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갈 곳이 있어야만 여행은 존재할 수 있다.
몇 년 전, 지인들과 저녁 식사 중 있었던 일이다. 그날의 대화 주제는 그 해 휴가 때 어느 곳으로 여행을 떠날지였고,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나와 남편을 제외한 모두가 신나게 자신들의 여행 계획을 자랑하고 있었다. 가만히 치킨 살을 발라 먹던 내게 누군가 질문을 했고, 남편은 평온하게 답했다. "이번 휴가 때 너네는 어디 안 가?", "안가. 우리는 여행 싫어해."
시끌벅적하던 술자리는 일순간 얼어붙었고,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입이 떡 벌어진 채로 나와 남편을 멍하게 바라보았다. '사실 지구는 둥근 공 모양이 아닌 정육면체 모양이었다'라고 나사에서 긴급 발표를 해도 그것보다는 덜 놀랐을 것이다. 몇 시간 같던 몇 초의 정적을 견디다 못한 내가 한 마디 덧붙이자, 그제야 사람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다시금 활발히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저희가 대출 이자 내기도 벅차서요.. 돈 아껴야 해서 여행을 못 가요ㅎㅎ"
나는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누군가 내게 공짜로 휴가를 주고, 모든 여행 경비를 내준다면야 당연히 간다. 그럼 말을 다시 정정해야겠다. 나는 아래의 4가지 이유로, 여행이라는 것은 가성비가 떨어지는 비효율적인 여가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나만 그런 것인지, 다른 사람들 대부분도 그러는 것인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나는 여행지에서 돌아와 집에 오고 난 후, 여행지에서의 일들을 좀처럼 기억하지 못한다. ('남는 건 사진 뿐이야'라며 카메라 셔터를 맹열히 눌러대는 여행 애호가들을 보면, 그들도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7박 8일을 오로지 프랑스 파리만 여행했던 적이 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한 도시에만 있었으니 엄청난 깨달음을 얻었으리라 생각하겠지만 전혀 아니다. 인생 최초의 해외여행에서 내가 느낀 거라고는 '파리는 정말 더럽고 냄새나는 도시군. 서울이 정말 최고의 도시야.'이다. 파리지앵들이 들으면 화가 나서 펄쩍 뛰겠지만 뭐 어쩌겠는가. 내 감상이 그러한 것을. 흙탕물의 센강보다는 우리의 한강이, 거대란 쥐와 오줌 냄새 가득한 파리의 지하철보다는 와이파이와 에어컨 빵빵 터지는 서울의 지하철이, 일주일 내내 익숙해지지 않는 타 인종 사람들의 냄새보다는 세련되고 깔끔한 서울 사람들의 향기가 내 취향인 것을 어쩌겠나.
"파리가 너의 취향이 아니었던 거지. 다른 나라를 가봐. 그럼 생각이 달라질걸?"이라고 반문할 사람들에게 고한다. 이십 대의 나 역시 스스로에게 그렇게 반문했다. '여행이 이렇게 별거 아닐 수가 없어. 미디어에서, 주변 사람들 모두 여행을 다녀와야 진정한 경험을 한 거라고 했어. 다른 나라로 여행을 가 보자. 그럼 뭔가 다르겠지.' 파리 이후로 나는 대만, 홍콩과 마카오, 일본의 오사카와 도쿄, 베트남의 나트랑, 독일, 오스트리아, 체코, 미국 미네소타를 여행했다. 그리고 느낀 점은?
"여행은 내게 맞지 않는다. 돈 낭비다."
위의 명제는 17박 18일의 기나긴 동유럽 여행에서 굳건해졌다. 동행자와 한 달 가까이 세밀한 계획을 세우며 준비했고, 인천으로 향하는 공항버스에서는 가슴이 너무도 설레었다. 하지만 프랑크프루트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문득 집에 가고 싶다는 강한 충동에 휩싸였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생각이 떠올랐고, 남은 17일의 시간 동안 매일 이 생각을 되뇌었다.
"돌아갈 곳이 있어야 여행은 존재한다."
돌아갈 집이 없다면, 여행은 즐거운 여가 생활이 아닌 생존을 건 방랑이다. 그 자체 만으로 성립되지 않은 불완전함이 바로 여행이 지닌 불안한 속성이다. 나를 기다리는 가족과 따뜻한 음식과 방이 있어야만 비로소 존재할 수 있는 의존성이야 말로 모두가 찬양하는 여행의 본질이다. 게다가 기억력도 그다지 좋지 않아 여행지에서 무얼 먹고 마시며 관광했는지 잘 떠오르지 않는다? 가성비가 너무 떨어진다.
나는 서울에서 유치원생때부터 지금까지 쭉 살았다. 기억의 시작도 서울이다. 이런저런 나라를 가보아도 서울만큼 선진화된 도시는 내 경험상 없다. 깨끗한 거리, 저렴한 대중교통, 모든 것을 다 품어줄 것 같은 넓은 아량으로 치맥 하는 젊은이들에게 낭만을 선사하는 한강. 골목골목 맛집들이 가득한 대학가. 지친 얼굴로 출퇴근하는 사람들까지. 나의 추억이 깃들지 않은 곳이 없다. 해외여행, 국내여행 갈 돈으로 서울에서 가보지 않은 지역을 가거나 먹고 싶었던 식당에 가는 편이 내겐 훨씬 더 합리적 선택이다. 어느 나라를 가도 서울과 이것저것 비교하며 따지게 되니, 난 정말이지 여행 체질은 아니다.
개방성이 높은 사람들, 예컨대 연예인 노홍철 같은 사람들은 여행이 곧 삶이다. 낯선 사람들과 이색적 풍경은 그들에게 내일을 살아갈 에너지를 줄 것이다. 하지만 내향적 성격의 나는 전혀 그렇지 않다. 강한 통제형인 나는 앞으로 내게 벌어질 일들의 모든 경우의 수를 머릿속에 떠올리며 계획을 세워 마음의 안정을 찾는다. 따라서 여행을 떠나기 전, 기차와 버스의 출발과 도착 시간은 물론이요, 휴무일과 브레이크 타임을 고려해 삼시세끼 가야 할 식당을 계획하고 매 시간 가야할 관광지를 엑셀에 빠짐없이 기록해야만 직성이 풀린다. 그러니 내게 있어서 여행이란, 정해진 미션을 완수해야만 끝나는 또 다른 이름의 숙제에 지나지 않는다. 만일 사전 조사와 다르게 식당이 문은 열지 않았다? 기차가 연착되었다? 그럼 나는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는다. 아무 식당이나 들어간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 식당이 만약 맛 없는 곳이라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한 끼를 날리는 건데? 극도의 효율을 따지는 내게 여행은 너무도 피곤한 과제일 뿐이다. 그 돈과 시간으로 나를 더 만족시키고 행복하게 할 일은 너무도 많다.
사실 나는 국내여행도 좋아하지 않는다. 호텔의 청소 시스템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기 때문인데, 구름같이 하얗고 폭신한 호텔에 누우면 '베개랑 이불을 맨날 빨기는 할까? 대충 정리만 해서 새로운 투숙객을 받겠지?'라는 의심이 들어 화장실 수건을 베개 위에 깔아야만 잠을 잘 수 있는 결벽증세가 낯선 잠자리에서 발동하기 때문이다. 난 결코 깔끔 떠는 성격이 아닌데도, 꼭 잠자리에서 만큼은 내가 직접 세탁한 베개피와 이불, 그리고 심혈을 기울여 선택한 베개여야만 안심이 된다. (사실 그래서 나는 부모님 집에서도 잘 잠들지 못한다.) 여행지에서 푹 잠들지 못하니 계속 피곤한 상태로 다음날의 일정을 소화하게 되고, 이는 여행 중 성격이 더러워지고 사소한 일에 짜증을 내게 되는 치명적 문제를 낳는다. 국내 여행 중 내가 가장 행복한 순간은, 집에 돌아와 짐을 풀고 샤워를 마친 후 나의 침대에 누워 잠들 때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좁은 이코노미 좌석도 내가 여행을 꺼리는 수 많은 요소들 중 하나이다. 호텔의 침대도 불편해하는 나인데 오죽하랴. 다리조차 마음대로 펴지 못하고 옴짝달싹 못한 채로 몇 시간이고 앉아있어야 하는 것은 내게 고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짠맛 밖에 느껴지지 않는 기내식을 우적우적 먹고 더부룩한 채로 잠을 자는 것도, 그렇다고 깬 것도 아닌 묘한 상태로 잠들기 위해 머리를 이리저리 굴린다. 또 기내는 얼마나 건조한가. 실시간으로 피부가 쩍쩍 갈라지는 게 느껴지고, 화장실이라도 한번 가려면 옆사람에게 굽신굽신 하며 양해를 구하고, 나의 다리가 옆 사람의 무릎에 닿지 않기 위해 조심 또 조심하여 좁아터진 변기로 가야 한다. 찔끔찔끔 나오는 수돗물로는 양치도, 세수도 할 수 없고 손만 겨우 씻어야 한다. '비행기 좌석을 세탁 하기는 할까? 바닥에 청소기라도 돌리면 다행이지.' 뭐 이런 생각에 불만은 커져만 가고, 내가 왜 비싼돈 돈 주고 이런 개고생을 사서 하나- 현타가 온다.
불후의 명저 <사피엔스>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고대의 부유한 사람들은 지금처럼 해외여행을 하며 자신의 여유로운 시간과 부를 과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무덤을 크고 거대하게 짓거나, 가족이 사는 집을 근사하고 멋있는 성으로 건축했지 지금처럼 여행을 숭배하는 문화는 얼마되지 않은 문화다.
그렇다면 현대 사람들은,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언제부터 여행에 열광하게 되었을까? 대체 언제부터 여행이라는 것에 자신의 시간과 돈, 에너지와 체력 모두를 갖다 바치게 되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단체로 '여행은 신성불가침한 것'이라는 집단적 세뇌를 당한 것이 틀림없다. 나는 이러한 집단 최면의 시작을 한비야 님의 책이라고 감히 추측하는데, 물론 한비야 님을 비난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녀의 삶을 존중하고 그 옛날부터 세계 평화를 위해 노력하는 아주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역설적으로, 오히려 그녀의 책이 너무도 훌륭하였기에, 그 당시 중고등학생이었던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고, 자유로이 여행하는 자들에 대한 막연한 동경심을 어린 마음에 심어준 것은 아닐까.
나 역시 집-학교-학원-독서실을 반복하는 지루한 삶을 살던 중 한비야 님의 책을 읽고 이런 생각을 했다. '그래. 이런 게 진짜 인생이지. 한번 사는 인생, 이렇게 자유롭게 여행 다니면서 사는 거야. 얼마나 멋있어? 지금의 내 삶은 가짜야. 이런 삶이 진짜지.'
하지만 몇 번의 여행을 해 보니, 나는 절대 여행에 적합한 인물이 아니다. 그리고 지금은 여행에 쓴 돈이 너무나 아깝게 여겨진다. 꼭 가고 싶었던 나라가 아닌데도, 갑자기 휴가가 생겨서, 친구가 가자고 해서, 남들에게 말하면 멋있게 보일 것 같아서 별생각 없이 떠난 여행이 대부분이었다.
해외여행은 신이 아니다. 복잡한 인생의 문제를 풀어주는 해결책도, 어떤 커다란 깨달음을 주는 수행의 도구도 아니다. 현실에서의 삶과 나의 가치관을 실현시켜 줄 꿈이 '주'가 되어야한다. 여행에서의 삶만이 진짜이며, 매일 반복되는 지루한 삶은 여행에서의 찬란한 순간을 위해 존재하는 '객'이라고 착각해서는 안된다.
무엇이 본질인지 잊지 말자. 돈 벌기 위해,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졸린 눈을 비비며 매일 회사로 출근하는 것이야 말로 한 없이 숭고한 것이다. 피곤에 찌든 채로 집안일을 하고, 핸드폰 조금 하다가 기절하듯 잠드는 일상이야 말로 삶의 본질이며 가장 소중한 나의 인생이다.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돈을 벌고 세금을 내고 대출을 갚고 자녀을 키우며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애쓰는 그 모든 행동이야 말로 인생의 본질이다. 부디 본질을 잊은 채 여행이라는 환상을 쫒지 말자.
다시 생각해보니, 아까의 말을 정정해야 겠다. 누군가가 내게 공짜의 휴가와 모든 여비를 줄테니 여행을 떠나라고 한다면 나는 아래와 같이 답하겠다.
"여행 대신에 그 돈을 그냥 계좌이체 해주면 안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