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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수 1인칭을 쓰지 않는 사적 역사

아니 에르노, 《세월》

by 묵온

(원서 초판 2008. 2. 7., 한국어 2판 2022. 5. 15. 발행)


몇 살이냐는 질문에 그는 손바닥을 쫙 펴며 다섯 살이라 답한다. 운전석에 앉은 아버지와 조수석에 앉은 어머니 중 누가 물었는지는 불확실하다. 어린 그는 양친의 뒤, 승용차 가운데 자리에 엉덩이를 간신히 걸치고 앉아 있다. 언덕길을 내려가던 차가 들뜬 가족을 어디로 데려가고 있었는지 이제 그는 기억하지 못한다.


자신의 유년이 별로 다정하지 않았다고 회고하는 그가 예전 사진을 앞으로 들추어 볼 일은 드물 테지만 이미 본 사진 몇 장을 떠올릴 수는 있다. 이를테면 그가 태어나 처음 살았던 서울 돈암동 집에서, 기억하지도 못하는 시점에 세상을 떠난 조부의 품에 안긴 사진. 부모가 몇 번의 이사를 거쳐 인천에 자리를 잡고 그와 함께 자주 나들이하던 시절, 태권도복을 입은 그가 거실 커튼 앞에서 눈도 못 뜨고 다리를 어깨너비로 벌린 채 한쪽 주먹을 지르는 사진. 다시 몇 년이 지나 인천 다른 동네의 아파트 주차장에서 흑백 줄무늬 셔츠에 멜빵바지를 입은 그가 카메라와는 다른 방향을 보고 해맑게 웃으며 달려가는 사진.

부모가 다투다가 그의 누이와 형이 그와 이복(異腹) 관계라는 사실을 홧김에 말해 버린 일이나, 진로 문제로 어머니와 갈등을 빚은 누이가 다른 집으로 나가면서 어머니가 그에게 기대감을 투영하기 시작한 일은 그 이미지들에 나타나지 않는다.



1997년, 15대 대선. 표를 가장 많이 얻은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는 규칙은 알지만 단일화의 의미는 아직 이해하지 못한 그가 부모에게 DJP 연합에 대해 묻는다. 연합이 깨지면 김대중이 진다는 답을 들었지만 어차피 표는 유권자가 주는데 후보끼리 친한 것이 무슨 상관인지 여전히 아리송하다. DJ DOC의 노래 가사를 바꾸어 쓰면서 원곡 가수 그룹의 이름으로 후보의 약자를 연상시키는 김대중의 선거 광고가 재미있기는 하다.

2002년, 16대 대선. 아버지가 이회창을, 어머니가 노무현을 지지한다며 그에게 투표권이 있다면 누구를 뽑고 싶은지 묻자 그는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기 위해 정몽준이라고 답한다. 사실 그 선거 운동 기간 그의 눈에 더 띄었던 것은 ‘돈세상을 뒤엎어라!’, ‘불심으로! 대동단결!’ 같은 4·4 음보의 구호다. 개표 결과를 본 그의 어머니는 진짜로 노무현이 당선했다는 데 놀란다.



IMF 위기의 여파로 그의 아버지가 건설사를 폐업하고 아내와 함께 부천에 편의점을 내면서 그는 부모를 따라 인천에서 서울 화곡동으로, 다시 부천으로 이사를 간다. 아내가 낮에, 남편이 밤에 가게를 지키는 생활을 5년 동안 지속한 끝에 그의 가족은 경제적 안정을 되찾는다. 훗날 그의 부모가 회고하는 바와 같이, 2000년대 초반은 편의점이 포화에 이르기 전이라 점주가 수익을 내는 일이 아직 가능한 시절이고 점포 위치도 모텔촌 바로 옆이라 유동 인구가 많은 목이기 때문이다. 그의 부모는 생계 걱정을 덜었으나 장시간 노동으로 몸의 피로를 쌓고 술에 취해 들어온 무례한 손님을 다수 응대하느라 감정 소모에도 시달린다. 고생을 뒤로하고 점포 운영 계약을 종료하려 하니, 황금알이 사라지는 것이 아쉬웠던 본사는 치졸한 명목으로 점주 부부에게 돈을 갈취하려 하고 본래 그 자리에 자체 상점을 내려 한 신규 세입자에게도 맞은편에 직영점을 낼 것이라 위협해 기어이 자사 가맹점을 운영하게 만든다.

방과 후 그는 어머니의 부름을 받아 가게에 간다. 잠시 자리를 비운 어머니 대신 카운터를 지키며 천 원 남짓한 담배를 팔거나 음료 냉장고에 들어가 땀을 급속히 식힌다. 유통 기한이 지나 폐기된 삼각김밥은 입에 맞지만 어쩐지 밥알이 인공적이며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도 맛이 그대로일 것 같다.



전학 온 학교에서 같은 반이 된 어떤 애가 그간 편의점에 와서 과자를 자주 훔쳐 먹었다고 그에게 자랑한다.


학교의 모든 사람이 아는 다운 증후군 학생이 운동장에서 무엇을 떨어뜨려 주우러 가자 주변에 있던 모든 아이가 환아를 중심으로 하는 원을 이루며 뒷걸음친다. 그도 그 동그라미의 한 점이다.


그가 같은 반 여학생을 보며 “남녀평등이지 여성 우대냐!”라고 의도적 흥분이 섞인 어조로 외친다.



아직 서로 이름도 잘 모를 중학교 첫 학기 초, 그의 반에서 누가 미국이 한국을 지켜 주는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2년 후, 어떤 학생이 박수를 치며 노무현이 대통령에서 잘렸다는 소식을 그에게 전한다. 그는 까맣게 잊고 있다가 몇 달 후 뉴스에 같은 대통령이 문제없이 나오는 것을 보고 어떻게 잘 해결됐나 보다 하고 넘긴다.


10대 중반의 남자 40여 명이 모인 공간에서 그는 수시로 긴장한다. 세상에 할 이야기가 한 가지뿐이라는 듯이 성(性)과 관련된 상스러운 어휘가 예기치 못한 순간에 번번이 귀를 폭격한다. 나이 든 교사는 수업 진도에 여유가 생겼다면서 성교 시 여자와 남자가 흥분하는 시점이 다르다는 이야기로 학생들의 광적인 집중을 이끌어 낸다. 젊은 교사는 남자 화장실 냄새가 지독한 이유가 남자가 소변과 정액을 같이 배출하기 때문이라며 숨김없이 경멸을 표한다.

섹스는 남자 중학생이 심심하면 허세를 부리기 위해 꺼내는 화제에 불과하지만 주먹과 괴롭힘은 그 어린 목숨의 실존을 위협하는 제도다. 둘 중 괴롭힘의 위력이 훨씬 크다. 주먹은 휘두르는 쪽이 반에서 한두 명인 반면 맞는 쪽이 불특정 다수이며, 그마저도 물리적 접촉이 실제로 행해지는 경우는 그 한두 명이 수틀렸을 때뿐이다. 괴롭힘은 피해자가 소수이고 가해자가 그 밖의 모든 구성원이며, 피해자가 숨 쉬는 매 순간에 도사린다. 어눌하게 말해서, 바지에 똥을 싸서, 그냥 기분 나쁘게 하니까 등등 괴롭힘의 구실은 하나도 실체가 없다.

폐쇄적 소집단에서는 학생들이 형성하는 위계가 더욱 잘 발현한다. 몇 등 이상을 불러 모아 좋은 고등학교에 보내겠다고 한밤중까지 과학실에 머무르게 해 공부를 시키는 특수반에서 약한 괴롭힘을 받는 대상은 붙박이로 정해져 있고 강한 괴롭힘을 받는 대상은 주기적으로 바뀐다. 피해자와 책상 한두 개를 사이에 둔 가해 주동자들은 오늘 학원에 가면 피해자를 어떤 방식으로 때릴 것이라 저녁 내내 떠든다. 마지막 피해자가 담당 교사에게 상황을 알려 특수반을 떠나고 나머지 학생들이 반성문을 쓴 시점은 이미 졸업을 앞둔 때다. 아무 징계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공학 기숙 고등학교에서는 더욱 교묘한 배제가 주먹 대신 작동한다. 어느 수업 시간에 반에서 겉도는 두 학생과 함께 묶인 그의 조를 향해 그의 룸메이트가 참 애매한 조합이라고 평한다.


대학 진학에 도움이 되지 않는 내용을 가르치는 교수자는 머리 좋은 학생들에게 완벽히 무시당한다. 프랑스어 시간에는 오직 그만 필기를 한다. 어느 영어 시간에는 참다못한 원어민 선생이 교실을 박차고 나가 버리자 반장인 그가 교사를 데리러 교무실에 다녀온다.


그는 자신이 공부를 잘하기 때문에 직접적 폭력을 거의 당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성적은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제도를 초월한다. 교사들이 제자들 사이의 모든 관계에 개입할 수는 없어도—혹은 개입하지 않더라도—학교의 명예를 높여 줄 우등생에게 변고가 생기는 일은 막으리라는 것을 학생들은 몸으로 느낀다. 이런 관리 체계의 혜택을 누리는 그는 현상(現狀)을 바꿀 만한 행동을 절대 하지 않는다. 성적을 제외하면 자신의 십 대에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목표로 삼은 대학에 떨어지자 조기 졸업 후 1년을 더 투자해 다른 신입생 대부분과 같은 나이에 입학한다.



노무현이 집권한 기간에 그는 성적을 유지하되 모친의 바람인 의대 진학을 피하는 데 집중한다. 어른들의 요구에 따라 학생으로서 학업 이외의 생각을 하지 않고 공부에 집중할 만큼 바깥이 조용한 것일까. 그렇게 자신의 목표에만 골몰하는 그에게도 인터넷 뉴스 기사 대다수의 베스트 댓글인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는 기이하다. 얼굴을 서로 맞대지 않는 공간에서 건설적 논의를 기대하지 말라는 상징. 그나마 이때는 대통령 혼자 십자포화를 맞으며 여론의 분열을 수면 아래로 가라앉히는 시절이다.

2007년, 대통합민주신당 경선은 지리멸렬하게 이어지고 한나라당 경선은 난타전으로 전락하고 17대 대선은 싱겁게 끝난다. 주가 조작을 저지른 기업을 설립했다는 발언에 주어가 없다는 논리, 경제만 발전하면 모든 걱정이 사라질 거라는 기대에 힘입어 이명박이 뽑힌다. 사람들의 열망은 인수위에 부적격한 후보자가 오르내릴 때 이미 꺾이고, 미국산 소고기 수입 협상의 불투명성이라는 뇌관을 통해 분노로 바뀌어 2008년 촛불집회로 폭발한다. 직전 대통령의 성실한 소통이 당연한 자질인 줄 알았던 그는 권위주의가 강해지는 경향을 불안하게 보고 집회에 참여했다가 서울특별시청 광장에서 전경에게 붙잡힌다.

검사가 구속 영장을 신청하지 않은 자는 유치 후 48시간 이내에 석방된다는 것을 그때 처음으로 알게 된다. 조서를 작성하는 형사에게 불려 가 진술하거나 묵비하는 시간을 제외하고 창살 안에 있어야 하는 시간 동안, 유치인에게 주어지는 책 중 조정래의 《태백산맥》 1권을 읽는다. 집시법 위반으로 들어온 자에게 경찰이 빨치산 소설책을 빌려준다니.


2009년 5월 23일 토요일, 그는 동아리방으로 올라가는 만원 버스 안에서 라디오를 통해 노무현의 부고를 듣는다.



그가 가입한 동아리는 클래식 기타 합주단이다. 보통 오케스트라라면 바이올린, 첼로, 플루트, 호른, 팀파니 등등을 연주할 테지만 이 집단은 모든 파트가 기타를 퉁긴다. 자신이 평소에 듣던 독립음악 같은 노래를 지어 볼 요량으로 동아리에 가입하러 간 그는 알아보기 어려운 긴 악곡 제목을 칠판에 적어 둔 채 그토록 진지한 음악을 학구적으로 연주하며 평을 주고받는 모습에 나쁘지 않은 인상을 받는다. 클래식 기타와 통기타가 어떻게 다른지 알고 나서 다른 동아리에도 가 보려 하지만 오선 위 음표가 가리키는 소리를 상상하고 선율로 자아내는 데 재미를 붙인 뒤다.

그는 비로소 안온하다. 가족과 학교처럼 타인의 뜻에 따라 배정받는 무리가 아니라 난생처음 스스로 선택한 공동체에서, 폭력을 목격할 걱정 없이 자기처럼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어 행복하다. 듣고 싶은 연주를 완성하기 위해 하루에 일고여덟 시간씩 손가락으로 줄을 퉁기는 수고는 경쟁에서 밀려나지 않기 위해 책상 앞 자세를 유지하던 무감각에 비하면 차라리 달콤하다. 어느새 선배들이 가르쳐 주는 바흐, 카르카시, 타레가 등의 전통적인 유럽 레퍼토리보다 빌라로부스, 아사드, 지즈몬치와 같은 현대 브라질 작곡가의 작품을 혼자 파고든다. 그동안 알지 못했던 세상이 어딘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실감하고 언젠가 자신이 그곳에 가 볼 수도 있으리라는 가능성에 안심한다.


연주회에 〈바리에테 관현악단을 위한 모음곡〉을 올리기로 한 그는 솔로몬 볼코프가 엮은 쇼스타코비치의 회고록 《증언》을 읽으며 스탈린의 폭정을 접한다. 선배들의 추천으로 읽는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는 익살을 부리면서도 은연중에 프라하의 봄 좌절을 착잡하게 바라보는 작가의 심정을 감지한다.


유치장에 갇힌 그를 부총학생회장이 면회하러 온 일이 무색하게 이제 총학생회는 시험 기간에 중앙도서관 입구에서 간식을 나누어 주는 단체에 지나지 않는다. 대학이 사회 변혁을 이끌지 못하고 각자도생이 새로운 시대정신이 된 상황을 개탄하는 학내 잡지를 보면서 그는 필진의 높은 학번에 놀라고 NL과 PD가 무엇인지, 학생운동이 언제부터 시들어 갔는지 배운다. 운동권의 역사를 건조하게 약술하다가 유머와 비속어로 허를 찌르는 글이 신기하게 웃기지만, 차마 내버릴 수는 없어 집 안에 겨우 모셔 두는 족보 같아 안쓰럽다.

마지막 불꽃이라는 것이 정말 있는지 2011년 1학기 말 행정관, 일명 ‘본부’ 앞에 학생들이 모인다. 국립대학교를 법인으로 바꾼다는 법안이 본격적으로 추진되자 총학생회는 비상총회를 열어 본부 점거를 결의한다. 그도 점거 찬성에 거수했으나 막상 본부의 문이 열려 인파가 건물 안으로 밀려드는 것을 보자 혹시라도 학교에 경찰이 침투할 가능성에 겁먹고 자리를 벗어난다. 며칠이 지나 본부 안에서 기말고사를 준비하는 문화가 자리 잡혔다는 소식을 듣고서야 한 차례 들어가 볼 따름이다. 학생들과 총장의 면담이 소득 없이 끝나고 동력이 떨어지면서 점거는 약 한 달 만에 막을 내린다.



경찰에 대한 그의 경계심이 소용없었던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비상총회 이후 경찰이 캠퍼스에 들어오는 일은 없었기 때문이다. 둘째, 2년 후인 2013년, 철도 민영화 반대 파업을 추진한 노조 지도부가 경향신문사 민주노총 사무실에 있다는 의심만으로 경찰이 건물을 침탈하자 그에 항의하는 집회에서 어차피 그가 또 연행되기 때문이다. 수서발 KTX 법인 설립, 국정원 선거 개입, 밀양 송전탑 등을 거론하며 “안녕들 하십니까”라고 외친 대자보가 대학을 넘어 사회 전체에 반향을 일으키는 연말이다.


이듬해 봄 우중충한 어느 날 아침, 그는 자신이 자주 무대에 오르는 공연장 겸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손님이 거의 없는 매장을 지키기는 하지만 수많은 학생이 갇힌 선박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지 못해 초조하다.


그해 말, 그는 자신의 앨범이 방금 여러 음원 사이트에 걸렸지만 그중 어느 곳의 메인 화면에도 소개되지 않는 것을 본다.



그는 긴 복무 기간을 감수하고 공군에 입대한다. 해병대는 악습이 싫어서, 해군은 배에 오를 경우 안전을 장담받지 못하므로, 육군은 박근혜 정권에 언제라도 이용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아 피한다. 성매수 경험을 자랑하는 자, 여자 친구를 신체로 축소해 칭하는 자를 훈련 기간에 마주치는 일은 피하지 못한다.


신영복의 《담론》을 부대에 반입한 그의 사상이 의심스럽다며 간부가 자의적으로 취조를 진행한다. 실제로는 입대 직전에 사서 표지가 땀에 절도록 읽은 책이지만 그는 친구에게 받았다고 진술하며 수치와 두려움을 느낀다. 며칠 뒤, 국방부가 여러 출판사에서 납품받아 각 부대에 배포한 도서를 비치해 둔 열람실에서 그는 같은 제목의 단행본이 서가에 꽂혀 있는 것을 발견한다.

훗날 어느 선임이 그 간부를 부대 감사 때 권한 남용으로 신고했다고 그에게 말한다. 자신은 고작 사이버지식정보방을 상병과 병장만 이용한다고 일러바쳤건만 탐탁지 않게 여겼던 병장이 자신의 피해를 대신 신고했다는 사실에 다시 한번 부끄러워진다.


전역을 앞두고 사회 복귀를 위한 교육을 받으러 간 다른 부대에서 그는 선관위가 문재인의 당선을 확인했다는 뉴스를 본다. 국정 농단의 증거가 된 태블릿 PC가 발견되지 않았다면 그가 전역한 뒤로도 박근혜가 9개월 더 재임했을 것이라는 점을 떠올린다. 30대 이하 유권자의 표심이 성별로 갈라지지 않았다는 결과는 아직 의식조차 하지 못한다.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근무하다 그만둔 그는 번역 요령을 배워 자막을 다듬는 일을 한다. 프로젝트 진행 도중에 들어와 불합리한 지시를 내리는 상사가 싫어 이직한 것이지만 별 탈이 없었더라도 언제까지나 책을 편집하며 살지는 못했을 것이라 짐작한다. 노래는 지었으나 그 음악을 청자가 좋아할지는 고려하지 않았듯, 문장을 고치기만 할 뿐 독자가 관심을 가질 주제를 발굴해 책을 기획하는 일은 버겁게 느낀 탓이다. 영상에 종속하는 자막의 특성상 시장 조사를 해야 한다는 부담에서 벗어나 두 줄 이내의 텍스트를 만드는 데 집중할 수 있어 안도한다. 책은 독자로서 읽고 모은다.

교보문고 광화문점에서 눈에 쉽게 띄는 평대에 놓인 책들은 성별과 성적 지향, 계급, 연령, 종교, 비/인간성에 따른 어떤 차별도 불가하다고 말한다. 서점 문밖에는 미니 태극기와 성조기를 가방에 꽂고 걷는 사람, 찬송가를 부르며 동성애 반대를 외치는 사람이 있다.


문재인 정권은 신자유주의가 양극화를 심화하고, 여성에 대한 물리적·사회적 위협이 상존하며, 절제 없는 자원 사용이 기후 위기를 일으키는 시대를 직시하는 감각을 지니고 있다. 이 과제들을 해결해야 한다는 당위에 사회의 진보보다 각자의 기득권을 택하려는 욕망을 누그러뜨리는 설득력이 따라붙지 못하고, 성적 대상화로 가득한 문장을 책으로 펴냈거나 자식의 입시를 부당한 방법으로 도운 인사들의 전적이 밝혀지며 대의의 빛이 바랜다.

그리고 윤석열.


12·3 비상계엄이 일으킨 최악의 반동은 사람들로 하여금 공동체에 산재하는 수많은 문제에 관한 논의를 뒷전으로 미루고 오로지 1987년의 민주주의만 지키도록 강제한 것이다. 누구의 목숨도 버려지지 않고 진정으로 모든 시민이 환대받는 새로운 민주주의를 열고자 20·30대 여성이 밤을 새우고 추위를 이기며 대통령 파면을 이끌었으나, 뒤이은 대선 국면에서 정치권은 중도의 표를 하나라도 잃을까 전전긍긍하며 젠더 문제를 철저히 함구한다. 청년의 절반인 이들이 시민이라기에는 너무 특별하다는 듯이.

영화 〈너와 나〉를 주제로 하는 좌담회에 다녀오는 그는 대학교 앞을 지나치다 새로움을 지지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현수막을 본다. 어렸을 때부터 익히 마주친 차별이 공정이라는 이름을 얻은 데 절망하면서, 같은 반에 있던 학생들 중 몇 명이 폭식 투쟁에 나가고, 딥페이크 합성물을 소지하고, 전장연 대표를 카메라 앞에서 공개적으로 짓밟는 새로운 화술에 열광했을지 헤아린다. 또래 집단에 속해 무력하게 폭력을 저지른 자신을 돌아보면서, 만약 자신이 아들을 얻어 인권 감수성을 교육하더라도 그 아이가 학교에 가 따돌림을 무릅쓰고 옳은 목소리를 낼 수 있을지 회의한다. 그 희박한 가능성에 질린 청년들이 결혼과 양육을 단념하는 현실은 사회 재난이다.



30대 한국인인 그는 집필 당시 60대 프랑스인이었던 그녀의 책에서 2차 세계 대전과 해방, 알제리 전쟁, 1968년 5월 항쟁에 이은 드골의 일시적 승리와 사임, 미테랑의 집권과 정권 이양, 르펜의 결선 투표 진출과 시라크의 압승에 이르는 프랑스의 현대사를 일별한다. 그에게는 희미한 단어일 뿐인 9·11 테러와 이라크 전쟁이 그녀에게는 21세기 초 세계화를 상징하는 인장(印章)이다. 격랑의 연속으로 그릴 수도 있는 이야기지만 그는 그녀가 이 모든 일에 짐짓 거리를 둔 채 잔물결을 관조한다고 느낀다. 그녀는 감시 속에서도 성적 자유를 최대한 누리고, 좌우를 가리지 않는 소비주의의 물결에 젖고, 기성세대를 따돌리는 유행어를 들으며 자신이 나이를 먹는 것을 인식해 온 사람인 듯하다. 긍지도 회한도 없이. 삶의 여로를 걷느라 미처 모르고 넘긴 사건들에 대해서는 적지 않는다.

문득 그는 자신의 것도 아닌 서사를 무람없이 떠벌렸다는 자각에 멈칫한다. 내면 서술에는 객관성이 부족하므로 반드시 외부 사실을 함께 제시하라는 지침에서 여태 벗어나지 못했는지. 거물의 행적을 끼워 넣어 자신을 부풀리는 졸부의 글을 읽은 적도 없으면서 답습했는지. 이름을 남기고자 하는 욕망을 완전히 버렸다고 자신하지는 못하지만, 그는 달리 만날 수 없었을 이들과 이어지는 계기로서 역사를 인식하고 있으며 그로 인해 자신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표현할 언어를 찾고 싶다. 황혼에 이른 그녀는 지난한 인생에서도 빛나던 순간을 찾아내 과거형 기록으로 고정했지만, 평탄하게 지내는 가운데에도 어른거리는 불안을 떨치지 못하는 그는 미완의 시제인 현재형을 택한다.



잔잔한 비가 그치고 강과 맞닿은 하늘에 연보랏빛 노을이 진 풍경을 그는 벗들과 함께 본다. 평소 습관대로 전화기를 집에 두고 온 그를 대신해 일터에서 계속 함께 일할 이들과 곧 타지로 떠나 새로운 공부를 할 이가 사진을 찍는다. 근처에서든 타지에서든 이 친구들이 근심 없이 살아가기를 기원하며, 그는 주위에서 카메라 앱을 여는 낯선 사람들의 머릿속을 혹 엿보게 되더라도 미움에 잡아먹히지 않기를 소망한다.


2025. 6.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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