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만의 방
a room of one's own
13살때 처음으로 내 방이 생겼다. 그 전에는 언니와 한 방을 썼었는데, 방이 3개인 집으로 이사를 가게 되어 언니와 각자 1개의 방을 사용하게 되었다. 맨날 언니와 치고 박고 싸우다가, 각자의 방이 생기고 나자 부딪치는 일이 줄어들고 덕분에 서로 얼굴 붉힐 일이 줄어들었다. 내 방이라고 하지만 아주 작은 공간이었기 때문에 잠은 항상 거실에서 언니와 함께 잤는데, 언니와 나란히 누워서 늦은 새벽까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눈 것은 지금도 아주 좋은 추억으로 마음 한 켠에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그때부터 결혼 하기 전까지, 우리 집에 내 방이 있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었다. 침대와 책상, 의자와 장롱. 책꽂이와 스탠드, 노트북과 거울. 이것이 전부였지만 작은 내 방은 나의 작은 우주였다. 슬픈일이 있으면 방문을 걸어 잠그고는 거실에 소리가 새어나가지 않게 숨죽여 울며 마음을 달래었고, 기분 좋은 일이 있으면 집 앞 편의점에서 맥주 한 캔 사가지고 들어와 행복한 기분을 조금 더 길게 유지하려고 했다. 이런 저런 고민으로 잠이 오지 않는 밤이면, 스탠드 하나 키고서 공책 한권을 펴고 내 생각을 적어 내려갔다. 그렇게 평화로운 나날이 계속되던 어느 날, 아기 조카가 우리 집을 찾아왔다.
언니와 형부가 한참 바쁠 때에 태어난 아기 조카는, 세상 밖으로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부터 우리 집에서 막둥이 동생처럼 자랐다. '육아는 힘들다'고 말로만 들었지, 정말 그렇게 힘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가장 곤혹스러울 때는, 새벽까지 큰소리로 울어대는 소리에 잠을 이루지 못할 때였다. 내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 출근해야 하는데 아기 조카는 새벽 3, 4시가 되도록 도통 잘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니, 누가 공부하라고 억지로 책상에 앉혀 놓은 것도 아닌데!
그냥 눈 감고 가만히 있으면 되는 건데, 그게 그렇게 어려운가?
아기들의 마음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배가 고파서 운다거나 기저귀에 똥을 싸서 우는 건 이해가 되지만, 대체 왜! 잠이 온다고 우냐는 말이다! 그냥 자면 되는거 아닌가?
귀마개로 아무리 귀를 틀어 막아도, 이불을 머리 끝까지 뒤집어 써도 아기의 울음 소리는 도저히 막아지지가 않는다. 엄마와 아빠, 내가 돌아가며 아기를 안아 달래주며 그만 울도록 시도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게 아무 것도 없었다
나의 평화롭던 방은, 아기 조카의 울음 소리로 인해 더 이상 내게 편안한 안식처가 되어주지 못했다.
아기 조카가 조금 자라 기어다니기 시작하면서 문제가 조금 더 심각해 졌다. 아기 조카는 천하 무적이 되어 손과 무릎이 닿는 곳은 어디든 가서 그 작은 손에 잡이는 것들은 모조리 입 안에 넣고야 말았으니, 안된다고 말하면 떼를 쓰며 아기 때 보다 더 크고 길게 울어댔다. 물건을 붙잡고 일어서기가 가능해지자, 이제는 매일 내 방으로 찾아왔다. 문을 닫아 놓으면 내가 열어줄 때까지 문을 쉬지않고 두드려 댔다. 문을 잠가 놓고 방에 없는 척 하기도 했지만, 키가 자라서 문 손잡이에 손이 닿게 되자 문 손잡이가 떨어질 것 처럼 손잡이를 돌려댔다. 퇴근 후 내게 주어졌던 평온한 고요함이 사라졌다. 퇴근 후 다시 집으로 출근하는 기분이였달까. 심지어 나는 조카를 그렇게 많이 보지도 않았는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느 날은 퇴근 시간이 훌쩍 넘어서도 계속 회사에 남아 있던 적도 있었다. 아무도 없는 공간에 조용히 혼자 있고 싶었기 때문에, 아기 조카가 언제든 침범할 내 방 보다는 차라리 텅 빈 사무실이 나을 정도였다.
조카로 부터의 독립을 꿈꾸던 나는 자취를 할까 고민했지만, 전세나 월세 비용이 너무도 아까워 망설였다. 소형 아파트를 매매할까도 진지하게 생각하다가 나는 갑자기 차를 구입하기로 결심한다.
갑자기 웬 차?
나는 어떤 영화를 보고 꼭 운전을 해야 겠다고 굳게 다짐했는데, 그 영화는 바로 <쇼생크 탈출>이다. 감옥을 탈출한 앤디가 멋진 차를 몰고 해안 도로를 멋지게 달리는 장면에서 나는 마음을 빼앗겨 버렸다.
'그래. 사람이라면 운전을 할 수 있어야지. 혹시 내가 앤디 같은 상황에 주어졌는데, 그때 내가 운전을 못 하면 어떻게 앤디처럼 꿈을 이룰 수 있겠어? 자취는 잠시 접어두고, 운전을 배우는거야!'
내가 앤디처럼 감옥 벽을 숟가락을 파서 하수구로 탈출할 일은 영원히 없을 테지만, 그때는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모를 탈출 상황을 대비해서 운전을 배워야겠다! 운전면허증은 있었기 때문에 도로 연수를 받아서 서랍 한 구석에 감춰진 예전 면허증에 햇빛을 쬐어주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문제는 차였다. 우리 아빠는 아주 낡은 수동 소나타를 몰고 계셨는데, 우리 엄마는 그 차로 운전 연수를 하다가 하마터면 아빠와 도장 찍고 영원히 갈라설 뻔 했다. 30년 부부 관계에 가장 큰 위기를 제공한 수동 소나타로 운전 연수를 할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그럼 나는 2가지 안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중고차와 새차. 다른 사람과의 신체적 접촉을 유달리 싫어하는 나는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이 탔던 불분명한 사연의 차를 구입하는 것에 거부감이 있었다. 따라서 나는 독립 자금으로 모아둔 돈에서 얼마 정도만 남겨두고 그 이름도 유명한 아반떼를 2000만원 전액 현금으로 결제하게 된다.
'나만의 방'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자동차 이야기를 꺼낸 것은, 조카가 점령해버린 우리 집에서 새로 산 나의 자동차가 나의 새로운 방이 되어 주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아방이(내 아반떼의 별칭)는 이동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기존의 내 방보다 월등했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크게 틀어놓고 비 내리는 도로를 질주했을 때에는 정말이지 눈물이 핑 돌 정도였다. 여름에는 에어컨으로 시원하고 겨울에는 히터로 따뜻하다. 버스나 지하철처럼 다른 사람과 불쾌한 신체접촉을 할 필요도 없다. 내 방에서는 혹시 거실에 들릴까 노래를 크게 따라 부르거나 엉엉 소리내어 우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는데, 아방이는 내가 아무리 시끄럽게 노래를 불러도, 꺽꺽 소리내며 울어도 그 모든 소리가 바깥 세상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따스히 품어주었다. 나는 곧 나의 새로운 이동식 방인 아방이와 사랑에 빠졌다. 퇴근 후 잠시 아방이에 앉아 멍을 때렸고, 술에 너무 마셔서 많이 취한 모습을 부모님께 보여드리고 싶지 않은 날에는 뒷 자석에 누워 술이 깰때까지 기다렸다가 집에 가곤 했다. 주말에는 아기 조카의 짐들로 발 디딜 곳 없이 좁아진 우리 집을 탈출해 서울과 경기도 이곳 저곳을 드라이브 했다.
나의 이러한 진귀한 경험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모두 부모님과 함께 사는 2, 30대 직장인 이었는데 경제적인 문제로 취직 후 부모님 집에 얹혀 살지만, 자기만의 공간이 필요한 이들은 모두 나처럼 자신의 자동차를 자신들의 방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우리 모두는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 건축학자 유현준 교수님께서 하신 말씀 중 무릎을 딱 치며 공감했던 이야기가 있었다. 헤드폰과 이어폰을 쓰는 사람들, 후드티를 깊게 눌러 쓴 사람들 모두 자신만의 사적인 공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라는 거다. 어쩔 수 없이 사람들 많은 공간이 있게 되더라도, 우리는 모두 무의식중에 자기 자신만이 존재할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코인 노래방, 피씨방, 스터디카페 등을 자주 찾는 십대 학생들도 마찬가지다. 남녀노소 상관 없이 우리 모두에게는 오롯이 자기 자신으로 존재할 공간이 필요하다.
혼자 즐기던 드라이브에 남자 친구도 함께 하였고, 그는 곧 나의 남편이 되었다.
신혼집은 내가 원래 살던 부모님 댁 근처에 낡고 작은 아파트였다. 그 집에는 없는 것이 많았는데, 우선 거실이 없었다. 안방과 작은 베란다, 좁은 부엌과 옷장 놓을 방이 전부였는데, 밥 먹을 곳도 마땅치 않아서 식사 시간에는 매번 접이식 상을 접었다 폈다 했다. 언제 한 번은 집들이 한다고 우리 가족들이 모두 모였는데, 어른 6명과 아이 2명이 있을 공간이 없어서 가족들은 짜장면을 5분 만에 게눈 감추듯 해치우곤 앉을 곳을 찾지 못해 당황해 하다가 집으로 황급히 돌아갔다.
밥 먹을 곳이 좁은 것은 사실 별 문제가 아니었다. 거실이 없어서 불편하기는 했지만 안방에 티비를 놓으면 되었기 때문에 침대에 누워서 티비를 보면 되어서 이것 역시 괜찮았다. 가장 큰 문제는 내 방이 없다는 거였다. 주말이나 일찍 퇴근한 날에는 도통 집에서 할 수 있는게 없었다. 내 책상도, 의자도 없었기에 침대 옆에 작은 밥상을 펴놓고 거기에서 책을 읽거나 컬러링을 했는데, 아빠 다리 하고 앉아서인지 조금만 있으면 허리가 아파오고 무릎도 삐그덕 거리는 것 같았다. 남편은 주로 옷장 방에서 컴퓨터를 했는데, 그 방은 옷장과 컴퓨터 책상 만으로 이미 꽉 차 있어서 그 방에 내가 있을 공간은 없었다. 13살 부터 내 방에서 주로 생활했던 나는, 내 방이 없는 그 집에서 이사 가는 날까지 내 마음 붙일 곳을 찾지 못했다. 있을 곳이 없어서 주로 침대에 누워서 지냈는데, 그러다보니 핸드폰을 너무 많이 사용하게 되어 시력이 나빠져 버렸다. 침대에 계속 누워있다가 몸이 지뿌둥해지면 집 밖으로 나가 산책을 했는데, 운동을 위한 공원도 15분 넘게 걸어야 해서 산책 마저도 자주 가지 않았다. 신혼집에 살림을 차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이사를 결심한다.
내 방이 있을 것!
할일 없이 침대에 누워 핸드폰도 이제 더 이상 할 것이 없어지면, 나는 앞으로 이사갈 새로운 집을 상상하곤 했다. 물론 가장 오랜 시간 동안 상상한 것은 내 방이다. 내가 그리는 방은 이러했다. 먼저 책상과 의자가 있다. 책상에는 내가 예전에 산 빨간색 스탠드가 놓여있다. (결혼할 때 책상은 못 들고 왔지만, 그 스탠드만은 기어코 가져왔다. 하지만 놓은 곳이 마땅히 않아서 식탁 위에 방치되어 먼지만 쌓여있었다.) 그리고 독서대와 공책, 필기구를 올려두고 책도 읽고 글도 쓴다. 그 옆에는 작은 책꽂이가 있는데 내가 좋아하는 책들로만 채워져 있다. 책꽂이와 책상 사이에는 노트북을 잘 숨겨둔다. 그리고 피아노.
피아노가 너무너무 갖고 싶다!
몇년 전에 경기도 신축 아파트에 잠깐 살았었다. 그 때는 내 방이 엄청 컸는데, 내가 피아노 연습하러 매일 학교에 일찍 가느라 고생하는 걸 보고는 아빠께서 통크게 사주신 야마하 전자 피아노가 있었다. 그리고 그 피아노는 서울의 작은 집으로 이사 올 때 언니에게 넘어갔다. 훨씬 작아진 내 방에 놓을 곳이 어디에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 동안 피아노를 못 쳤었는데, 조그만 신혼집에 살다보니 피아노 생각이 너무도 간절해졌다. 그래서 항상 신랑에게 "이사가면 피아노 꼭 살거야!"라고 말하며 내가 앞으로 살 피아노를 매일 보여주었다. 이년 반 살면서 그 소리가 귀에 인이 박혔는데, 이사짐을 옮기자 마자 신랑은 내게 얼른 피아노를 사라고 했다. 막상 사려니 싼 건 살 수 없고, 백만원 대에서 고민하고 또 고민한 끝에 마침내 며칠 전에 피아노 한 대가 내 방에 들어왔다.
오늘 아침에 설치된 피아노. 꿈은 이루어진다!
비로소 작은 신혼집 침대에 누워 매일 상상하던 나의 꿈이 모두 이루어졌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아쉽지만 아이가 태어나면 내가 쓰던 방은 아기 방으로 바꿀 예정이다. 아기 때부터 분리 수면을 적극적으로 실행에 옮길 예정이라, 아기에게 방을 주려고 한다. 그때는 내 피아노나 책상을 거실이나 안방에 놓을 예정인데 그 생각만 하면 벌써부터 마음이 아프지만 어쩔 수 없다. 나에게 방이 필요하듯 어린 아기에게도 자기 만의 방은 필요할 테니까. 아기가 아직 어릴 때라 잠시 이 방을 공유해도 좋고, 아기가 자란 후 이사갈 다음 집은 방 4개인 곳으로 구하면 된다. 그리고 그 전까지는 나만의 방이다! 그것 만으로도 장족의 발전을 이룬 것이니,
난 더할나위 없이 만족한다.
버지이나 울프는, 자기만의 방과 일정한 소득만 있다면 여성도 훌륭한 작가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 옛날,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을까? 정말 놀라운 성찰이다. 이는 비단 여성이나 작가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어떤 일을 계획하고 있던지간에 사람들은 모두 자기 만의 공간이 있어야 한다. 누구에게도 방해 받지 않는, 다른 사람을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내 꿈을 마음 껏 펼쳐볼 수 있는 공간 말이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이 오늘 퇴근 후, 혹은 자유 시간에 자기 만의 공간에서 여유롭고 편안한 시간을 보내며 충전의 기회를 가지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