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땐 나일론으로 된 나이키 지갑. 직장인이 되곤 누구나 하나씩 있던 닥스 지갑.
그런 지갑. 이제 불편하다.
공언하든 아니든. 체감으론 현금 없는 사회가 된 지 오래다. 카드뿐 아니라 계좌이체나 다양해진 페이서비스로 이제는 노점이나 편의점도 현금 없이 이용할 수 있다.
몇 년 전 삼성페이를 쓸 땐 아예 지갑을 없앴다. 최신 자동차들은 스마트폰으로 문 열고 시동 켜는 것도 가능하다고 하니, 폰으로 뭐든 가능한 세상.
핸드폰을 블랙베리로 바꾼 후론, 지갑 없이 머니클립에 체크 카드 한두 장만 넣어 다닌다.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 술 한잔하는 저녁. 역시 단출하게. 차 키는 집에 두고. 폰과 머니클립만 챙겨 고깃집으로.
고기를 주문하고 일단 소주 먼저 마시며, 남자들의 로망 ‘작업실 혹은 세컨하우스’ 이야기를 나눴다. 이야기에 신나 짧은 순간 몰입했다.
바로 옆에서 내 앞의 고기를 구워주고 있는데도 사람이 있다는 걸 인지하지 못했다. 사람은 역시 눈앞에 있어도 보고 싶은 것만 본다.
‘아차’
며칠 전 읽은 책. 『돈을 부르는 매너』. 책 제목은 ‘돈을 부르는’ 이지만, 실제론 돈과 큰 관련 없는 사회생활 매너 모음집.
고급 일식집처럼 전담 서버가 있거나 고기를 구워주는 식당에서는 현금 팁을 주라는 내용이 있었다.
몇 년 전 비서 할 때 현실에서 이미 배웠던 매너다.
일상생활에선 아직 고급식당을 다니는 형편도 아니고, 이런 작은 동네에서 고기 구워주는 식당을 만나리라는 생각도 못 했다.
속으로 ‘아, 어쩌나’ 하며, 말없이 구워져 가는 고기만 보고 있었다. 그때 친구가 고기 구워주는 분 반대쪽으로 몸을 살짝 돌리며 조심스레 현금을 꺼내 팁을 드렸다.
‘아. 내가 제대로 된 친구를 만나고 있구나’ 했다.
나는 그제야 물었다. “여기 원래 고기를 구워주시는 거예요?”
친구도 “이 동네에서 고기 구워주시는 걸 처음 봐서.”라고 했다.
일하시는 분은 손님이 많지 않을 때만 구워주신다고 했다. 고맙다는 인사까지 하고 맘 편히 고기와 소주를 먹고 마셨다.
이제 지갑도, 현금도 좀 챙겨 다녀야겠다.
현실에서 책에서 친구에게서 아직도 어른 되는 법을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