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계획은 내가 알아서 할게요.
"둘째는 언제 낳으려고? 둘째도 낳아야지! 애는 둘은 있어야 해. 외동 애들은 이기적이고 사회성 떨어지는 거 알지?"
첫째 아이를 임신했을 때, 아직 출산하지도 않은 내게 주위의 많은 사람들은 (특히 자녀를 둘 이상 출산한 선배 엄마들) 위의 같은 말로 나를 경악케 했다.
아니, 안 그래도 매일 밤 뱃속 아기가 방광을 눌러대는 터에 화장실을 들락날락하느라 매일 피곤에 찌들어 있는 내게 벌써 둘째를 계획하라니! 선을 넘어도 한참 넘었다 정말.
"애는 한 명만 낳으려고요. 요즘 애 키우는데 돈도 많이 들잖아요."
"어머, 얘는 무슨 소리야? 아기 키우는데 생각보다 돈 별로 안 들어!"
"제 지인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인데요. 벌써부터 학원비만 매월 100만 원 든데요."
"학원 많이 보내고 그런 거, 다 부모 욕심이다? 낳아봐. 둘째는 정말 사랑이야. 안 낳았으면 어쨌을까 싶다니까? 둘째 없는 내 삶은 생각도 못해."
창과 방패의 끝없는 싸움. "애는 둘은 있어야지!"파에서 흔히 주장하는 이유에 대한 반론을 제기해 보겠다. (참고로 나는 2녀 중 막내, 둘째다.)
1. 둘째는 사랑이다.
-그럼 첫째는 사랑이 아닌가? 하면, "첫째는 첫사랑이고.." 한다. 이게 말이 되는지 모르겠다.
당연히 모든 아기들은 귀엽다. 또 첫째를 키울 때는 모든 것이 처음이다 보니 부모 역시 어리숙하고 미숙한 부분이 많다. '이렇게 애 키우는 게 맞나?'의 연속으로 아기의 귀여움을 충분히 만끽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둘째를 키울 땐 첫째를 양육할 때 배웠던 경험과 노하우로 한결 능숙하게 육아에 임하게 된다. 그러므로 두 번째 맞이하는 아기의 깜찍함을 여유롭게 받아들이지 않겠는가?
-새끼 강아지는 정말 귀엽다. 강아지 새끼는 사랑 그 자체다. 그렇다고 강아지가 너무 귀여워서 두 마리고, 세 마리고 키운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물론 그 많은 강아지들의 산책과 건강관리 등을 모두 관리할 수 있는 경제적, 시간적 여유가 있는 사람이라면 말이 다르지만,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강아지도 그럴진대, 하물며 사람을 키우는 일은 어떤가? 물론 내 자식이니까 평생 귀엽겠지. 자식이 마흔이 돼도 귀여울 것이다. 그렇지만 귀여움 만으로 자녀를 양육하기엔 현실적으로 고려할 것이 너무 많다.
2. 낳으면 다 키우게 되어 있다.
-우선 저질러놓고 눈물 흘리며 뒷수습하는 것을 말하는 건가? 이건 반론할 가치도 없으니 이만 하고 넘어가겠다.
3. 다 자기 밥그릇을 가지고 태어난다.
/ 애 키우는데 돈 별로 안 든다.
-우선 이 말을 하는 사람의 자녀가 몇 살인지? 자녀의 나이가 유치원생일 경우 "아 그렇군요."하고 무시하자.
-지금은 옛 농경사회가 아니다. AI 혁명이 진행되고 있는 2026년이다. 자녀에게 아무것도 해 주지 않아도 첫째가 둘째를 키우고, 둘째가 셋째에게 밥 해주는 그런 사회가 아니다.
-주위를 둘러보아라. 매달 일정한 소득을 벌지 못하는 청년이 얼마나 많은가? 그들에게 용돈을 쥐어주고, 그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5060대 늙은 부모들은 아픈 몸으로 새벽같이 일자리로 향한다.
-직장에 취업했다고 다 끝나는가? 요즘 어지간한 회사는 전부 수도권, 그중에서도 서울에 몰려있다. 취직했다고 독립하는 자녀는 10명 중 1명이 될까 말까. 그 비싼 서울의 전월세를 전전긍긍하느니, 대부분 수도권 부모님 집에 함께 살며 출퇴근한다. 그 다 큰 자녀들에게 아침, 저녁밥 차려줘야 하고, 옷 빨고 개어서 서랍에 넣어줘야 하고.. 또 결혼이라도 한다고 하면 노후 자금 털어서 보태주어야 한다. 내 자식이 빈손으로 시집/장가가서 기 못 펴고 살면 어쩌나?
-2030 자녀가 돈을 벌고 결혼해서 손자를 낳았다고 모든 부모의 과제가 끝난 건 아니다. 그 손자를 봐줘야 하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나의 자녀가 눈물 흘리며 말한다. "엄마 도와줘.. 나 복직해야 돼.. 휴직하니까 돈도 부족하고.." 도와주지 않을 부모가 어디 있을까? 굽어진 허리와 찌릿찌릿한 손목을 부여잡고 오늘도 자식의 집으로 출근하는 늙은 부모들이 얼마나 많은가?
4. 둘이서 노는 모습 보면 얼마나 예쁜지 몰라요.
/ 혼자 노는 첫째가 안쓰러워요.
-앞서 이야기했든 나 역시 언니가 있는 둘째다. 둘째로서 소신발언 하겠다.
-미취학 아동 시절, 혹은 초등 저학년 때는 함께 놀 수 있다. 그 작은 둘이서 오손도손 노는 모습, 당연히 귀엽고 예쁘다. 하지만 그 둘이서 10년, 20년 오손도손 놀지 않는다. 절대.
-초등 고학년만 되어도 동생이랑 안 논다. 친구들이랑 논다. 엄마 아빠가 같이 여행 가자고 해도 귀찮아한다. 집에서 게임하거나 티브이 보는 게 더 좋다. 중학생이 되면? 노크 안 하고 방문 열었다고 버럭 화를 낸다. 고등학생이 되면? 대학생? 사회인이 되면?
5. 그래도 둘은 낳아야지...
-그럼 그 말하는 당신은 셋, 넷 낳으세요.
왜요? 셋은 너무 많아요? 그럼 둘은 안 많나요?
왜 꼭 둘을 낳아야 하죠? 사회적 편견 아닌가요? 구시대적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계시군요.
6. 외동은 사회성이 없다. 이기적이다. 자기만 안다.
-지금 당장 챗피지티 혹은 제미나이를 켜서 물어봐라. 외동이 사회성이 없다는 연구 결과가 있으면 분석해서 알려달라고. 내가 물어봤는데, 최근 연구 결과는 오히려 반대라고 한다.
-위 주장의 반례가 바로 '나'다. 나는 외동이 아니고 언니와 항상 지지고 볶으며 살아왔는데, 이기적이고 사회성이 없다(?).
-11년 차 교사로서, 교실에서 수많은 학생들을 관찰했다. 금쪽이는 외동, 둘째, 셋째 등 형제자매 수가 중요치 않다. 그 부모가 주된 원인이었지.
평생 둘째로 살아온 사람으로서 감히 말하겠다.
둘째의 삶은 고달프다.
1) 평생 첫째와 비교당한다.
-"네 언니는 어떤데 너는..", "네 언니는 네 나이 때.."
2) 새 옷, 물건이 없다.
-특히 나처럼 어린 시절 집이 부유하지 않은 경우, 또 첫째와 동성일 경우, 학교 준비물은 물론 4계절 거의 모든 옷을 그대로 물려 입어야 한다.
3) 친척 어른들이 첫째를 훨씬 더 예뻐한다.
-우리 집안만 그랬는지 모르지만, 공부도 잘하고 어른들에게 싹싹하게 말도 잘하는 우리 언니는 용돈도 항상 많이 받고 칭찬도 엄청 받았다. 그에 비해 나는 거의 존재감이 없는 수준.
-예컨대 언니가 중학교 입학할 때는 큰 용돈을 받았다. 내가 중학교 입학할 때는 그 누구도 내게 10원 한 장 주지 않았다.
4) 어른의 눈을 피한 첫째의 폭행
-형제, 자매는 정말 많이 싸운다. 정말 많이.
엄마에게 이르고 울면서 하소연하는 건 10번 싸울 때 중 1,2번 정도다. 너무 억울해서 눈물이 펑펑 쏟아지고 가슴이 답답해서 펑- 터져버릴 것 같을 때서야 엄마에게 하소연하러 달려간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엄마는 공정한 심판자가 되어 주지 못하고, 첫째나 둘째에게 불리한 판정을 내린다. 둘째에게 불리한 판정이 내려진 경우, 첫째는 어깨가 한 층 올라간 상태로 둘째를 한층 더 하찮게 여기게 된다.
-하지만 첫째에게 불합리한 판정이 내려진 경우, 첫째의 비열한 복수가 시작된다. 엄마 아빠 앞에서는 한 없는 천사 같은 모습으로 자애로운 지킬을 연기하지만, 둘째만 남겨진 그 순간, 조승우 못지않은 하이드로 변신하여 손으로 머리를 때리거나 엉덩이나 다리에 킥을 날린다. 티 나지 않게 팔을 꼬집기도 한다.
-둘째는 소심한 반격을 가해 보지만 소용이 없다. 내가 1대 때리면 첫째는 2대를 다시 때리고, 내가 2대를 때리면 3대가 아닌 5대 정도를 사정없이 때린다. 힘과 체격에서 둘째는 밀릴 수밖에 없다. 그저 하염없이 눈물만 흘릴 뿐 뭐 어쩌겠는가..
(나랑 언니는 현재 아주 사이좋은 자매다. 언니는 나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멘토이자 선생님이다. 언니에게 맞을 까봐 덧붙이는 글이 절대 아니다. 오해는 없길 바란다..)
5) 아주 어려서부터 주변 어른들 눈치를 본다.
-내가 5살인가 6살때, 언니가 부모님께 아주 무섭고 혼나고 매를 맞았던 순간을 옆 방에서 지켜보던 기억이 난다. 그 때의 어린 나는 극도의 불안감에 사로 잡혔다. 잔뜩 화가 난 부모님이 갑자기 나를 불러서 나도 매 맞으면 어떡하지? 예전에 내가 이런 저런것들을 잘못 했는데, 언니 다음으로 나도 혼날 것 같은데 어떡하지..
그 어렸을 때부터 나는 사바나 초원의 초식동물 처럼 부모님의, 주변 어른들의 눈치를 살피며 살았다. 부모님 기분이 안 좋아 보이면 가서 안마도 해드리고 칭찬도 해드리며 애교를 부렸다.
-눈치 보는게 단점인가 싶겠지만, 어른이 되어서도 나의 주장을 쉽게 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따라가게 된다. (내면엔 나만의 확고한 생각이 있지만, 이런저런 눈치를 보며 속으로 삭힌다.)
미래에 나의 생각이 어떻게 바뀔 지 모르지만, 현재의 나는 확고한 외동파다. 안 쓰는 모든 아기 용품을 바로바로 처분해 버렸고, 작아진 아기 옷들도 남김 없이 그때그때 버린다.
나는 서울에 근무지가 있고 서울에 거주중인 공무원이다. 공무원 월급으로 서울 살이가 쉽지 않음은 모두 알 것이다. 따라서 나는 소박하게 둘을 낳아 키우는 대신에 넉넉하게 하나를 양육하는 쪽으로 남편과 결정했다. 왜냐하면 내가 넉넉하지 않은 집안의 둘째로서, 포기하고 산 것이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나의 자녀는, 나의 형편이 허락하는 한에서는, 원하는 것이 있다면 최대한 지원해 주고 싶다.
또한 나는 육아 체질이 아니다. 나중에 한 편의 글로 길게 풀어낼 계획이지만, 1년의 육아휴직은 내 인생 최대의 고난이었다. 아기가 귀여운 건 그렇다 쳐도, '육아'라는 것 자체가 나의 성격가 전혀 맞지 않는다. 그런데 사회적 통념 때문에 아이를 하나 더 낳아서 그 고난의 행군을 다시 시작하라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둘째를 낳으라는 잔소리에 여러 가지 답변을 시도한 끝에, 마침내 그들의 입을 다물게 할 최적의 답을 찾아냈다. 오늘도 둘째 타령에 화가 치솟는 외동 동지들에게 나의 노하우를 전수하며 글을 마치고자 한다.
"첫째 키울 때 너무 지치고 우울해서 죽고 싶었어요.. 지금도 일하랴 애 키우랴 너무 힘들어요.. 배우자가 도와주는 데도 힘드네요.. 하나만 낳아 잘 키우려고요.."
(둘째 무새들에게는 논리적인 이유는 전혀 통하지 않는다. '둘째는 사랑이다'는 논제에 그 어떤 반론이 통하겠는가? 그저 한 없이 힘없고 우울한 얼굴로, 육아가 너무 힘들다고 하소연하라. 몸도 여기저기 아프고 맨날 병원 다닌다고, 우울증으로 정신과에 다닌다고 덧붙여도 좋다. 그럼 그들은 "아이고, 어떡하나.. 7살만 돼도 괜찮아지니 조금만 힘내." 하며 당신의 어깨를 툭툭치고 지나갈 것이다. 그리고 그들을 만날 때마다 항상 육아가 얼마나 힘든지 구구절절 하소연하라. 그럼 이내 그들은 당신에게 둘째 타령을 그만둘 것이다.
기억하라. 둘째 무새들에게는 감정적 호소 만이 그들의 입을 다물게 한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