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이제 울 시간

솔직한 감정 표현

by 무진

3일간 글쓰기 교육 때문에 서울 인사동에 갔다. 직장에서 연계하는 교육이라 출근하지 않고 교육을 받으러 갔다. 출근하지 않고 교육이라니. 일단 좋다. 하지만 학생도 아닌데 가만히 앉아 교육 받으려면 그것도 힘들다. 참, 세상 쉬운 게 없다. 그래서 그동안 교육 시간을 대부분 온라인으로 때웠다. 그러다 보니, 교육 필수 이수 시간이 한참 부족했다. 때마침 흔히 볼 수 없는 글쓰기 교육이 올라왔기에 냉큼 신청했다. 뭔가 설렁설렁 편한 교육이라는 냄새가 났기 때문이다.


기차를 타고 용산역으로, 그리고 다시 지하철로 인사동까지 갔다. 기차가 자주 없어 서두른 탓에, 교육 시간보다 일찍 인사동에 도착했다. 스타벅스에 들러 오늘의 커피를 주문하고 주변을 둘러봤다. 서울의 넓은 스타벅스가 이렇게 한산하다니. 출근시간이 지난 수요일 아침. 여유 있게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으니 휴가 나온 기분이었다. 교육오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교육은 업무상 글쓰기와 관련 된 내용. 그리고 올바른 문장쓰기 같은 꼭 필요한 강의로 준비되어있었다. 즉, 재미가 없었다는 말이다. 삶에 꼭 필요한 것들은 보통 재미가 없다. 다행히 흥미를 잡아끄는 강의가 있었다. 일상의 글쓰기를 다루는 수업이었다. 교수님은 일상을 쓰는 법을 알려주고, 직접 글을 써서 제출하도록 했다. 글쓰기와 친해지도록 하는 목적이었다. 직장인들에겐 쓸모없는 수업일지 모른다. 그래서 가장 재미있었다.


교수님은 일반적인 이야기가 아닌 자신만 할 수 있는 구체적인 이야기를 써야한다고 강조했다. 관념으로, 즉 머리로만 생각해서 쓰지 말라고 알려주셨다. 자신이 직접 본대로, 들은 대로, 느낀 대로 쓰라고 하셨다. 교수님은 삶을 제대로 바라보라며, 한국 남자들도 울음이 날 때는 울어야한다고 강조하셨다.


"한국 남자들 참 불쌍해요. 울고 싶어도 울지도 못하고. 눈물이 나면 고개 들고, 아이고 와이라지 와이라지! 남자 분들도 그러지 말고 울고 싶을 땐 그냥 우세요."


그리고 교재엔 이런 구절도 있었다.

'쓸 글이 없다는 건, 별 관심이 없이 마음이 없이 그렁그렁 살아가기 때문...'

'삶을 바로 보고, 바로 생각하지 않고는 어떤 글도 제대로 쓸 수 없다.'


삶과 글에 관해 이런저런 설명을 듣고 각자 글을 썼다. 자신의 이야기를 쓰고 한 사람씩 낭독했다. 직장에서 자신이 성과를 냈던 기억. 서울에 교육을 와서 유명한 피부과에 들러, 큰 결심을 하고 돈을 쓴 일. 돌아가신 시어머니를 추억하는 내용. 자신만의 이야기를 모두에게 들려줬다. 여성분들은 이야기를 하고 들으며, 많이 웃고 많이 우셨다. 여전히 남자들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교육 중 연극을 보는 시간이 있었다. 대학로의 극장이었다. 관심이 없던 나는 무슨 연극인지도 모르고 표를 받고 자리에 앉았다. 다리도 펼 수 없는 좁은 좌석. 텁텁한 공기. 무대 중앙에 옥탑방 고양이라는 글씨가 보였다. 나는 두 번째 줄에 앉았다. 첫 줄엔 여고생들이 앉아있었다. 주변엔 젊은 연인들이 가득했다. 아마도 사랑스런 연극인가보다.


연극이 시작됐다. 작은 오해로 전혀 모르는 젊은 남녀가 한 옥탑방에 같이 살게 되는 이야기다. 아무리 젊다해도 실제론 불가능할 비현실적 사랑. 그리고 현실은 옥탑에 살지만, 각자 멋진 미래를 향해 꾸는 꿈. 그걸 표현하는 몽글몽글한 말과 몸짓이 이어졌다.


이야기가 진행되며 딸의 아버지가 등장했다. 아버지는 일자리 문제로 데모하러 서울에 왔다. 작가가 되려는 딸에게 용돈을 쥐어주며, 뭐 얼마나 대단한 글을 쓰려고 그러고 있냐며 다그친다. 그러지 말고 9급 공무원 시험이나 보라고 나무란다. 딸은 그런 이야기 하려면 그만 가라고 한다.


연극을 보는 나는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하고 싶은 일을 제쳐두고 공무원이 되었다. 꿈이나 행복 같은 단어들을 나의 언어로 규정할 수 없었다. 그저 얼른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꿈과 행복은 사치스런 단어였다. 글쓰기 교재에 나왔듯, 별 관심 없이 그렁그렁 살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첫 줄에 앉은 여고생들이 연신 눈물을 훔친다. 여고생들은 사랑 이야기 때문에 울었을까, 꿈 이야기 때문에 울었을까. 꿈과 사랑은 별개일까. 어쩌면 삶을 사랑하는 게 꿈일까. 삶을 사랑한다는 건 울컥하는 게 아니라 우는 건 아닐까? 나도 울컥해진다. 하지만 난 눈물을 꾹 참고 속으로 ‘와이라지, 와이라지’를 외쳤다.


이제 울컥은 그만두자. 솔직하게 실컷 울 시간이다.



Photo by Emma Trevisan on Unsplash

이전 15화나도 지구에 온지 얼마 안됐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