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사실상 결전이라 불리는 DK vs T1 롤드컵 4강전이 있었다. 주말이지만 친한 개발자들과 모여 치킨을 뜯으며 태어나서 처음으로 e-스포츠 라이브 경기를 봤다. 내가 롤에 대해 아는 거라곤 방송에서 몇 번 보았던 페이커 선수뿐이지만 동시 접속자가 80만 명이 넘는 이 시대의 트렌드를 직관하고 싶었달까 ʕʘ‿ʘʔ.. 평소 관심 없던 게임이라는 새로운 문화를 접하는 것 자체가 흥미로웠다.
사실 리그 오브 레전드 게임 룰을 모르다 보니 1세트를 보는 내내 '클원 e-스포츠 카테고리의 클래스 SKU 자체가 많지 않은데.. 프로게이머분들을 섭외하면 어떨까?', '국내 스토어보다 CLASS101 USA에 런칭하면 좋겠는데?', '한·미 동시 런칭이 가장 임팩트 있을 듯', '근데 접속자가 너무 많이 몰려 서버가 다운되면 어쩌지' 등 혼자 섭외부터 런칭까지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그렇게 1세트는 담원 기아의 승리로 끝났다. 잠깐의 쉬는 시간 후, 다시 2세트 경기를 보려는데 선수들이 게임 캐릭터를 다시 고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선수들이 캐릭터를 고를 때마다 주위에서 어떤 캐릭터를 고를 것이다 예측하기도 하고, 특정 선수의 선택에 감탄하거나 의문을 가지기도 했다.
오.. 일단 롤알못 내 입장에선 왜 캐릭터를 다시 고르는 건지 이해되질 않았다. 아니 열 명 모두 같은 캐릭터로 대결해야 가장 공평한 것 아닌가?_? 그러자 한 개발자분이 축구에도 골키퍼와 공격수, 수비수가 있듯 매 세트마다 전략에 맞게 캐릭터를 고르는 것이라 설명해주었다. "캐릭터마다 필살기가 다르니까!"
'필살기'라는 단어를 듣자 3개월 전 한 PO분과 나눈 대화가 생각났다. 전 직장의 결제 · 정산 시스템을 만드신 분으로 알고 있다. 특정 도메인에 특화된 커리어를 가지신 분들은 어떻게 자신만의 길을 찾았는지 궁금해 그 시작을 여쭤본 적 있다. 그리고 그때 처음부터 특정 도메인을 잘 알아서 혹은 하고 싶어서가 아닌 당시 회사가 가진 문제가 그러했고, 해결을 위해 부딪혀가며 배우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고 말씀해주셨다. 당시 클원과의 재계약을 앞두고 있어, 앞으로 내가 어떤 커리어를 다져나가면 좋을지 더 고민이 많았던 것 같다.
그때 다른 PO분들을 관찰하며 어떻게 하면 그들의 강점을 흡수할 수 있을지 직접 따라 해보기도 했다.
예를 들어 문제 정의를 잘하는 분에게선 마인드맵과 기획 문서를 활용해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얼마나 딥 다이브 하며 고민해야 하는지를 배울 수 있었다. 또 가설과 솔루션을 세울 때 아이디어가 좋은 분에게는 평소 아티클, 책, 온라인 클래스, 국내외 레퍼런스 찾기 등 얼마나 인풋이 많아야 하는지를 배울 수 있었다. 논리적인 커뮤니케이션이 장점인 분에게는 하나의 설득을 위해 어떤 데이터를 어디까지 고민하고 준비해야 하는지 등 당시 내가 갖추지 못했던 애티튜드를 배울 수 있었다.
동시에 수도 없이 고민했다.
나의 강점, 나만의 필살기는 무엇일까?
모든 신입의 마음이 그렇겠지만.. 나는 정말 진지하게 내게 주어진 일을 열심히 말고 잘하고 싶다. 그 '잘한다'라는 것도 인턴 치고, 신입치고 잘하는 게 아니라 정말 압도적으로 잘 해내고 싶었다.
노력과 능력은 다르다.
노력은 애쓰는 힘이고, 능력은 해내는 힘이다. 나는 노력을 벗 삼아 능력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정말 많은 사람, 상황들을 관찰하며 배우고 또 배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 나의 강점이 무엇인지는 잘 알 수 없었다.
그때 한 PO분께서 "스테이시는 메타인지를 잘하는 것 같아."라는 피드백을 주셨다.
메타인지란 자신이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자각해 스스로 문제점을 찾아내고 해결하며 자신의 학습과정을 조절할 줄 아는 것을 뜻한다. 사실 처음엔 그 피드백이 그리 와닿진 않았다. 당시엔 내가 스스로 무엇을 모르는지 자각하는 게 그리 어렵지 않았다. 왜냐하면 난 진짜 아무것도 모르니까 ㄴʕʘ‿ʘʔㄱ;;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전에 하지 못했던 일들을 스스로 인지하고 배우며 해결해 갈 때마다 그분의 피드백이 계속 마음에 맴돌았다. 최근 다른 회사의 UX 디자인, 퍼포먼스 마케팅, 엔지니어링 리드분을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내가 평소 고민하거나 경험한 것들을 데이터로 이야기할 수 있어 스스로 성장했음을 또 한 번 체감하기도 했다. 나는 잘하고 있고, 자라고 있음이 분명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회사에서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다 보니 강점을 갖게 되었다는 다른 PO분들의 조언처럼, 나도 내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에 집중하다 보니 특정 방법으로 지표가 두 배 이상 상승하는 임팩트를 내게 되었다.
실험이라도 조금 큰 도전이라 전사 타운홀에서 미리 가설과 실험 계획을 발표했었는데, 실제로 베리에이션을 걷어내고 100% 유저에게 적용했을 때, 내가 생각한 것 이상의 결과가 나왔다. 이 날 몇 번을 강력 새로고침 했는지 모르겠다. 해당 개선은 임팩트를 인정받아 사내 소식지에도 실리게 되었다. 이제 시작에 불과하지만.. 나도 나만의 필살기를 찾아가고 있는 게 아닐까 :')
올해 매 달 말일마다 회고를 쓰는데 정말 한 달이 무섭도록 빠르게 흐름을 느낀다. 지난 9월 회고 '클래스101은 어떻게 시리즈 B에 300억을 투자받았나?'에서 나는 아래와 같은 포부를 밝힌 바 있다.
성장을 해야 더 큰 도전을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더 큰 도전을 해야 그만큼 성장할 수 있다.
단순하면서도 복잡한 이 마인드셋을 이번 한 달 가장 크게 배웠던 것 같다. 그래서 다가오는 10월에는 직장인과 작가 김긍정 둘 다 새로운 도전을 하려 한다. 도전에는 성장통이 따르고 이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잘 알지만, 사실 그 성장통으로 꽤나 많이 지친 상태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시 도전하려 한다.
- 클래스101은 어떻게 시리즈 B에 300억을 투자받았나?
10월 한 달 동안 직장인 스테이시는 스스로 만족할 만한 퀀텀점프를 경험했고, 작가 김긍정은 원했던 UX Writing 관련 서적의 서평을 맡았다. 다가오는 11월은 아쉽게도 공휴일이 없다. 정말 일에만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이다. 음... 최근 다른 회사의 UX 디자인 리드 분과 치열하게 UX에 대해 토론 한 적 있는데, 최종적으로 협업할 때의 오너십과 디테일을 길렀으면 좋겠다고 피드백을 주셨다.
정확하게는 내 가설과 솔루션 속 디테일이 "왜?" 중요한지 명확하게 말하고, 그 디테일만큼은 타협하지 않는 애티튜드가 필요하다고 조언해주셨다.
개인적으로 '타협하지 않는 디테일'에 머리를 한 대 맞은 느낌이랄까.. 그 이후 일을 하는 내내 계속 그 말이 맴돌았고, 내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들을 다시 한번 깊게 파고들도록 만들었다. 돈으로는 절대 살 수 없는 조언이었다.
11월엔 디테일을 챙길 수 있는 PO가 되고 싶다.
일, 대화, 관계, 감정에서 내가 생각하는 디테일을 고수하면 또 한 번의 퀀텀점프가 있을 것만 같다. 근거는 없지만 메타인지가 높은(?) 나의 촉이 그러하다. 음... 조금 더 나를 믿고 자신감을 가져야겠다.
완연한 가을,
이 달의 자랑 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