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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를 위한 공간, 공간을 위한 애도

목정원, 《어느 미래에 당신이 없을 것이라고》

by 묵온

(2023. 3. 15. 발행)


공연장이 아닌 곳에서 연주할 때는 특유의 설렘을 느꼈다. 나의 일부를 떼어 빚은 노래를 들려준다는 보람이 옅어지고 일정 주기로 일을 반복할 뿐이라는 타성이 짙어질 무렵, 내게 전혀 새롭지 않은 곡을 난생처음 접하는 환경에서 부르는 일은 진정 흥미로운 자극이었다. 음악과 무관한 목적으로 꾸려진 공간은 그야말로 새로운 세계였고 그런 장소에서 목소리를 내고 현을 퉁기는 순간에는 내가 음악을 좋아한 이유를 새삼 상기할 수 있었다. 음악은 내가 가 보지 못한 세계로 나를 잠시 데려다주고 이내 내가 그곳을 그리워하게 했던 것이다.¹

2019년 봄, 동료 음악가들의 초대를 받아 문래동에서 공연한 적이 있다. 갓 차린 미술 작업실이었다. 그저 인스타그램에 공연 소식만 올린 내가 그곳에 들어섰을 때는 작업실의 주인 겸 공연 기획자와 나를 제외한 공연자 2인이 정성껏 무대를 꾸민 뒤였다. 형태와 크기가 제각각 다른 나무판들을 겹쳐 놓아 배경을 만들고 천장 중앙에 나무 모빌 조명을 달아 두었다. 연주 중에는 공연 팀별로 하늘색, 보라색, 연두색 등 다른 색의 조명을 비춰 분위기를 바꾸었다. 공연 관계자 대부분이 미술가였기 때문인지 그 공간은 내가 연주해 본 다른 어떤 공연장보다도 심미적이었다. 완벽히 다듬어지지 않아 더욱 아름다웠던 그 장소의 빈자리를 다른 공연자들의 벗들과 당시 나의 직장 동료들이 메웠다. 그토록 다정한 분위기에서 만족스럽게 연주하고 다음 날 아침까지 이야기를 주고받은 경험이 지금까지도 귀하고 소중하다.

공연에 온 손님들이 기록한 영상과 사진이 남아 있다. 영상을 재생하면 그 시절에 내가 연주를 무척 어렵게 했다는 점을 새삼 깨닫는다. 선율이 높아지거나 리듬 필인이 필요해지는 부분에 들어서면 목이나 손에 한껏 힘을 주어 음량의 격차를 지나치게 강조하는데, 아마 어떤 식으로든 관객을 놀라게 해야 내게 집중시킬 수 있다는 계산에서 그랬으리라 짐작한다. 작품을 진지하게 여기는 태도는 갖추었으나 듣는 이를 배려하는 여유는 빠트린 당시의 나를 조금 딱하게 바라본다. 화면 안에서 노래하는 나를 주시하는 지금의 나처럼 당시의 청중도 고개를 갸웃했을지 궁금하다.

반면 사진을 모니터에 띄우면 나를 둘러싼 공간을 떠올린다. 프레임 안에서 기타를 잡은 자세는 영상과 똑같지만, 사진에서는 소리가 흘러나오지 않고 내가 배경과 마찬가지로 정지해 있다. 그 결과 시선이 공연자인 나를 비껴가 가장자리로도 향하고 기기의 한계로 부득이하게 잘린 바깥까지 도달한다. 정확히 어떤 모습이었는지 이제 확인할 길이 없는 그 공간에는 공연을 준비한 이들이 배치해 둔 소품들, 공연자들과 각별한 관계를 맺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 순간으로부터 6년이 지난 미래인 현재, 그 모든 이들은 작업실에 없다. 더욱 먼 미래가 현재가 될 시점에는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오직 사진과 영상과 이 글만 남아 그때 그 자리에 사람들이 있었다고 증언할 것이다.


공연 후 5년 반이 지나, 나와 같은 무대에 올랐던 음악가이자 미술가의 전시에서 작가 겸 공연예술이론가 목정원의 글을 처음 접했다. 공간을 차지했던 이가 사라진 뒤의 흔적을 응시하는 작품들을 소개하는 글에 작가는 안티고네의 애도를 끌어왔다. 오이디푸스가 자신의 눈을 찔러 신탁을 실현하고 방랑하는 동안 딸 안티고네는 아비의 팔을 붙들고 함께 길을 헤매지만 묻힐 곳을 알리기를 꺼리는 아비의 바람을 읽고는 헤어진다. 망자의 마지막 위치를 모르는 딸은 어느 곳으로 눈길을 돌려도 슬픔을 보니, 곧 세상 전부가 애도의 장소가 된다. 이렇게 애도의 ‘편재’—전시에 걸린 한 그림의 제목이기도 하다—를 지목하는 글을 읽고 나니 겨울 연못, 밤바다, 연기가 피어오르는 화장터와 같은 그림 속 장소들을 무심히 보기 어려워졌다. 감상자의 눈길을 바꾸는 작가의 책을 숙독하고 싶었다.

“슬픔을 알아보는 사람”²인 작가는 첫 저서 《모국어는 차라리 침묵》에서 공연예술에 애도가 내재한다는 점을 논한다. 공연예술은 그 본성상 저장이 불가능하다. 글은 책으로, 그림은 캔버스로, 음원은 파일로 붙잡아 둘 수 있으나 연극, 무용, 연주 등의 공연은 무대에서 이루어지는 순간에만 존재한다.³ 관객으로서 현장에 가지 않으면 그 시점에 벌어진 사건을 영영 만날 길이 없고 동일한 제목으로 올려지는 타 회차를 본다면 이미 놓친 공연과는 다른 것을 대할 뿐이다. 혹 객석에 앉아 무대 위 사람들의 움직임을 처음부터 끝까지 오롯이 눈에 담았더라도 자리를 뜨는 즉시 공연은 기억으로만 남는다. 무대 위의 몸짓이든, 곁에 있는 사람의 버릇이든, 어느덧 머릿속 상(像)으로만 남은 것이 희미해지는 속도를 늦추기 위해서는 계속 상기하고 진술해야만 한다. 프랑스 유학 중 박사 논문을 작성하느라 이외의 삶을 잠시 멈추어야 했던 작가는 그 와중에도 공연을 보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던 시절을 뒤늦게 기록해 책으로 펴냈다. “이제는 발생을 멈춘 것들을 끝내 뒤돌아보기 위해서”⁴ 쓴 책은 작가의 바람대로 유예의 시간을 건너 나를 비롯한 독자들에게 닿아 기억의 수명을 늘렸다.

나는 내가 젊은이로 불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의식하며 이 책을 읽었다. 어느덧 노인이 되어 나를 안쓰럽게 하는 부모와, 내가 따라잡기 버거운 화제를 꺼내는 동료들을 생각했다. 한때는 세상의 나머지야 아무 상관도 없을 듯 서로만 아는 은밀한 기쁨을 나누었으나 이제는 자주 만나지 못하는 사람들을 떠올리며 언젠가 그이들의 부고를 들으면 장례에 참석할 수 있을지 자문했다. 《모국어는 차라리 침묵》이 내 마음에 파문을 일으킨 까닭을 더듬어 보면 생성보다 소멸을 자주 목도할 내게 이 책이 애도로써 사랑을 행하는 자세를 제시했기 때문일 것이다. 가장 편한 소통 도구인 모국어마저 침묵이 될 때, 잠자코 스러지는 것을 당장은 기록하지 못하더라도 세심한 눈길로 바라보기. 발화가 가능해지는 훗날에, 잠긴 목소리와 떨리는 손으로나마 복원하기. 그 마음가짐을 실천하고자 이 졸한 격월 평론을 시작했다는 것을 굳이 밝힌다.


이미 사라져 버린 공연과 다시는 만나기 어려운 사람들의 아름다움을 풀어놓았던 첫 번째 책에 비해, 두 번째 책 《어느 미래에 당신이 없을 것이라고》에서 작가는 말을 더욱 줄인다. 그 제목과 “없을 당신에게”⁵라는 헌사로 독자가 부재할 앞날을 예비한 뒤 이 책이 주로 보여 주는 것은 사진이다. 침엽수가 듬성하게 솟은 눈밭, 아파트 앞 빗물이 고인 공원 안의 작은 회전목마. 자연과 인공물 중 어느 쪽을 담은 사진이든 사람이 없어 쓸쓸한 것이 대부분이며, 사람이 있는 사진이더라도 인물이 초점에 온전히 맞은 경우가 드물다.

피사체가 인격을 잃다 못해 꼭 의도적인 형태를 띠는 정물처럼 공간의 일부를 이루기도 한다. 아르카숑의 모래 언덕을 찍은 사진 속의 공간은 퍽 기하학적인데, 수많은 이가 하나의 줄을 지어 오르는 광경 속에서 사구와 하늘의 경계, 사면에 놓인 계단, 그 길을 따라 언덕 꼭대기로 향하는 사람들은 비슷한 기울기의 선들을 이룬다. 이렇게 사람이 주변 사물과 마찬가지로 조형 요소로 기능한다면 줄기 끝에 매달린 꽃망울이나 한쪽 벽이 다 뜯긴 폐가와 그리 다르지 않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사진 속에서는 이들이 동물보다 식물 내지 무생물에 가까운 셈이다. 한 해마다 기어이 원래 모습으로 돌아오거나 생명이 없어 애초에 죽지 않는 존재를 담은 이 사진들은 영원을 암시한다.

기실 영원은 이 사진산문집 고유의 특성이 아니라 사진 자체의 본질이다. 사진을 찍는 행위는 끊임없이 흐르는 시간 속에서 순간을 떼어 고정하는 일이다. 이는 회화 그리기와 두 가지 측면에서 다른데, 결과물이 순식간에 만들어지고 현실과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닮았다는 점에서 그렇다. 온 세상이 변화하는 가운데 카메라의 셔터나 휴대폰의 버튼만 누르면 시간의 일부를 고스란히 본뜰 수 있고, 그 절단면이 방금 눈으로 본 광경과 거의 똑같기에 사진은 신비롭다. 사각형 틀 안에 잡힌 찰나와 훗날 누군가 그 장면을 들여다보는 시점이 멀어질수록 신비는 더욱 짙어지며, 사진을 보는 이는 자신의 눈앞에 버젓이 있는 그 형상이 언제까지나 세상에 존재하리라 확신하기에 이른다. 너무나 간편한 조작을 통해 영구하며 상세한 이미지가 탄생하는 일을 수전 손태그는 이렇게 표현한다. “사진은 멸하는 존재를 보관한다. 이제는 손가락만 놀리면 죽음 이후를 찰나에 내비치는 아이러니를 만들 수 있다. 사진은 사람이 살아가다가 특정한 나이에 거기 틀림없이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 주며, 잠시 후면 흩어지고 변화하고 각자의 운명을 계속 따라갔을 사람들과 사물들을 한데 묶는다.”⁶ 피사체의 소실을 이미지의 영원이 숨긴다.

목정원은 이 괴리를 인식하기에 슬픔을 느낀다. “사진의 근본은 그 대상이 존재했음을 증명하는 데 있다”⁷고 하면서도 “마치 영원히 있을 것처럼 그때 당신이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은 더 이상 그렇지 않음을 확인하는 일”⁸이라고 덧붙인다. 슬픔을 달래고자 가장 쉽게 떠올릴 만한 방법은 망자의 생전 모습이 담긴 사진을 보며 추억하는 것이다. 꽃을 놓기 전에 영정 사진을 일별하거나 오래된 앨범을 펼치는 일은 대상을 자기 앞으로 데려오는 행위, 즉 전유(專有)다. 다시 손태그를 인용하자면 “사진 촬영은 사진으로 찍힌 것을 전유하는 일이다. 자기 자신으로 하여금 지식, 곧 권력과 같은 어떤 관계를 세상과 맺게 한다는 뜻이다.”⁹ 인스타그램 사진이 범람하는 2025년 현재 카페의 달콤한 디저트, 휴가지의 한가로운 풍광, 아름다운 외출 복장을 찍는 동기는 이 순간이 지나가면 다시는 마주치거나 구현하기 어려운 대상을 이미지로나마 가지겠다는 마음이다.

이런 전유를 달성할 수 없는 사람은 어떤 마음으로 사진을 찍는가? 《어느 미래에 당신이 없을 것이라고》의 작가는 “당신”으로 호명하는 이를 직접 찍은 사진을 피하고 그 대신 “당신”과 함께 보지 못한 풍경을 건넨다. 《모국어는 차라리 침묵》 출간 후 친구를 떠나보냈다는 작가¹⁰가 “그저 떠돌다 장면을 발견하면 (중략) 갖고 오고 싶었습니다. 미래로. 당신에게로.”¹¹라고 고백하는 것을 생각해 보면, 작가는 고인에게 아름다운 풍경을 선물하려 했다고 추측할 수 있다. 나는 작가가 상대를 취하지 않고 상대에게 무엇을 주는 애도를 시도했다고 말하고 싶다. 이는 전유가 선물보다 나쁘다는 가치 판단이 아니다. 나의 지인이 아니기에 전유할 수 없는 상대에게도 선물로써 영원한 애도를 행할 가능성에 주목하자는 제안이다.


작가의 사진 속에 인지도가 높은 개체는 없다. 책의 말미에 실린 촬영 지역 정보를 잊는다면 세상 어느 곳에서 찍었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 만큼 흔한 사물이 담겨 있다. 이 대상들은 대부분 정지해 있고, 드물게 엿보이는 변화마저도 바다에서 파도가 치거나, 식당 손님이 음식을 들거나, 줄에 매달린 빨래가 바람에 펄럭이는 등 장소에 지극히 어울리는 움직임뿐이다. 돌연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이 사진들을 보고 감상자가 얻을 수 있는 정보는 많지 않다. 존 버저는 이에 관해 사진의 “지름”이라는 흥미로운 개념을 내세운다. 사진은 시간 속 사건의 움직임을 멈추어 세우므로 시간이라는 유체를 칼로 가른 절단면에 비유할 수 있는데, 이 절단면은 “사건의 순간적 외양들에서 찾을 수 있는 정보의 양”¹²에 따라 넓어지거나 좁아진다. 사진에 찍힌 이와 사진을 보는 이가 서로 아는 사이거나, 사진의 소재가 사회 구성원 대다수에게 알려졌거나, 사진에 담긴 물체들 혹은 동작들 간의 상호 연관성이 커서 무슨 상황인지 짐작하기 쉬울 때 그 절단면인 사진의 지름은 커진다. 가까운 이의 죽음을 추모하는 동기로 촬영했고 소수의 물체와 그를 에워싼 공간만 조용히 담은 사진은 지름이 작다.

작가는 절단면 대신 “구멍”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면서, 구멍의 지름을 넓혀 독자를 빠뜨리고자 사진의 재현 불가능성과 아우슈비츠 생존자의 침묵을 연결하는 글을 덧붙인다. 회화를 아득히 앞지르는 사진의 해상도에 경탄하느라 곧잘 잊는 사실이지만, 아무리 현실을 닮은 사진이라도 세계의 아주 작은 일부만 반영할 뿐 프레임 바깥의 배경은 모두 버려야 한다. 네모진 장면의 맥락을 알기 위해서는 사진을 찍은 사람에게 이야기를 청해야 하며, 세월이 흐른 뒤에는 촬영자의 기억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거나 촬영자가 사망했다면 주변에 흩어진 관련 자료를 모아 더디게 추론해야 한다. 이런 지연은 아우슈비츠에서 벌어진 폭력을 파악하는 데도 뒤따른다. 전쟁이 끝나고 고향으로 돌아온 생존자가 눈앞에 닥친 생활을 영위하려 한다면 몸에 새겨진 잔혹한 흔적을 잊는 길 외에 도리가 없다. 단죄를 위한 법정에서 증언하고자 격리 시절을 상기하는 과정이 트라우마에 가로막히는 것을 수정주의자는 홀로코스트가 없었다는 구실로 삼지만, 현실을 온전히 옮기지 못하는 사진이 틀 바깥 세계의 존재를 증명하듯 생존자의 침묵은 언어로 나타낼 수 없는 고통의 지속을 내보인다.

무도한 힘에 억눌려 죽었거나 겨우 버티어 살아남은 자에게 사회가 취하는 태도는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외면이다. 가해 측이라면 잘못을 은폐하기 위해, 피해 측이라면 자존심의 붕괴를 부정하기 위해 애초에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은 듯 모르는 척하는 것이다. 이미 빈자리가 생겼고 그중 일부는 다시 메워졌다는 엄연한 사실을 무시한다는 점에서 이는 기만이며, 훗날 어느 주체든 섬멸, 복수, 지배, 전복 따위의 목적으로 물리력을 다시 행사할 여지를 남긴다. 두 번째는 기억이다. 괴로움을 당해야 할 이유가 없었던 이들이 왜 목숨을 빼앗겼는지, 같이 수용소에 갇힌 이들 중 나머지는 어쩌다 살아남았는지, 누가 어떤 연유로 이들을 갈라놓는 비극을 초래했는지 질문하면서 그 답의 무작위성에 말문을 잃는 것이다. 나는 살았으니 됐다는 이기적 자족을 경계한다면, 내가 살아남은 것이 순전히 운이었으며 누구나 희생자가 될 수 있었다는 자각은 타인과 나의 차이를 미미하게 하는 연대로 이어진다. 기이할 것 없는 풍경을 담은 사진들이 세상 어느 곳에 사는 사람에게나 아름답게 보이듯이.

함께 살던 가족이 죽으면 집 밖으로 내보내는 관습 탓인지 우리는 죽은 사람을 사회에서 추방해야 한다고 여기는 듯하다. 특히 그 죽음이 사회 기능의 부작동에 기인할 때는 애도마저 금기가 된다. 순수를 신봉하는 극우의 입장에서 국가—이들은 ‘사회’ 대신 꼭 ‘국가’라는 말을 쓴다—의 오류는 곧 오염이며 이를 연상시키는 모든 행위는 국가에 먹칠하는 짓이다. 세월호 기억공간이 광화문 광장에서 서울시의회 앞마당으로 밀려나 불법 점유물로 격하당하고¹³ 이태원 참사 추모 공간이 지금까지 이곳저곳을 전전하는 실정이다¹⁴. 시신을 묻는 일이 망자를 자신의 공간에서 쫓아내는 청소가 아니라 별도의 공간을 마련해 잘 모시는 의례라고 믿는 이는 이런 ‘죽음 혐오’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느낄 것이다. 김현경이 지적한 바와 같이 “사회는 산 자들로만 이루어진 게 아니다. 죽은 자들 역시 사회 안에 자리를 가지고 있다.”¹⁵ 예상보다 일찍 당도한 죽음을 맞은 이의 자리를 부리나케 빼앗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공간을 선물하는 애도는 사랑하는 이를 잃은 폐허의 생존자가 고인에게 마지막으로 실천하는 사랑이며, 이 지난한 사랑을 유족에게 죄다 떠넘기지 않겠다고 사회가 다짐할 때에야 넓은 지름의 심연이 비로소 들여다보인다.


사라져서 슬픈 것이 사람만은 아니니 애도의 대상을 사람 너머로 확장할 수도 있을 테다. 나는 ‘애도를 위한 공간’을 뒤집어 ‘공간을 애도’하는 경우를 상상한다. 공동체에 발을 들이려 하는 외부인이 그 안의 사람들 중 한 명을 점찍어 내부 사정에 관해 묻기는 쉽지 않지만, 공동체의 거점이 있다면 공간 안에 가만히 자리를 잡은 채 그곳에 어떤 사람들이 드나드는지 관망하다 그 사회에 합류할지 말지 판단할 수 있다. 공간의 존재가 개인에게는 공동체에 참여하는 문제를 어떤 압박이나 무안도 없이 편안히 검토하게 하고 공동체에는 유연한 팽창을 허락한다.¹⁶

이렇게 공동체에 들어온 구성원들의 경험으로 공간이 채워지지만 공간의 유지를 끝내는 시점은 운영 주체의 의지 대신 건물주의 갑작스러운 통보로 정해지고는 한다. 어느 장소에 모인 사람들이 특정 시간에 걸쳐 활동을 하고 감정을 느끼는 경험의 총체를 ‘공간’이라 하면, ‘건물’은 결코 ‘공간’이 아니다. 깊은 사랑을 받았던 공간이 건물에서 밀려나 다른 구조물을 옮겨 다닐 때 기존 공간의 이름은 옛 건물이 아니라 운영 주체가 잠시라도 새롭게 자리 잡은 곳에 붙는 편이 자연스럽다. 건물주의 친인척이 세입자를 몰아내고 상호 변경 없이 사업을 지속한들 손님은 그곳이 변했다고 느낀다. 공간을 형성하는 데 기여하는 정도를 감안한다면 건물주와 세입자가 공간에 대해 지니는 권한은 동등해지거나 뒤집혀야 한다.

자본주의를 대체할 길이 요원하다면 미래의 경제학자들은 공간의 가치를 금전으로 계량화하는 방법을 고안해야 할 것이다. 소작료가 수확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부조리를 혁파하고자 대한민국 제헌 의회가 농지개혁법을 만든 사례에 비추어 볼 때, 영업 수익으로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하는 21세기의 전근대적 현실을 그대로 두겠다는 생각은 아무래도 잘못되었다. 공간이 없어지면 그곳에서 교류하던 사람들의 집단이 소멸하고, 장소를 기반으로 삼아 넓은 사회에 영향을 미치려던 계획이 반향을 듣지 못한다. 망자를 사진으로 추억하듯이 사라진 공간도 그럴 수 있을까? 고작 몇 개월 혹은 몇 년 단위의 계약에 묶인 공간과 달리, 공간의 외양을 이루는 건물은 사진 속에서 굳건하기 그지없다. 나는 그 낙차가 슬프다.


2025년 3월 15일, 《어느 미래에 당신이 없을 것이라고》의 출간 2주년을 맞아 낭독회가 열렸다. 행사 장소였던 공주 제민천 변 미정작업실의 개업 3주년을 앞둔 날이기도 했으나, 나는 이후로 그곳을 다시는 방문할 수 없게 되었다. 이 글을 탈고하기 전날 미정작업실이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대기 신청으로 다행히 취소 표를 건진 지 열흘 남짓 만에 인스타그램으로 폐업 소식을 접했다. 애석한 마음을 안고 낭독회 당일 그곳에 들어섰을 때, 포근한 공간에서 책을 읽거나 맥주를 마시다 창밖 물길로 눈을 돌려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을 사람들을 볼 수 없다는 데 아쉬움을 느꼈다. 평소와 달랐을 그날 그 공간에는 스무 석 정도의 의자가 빼곡히 차 있었다.

목정원 작가는 일찍이 도착해 좌석들 앞의 아담한 무대에 서 있다 자리를 비웠고, 30분 동안 손님들이 속속 객석을 채운 뒤에 돌아와 나지막한 목소리로 낭독을 시작했다. 이미 혼자서 두 번 이상 읽으며 불가피한 헤어짐에 몸서리를 친 책이었지만, 그토록 가슴 아린 문장을 쓴 작가의 목소리를 들으며 이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다시 읽으니 안도감이 들었다. 사위가 어두워지자 낭독을 마친 작가는 곧이어 자신이 속한 포크 듀오 ‘기타와 바보’의 노래를 몇 곡 연주했다. 〈천문〉이라는 노래를 연주하기 전에 작가가 말했듯 낭독과 연주가 이어지는 동안 그 공간은 하나의 우주였다. 우리가 사랑하는 것들을 아우르는 시공간 전체가 그곳에 있었다고 믿을 수 있었다.

낭독과 공연이 끝난 뒤 사인을 받으며 작년의 전시 소개문으로 작가님을 알게 되었다는 인사를 했다. 혼자서는 술을 마시지 않기로 한 다짐을 어기고 앞으로 기회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패션프루트 캔맥주를 사서 나왔다. 숙소에서 밤을 보낸 후 다음 날 아침에 비어 있는 미정작업실을 다시 찾아가 사진을 찍었고, 집에 돌아와서는 공간이 사라진다는 소식을 아쉬워한 분이 만들었다는 은은한 차를 우려 마셨다. 한 달 조금 넘게 지난 지금까지 나는 그날 작가의 문장을 듣고 미정작업실의 개업 3주년 및 종업을 기념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을 기억한다. 그 짧았던 공동체를 품은 공간을 흔적 없이 흘려보내지 않기 위해 이 글을 썼다.


2025. 4. 20.


¹나는 내가 음악과 멀어진 이유 중 하나로 미지의 장소를 그리워하게 하는 곡을 이제는 좀처럼 찾기 어렵다는 점을 꼽는다. 오늘날 한국에서 들리는 음악 다수는 다분히 도회적이며 한국에서 ‘도시’는 내가 자리를 잡은 지역인 ‘서울’로 곧장 환유된다. 음악을 듣는 시간마저도 집과 일터 일대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은 가혹하지 않은가?

²목정원, 〈춤을 나눠드립니다〉, 《모국어는 차라리 침묵》, 아침달, 2021, 169쪽.

³음악은 공연예술로 출발했으나 19세기 축음기의 출현 이후 점점 무대에서 떨어져 나왔다. ‘음원(音源)’의 뜻이 ‘소리의 근원’에서 ‘음악을 저장한 데이터’로 바뀐 오늘날 음악에 대한 담론은 음악이 연주의 종결과 함께 사라지는 신비를 잃었다는 회고적 개탄 혹은 변방의 앨범이 강대국 주류 시장 차트의 1위에 올랐다는 신자유주의적 영합으로 갈리는데, 나는 이 분열 속에서 자주 길을 잃는다. 1980년대 한국에서 태어난 나는 음악이 흐르는 순간을 특별하게 여기고 본능적으로 좋아하며 자랐으나, 2000년대 이후를 살면서 어디서나 음악을 쉽게 재생할 수 있다는 데 익숙해졌다. 파스칼 키냐르의 《음악 혐오》가 실물 악기로 연주하는 음악만 치켜세우며 현대의 다양한 음악을 도외시한다고 생각하면서도, 현의 진동이 일어났다가 잦아들기까지 귀를 붙잡고 뒤흔드는 마력에 대한 서술에 끝내 수긍하고 마는 것이다. 이 틈을 좁히는 담론이 언젠가 등장할까? 아니면 연주와 음원이 더 이상 가늘어질 수도 없는 끈의 오라기마저 끊고 각자의 길을 가 아예 별개의 영역이 될까?

⁴〈뒤늦게 쓰인 비평〉, 위의 책, 6쪽.

⁵목정원, 《어느 미래에 당신이 없을 것이라고》, 아침달, 2023, 4쪽.

⁶Susan Sontag, “Melancholy Object”, On Photography (Kindle Edition), Farrar, Straus and Giroux, 2011, p. 75. 이 책에서 인용한 문장은 필자가 번역했다.

⁷목정원, 앞의 책, 65쪽.

⁸위의 책, 66쪽.

⁹Susan Sontag, “In Plato’s Cave”, op. cit., p.1.

¹⁰〈[미학자의 책] 목정원, “어느 미래에 당신이 없을 것이라고”, https://www.youtube.com/watch?v=tVwwWL-01nI, 5:07, ‘한국미학회Korean Society for Aesthetics’ YouTube 채널, 2025. 1. 29.

¹¹목정원, 앞의 책, 239쪽.

¹²존 버거, 〈외양들〉, 《사진의 이해》, 제프 다이어 엮음, 김현우 옮김, 열화당, 2015, 104쪽. 사람이 정보를 많이 가졌다고 해서 시간이 커지거나(?) 굵어질(?) 리 없으므로 이 설명은 사실 엄밀하지 않다. 본문에 인용한 변수를 유지한 채 논의를 이어 가려면 사진을 ‘시간의 절단면’이라 하기보다는 ‘감상자 각자가 지닌 경험 범위의 절단면’으로 정의해야 할 듯하다. 그러나 타인과 똑같은 시간을 부여받았더라도 경험이 많은 이가 그 시간을 더 크고 굵게 감각하지 않을까 하는 비과학적인 생각을 하며 저자에게 동조해 본다. 본문에서는 저자의 이름을 원어 발음에 가깝게 표기했으나 주석에서는 국내 출간 서적의 표기를 따랐다.

¹³“2021년 7월 서울시의 광화문 광장 재구조화 조성공사로 일방적으로 철거된 기억공간은 11월 서울시의회 앞마당으로 임시 조성되었습니다.” (〈기억공간 소개: 세월호 기억공간〉, 4.16연대 홈페이지, https://416act.net/33#/map874749) “'임시 이전'이었으므로 규모를 축소해 이전했는데, 광화문광장 공사는 진작에 끝났지만 '임시' 기억공간은 그 자리에 터 잡은지 벌써 햇수로 3년 차를 넘겼다. (중략) 그 사이에 임시 기억공간 존치기간 만료일인 2022년 6월 30일은 훌쩍 지나버렸고, 그 다음날부터 기억공간은 불법 점유물로 전락했다. 서울시의회 사무처는 유족 측의 부지사용 기간연장 신청을 거부했고, 그해 7월 행정대집행 계고장 발부, 8월 원상회복 명령 촉구 공문 발송 등 철거를 위한 행정절차를 이어갔다.” (〈'임시'로 왔다 3년째…돌아갈 자리 잃은 세월호 기억공간, 운명은?〉, 노컷뉴스, https://www.nocutnews.co.kr/news/6129828, 2024. 4. 16.)

¹⁴“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적선현대빌딩에 마련된 10∙29 이태원 참사 기억·소통공간 ‘별들의 집’에서 개소식이 열렸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은 참사 직후인 2022년 말 녹사평역 인근에 분향소를 마련했다. 이후 유가족은 참사 발생 99일째에 서울 광장에 분향소를 설치했다. 지난 6월 서울시청 인근 부림빌딩에서 ‘별들의 집’이 문을 열었고, 4개월 동안 운영된 뒤 이 곳으로 다시 자리를 옮기게 됐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4번째 공간이다. (중략) 이정민 유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개소식에서 “지금 추모 공간에 있는 느낌이 2년 동안 싸워왔던 투쟁 과정과 같다고 느낀다”며 “임시라는 딱지를 붙이고 계속 이전해 오고 있지만 제대로 된 추모 공간이 만들어지기까지 싸워갈 것”이라고 말했다.” (〈[포토] 별이 빛나는 ‘별들의 집’〉, 한겨레,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166722.html, 2024. 11. 10.)

¹⁵김현경, 〈신성한 것〉, 《사람, 장소, 환대》, 문학과지성사, 2015, 256쪽.

¹⁶이는 내가 음악 활동을 시작한 방식이기도 하다. 2013년 홍대 공연장들은 무대에 오르기를 원하는 사람들의 당일 신청을 받아 서너 곡 정도의 연주 시간을 주는 ‘오픈 마이크’라는 시간을 운영했다. 자작곡을 선보이고 싶었으나 자신감이 없었던 나는 오픈 마이크에 가서 관람만 하기를 몇 차례 반복한 뒤에야 신청과 연주를 했다. 내가 연주한 날 내게 말을 건넨 사람들은 낯익은 이들 사이에 어느 날부터 낯선 얼굴이 객석에 앉아 있기만 하다 가는 것을 그동안 알아차렸다며 나를 환대해 주었다. 당시에는 공연장 객석을 그곳에 자주 오는 이들이 으레 채웠고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그중 한 명에게 즉흥적으로 연주를 청하기도 했다. 무대를 원하는 음악가가 많아지자 오픈 마이크 당일 신청이 사라지고 며칠 전까지 온라인 서류를 제출하는 방식이 잡힌 후로 이는 옛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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