에 정신을 빼앗기지 않는다. 이 불확실성의 세계에 이토록 매력적인 단어라니. 신체적으론 만으로 마흔이 되면 온갖 건강검진을 받게 된다. 신체의 상태가 다른 방향으로 바뀌어 가기 때문이라고 한다. 신체 상태가 다른 방향으로 간다니. 그 의미만으로도 무시무시한데, 명칭도 역시 예사롭지 않다. '생애 전환기' 건강검진.
새해 첫 책으로 자본주의의 폭력성을 다룬 ‘오래된 미래’를 읽고 있다. 그 내용에 깊이 공감하면서 새로 이사 갈 집에 들어갈 가구를 계약했다. 내친김에 자동차 매장도 들러 구경을 해본다. 어느 날 초등학교 1학년 딸이 말했다. “학교 안전교육 선생님이 우리한테는 담배 피우지 말라고 해놓고, 골목에서 담배를 피웠어요.” 그래서 지행합일에 대해 가르쳐 줬다. 역시 지행합일의 길은 쉬운 게 아니다. 마흔이 되어 하루를 살아보니 불혹도 마찬가지다. 불혹은 공자만 되는 개인 체험적 에세이로 생각하자.
마흔이 되었고 두 달 뒤 아이가 개학하면 나도 복직이다. 마흔의 새해에는 하루키처럼 철없이 살되, 지행합일 정도는 하는 어른다운 행동을 하고, 후배들에게 말 걸지 않는 사람이 되자. 나이 먹은 이상한 아저씨가 되는 것. 그게 제일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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