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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긍정 Sep 19. 2021

일 잘하는 리더는 "진짜" 커뮤니케이션을 한다.

일에서 감정을 도려내는 법

이 글의 BGM으로는 Elton John & Surfaces의

Learn to fly를 권합니다.

If you loosen up,
you might just learn to fly

네가 긴장을 푼다면,
하늘을 나는 법을 배울지도 몰라.
- Learn to fly 가사 中






 착. 똑. 얄.

현재 근무 중인 회사에서 정의하는 인재상은 '착. 똑. 야.' 로 착하고 똑똑하고 야망 있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내가 되고 싶은 인재상은 착. 똑. 얄. 어떻게 하면 착하고 똑부러지면서 얄밉지 않게 잘 거절할 수 있을까?


사진 출처 : 책 [오늘도 개발자가 안된다고 말했다] 패러디

이 고민은 꽤나 진지했고, 오래 지속되었다.

프로덕트 매니저 클래스나 커뮤니케이션 책들을 아무리 뒤져봐도 '장기적인 로드맵과 우선순위를 잘 관리해야 한다'라는 이상적인 글귀뿐이었다.


최근 '협업'의 범위가 넓어진 것에 고민이 많았다.

인턴으로 근무할 때 협업의 범위는 같은 제품팀인 디자이너와 개발자, QA 정도였는데, 정규직 전환 이후 BO, MD, CX, 마케터, DA 심지어 법무팀까지.


논의하고 고려해야 하는 협업의 범위가 한순간에 확장되었고, 단연 주니어의 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 파도의 연속이었다. 스스로 발버둥 치지 않으면 쉽게 휩쓸리기 일쑤였다.


다들 본인 팀이 겪고 있는 문제와 해결되었으면 하는 기한을 일단 전달해주는데, PO의 입장에서는 하나를 바꾸려면 웹과 모바일 웹. 둘 다 작업해야 하기 때문에, 그들의 예상시간과 실제 작업시간이 맞지 않는 것은 당연했다. 안 되는 게 아니라 못하는 것이었다.






 거절의 기술

그래서 고민 끝에 평소 일잘러로 소문난 한 동료에게 어떻게 하면 거절을 잘할 수 있을지 물어보았다.


그러자 그는 "스테이시가 거절하는 게 아니라, 전사의 OKR에 맞게 일의 우선순위를 조정하고 전달한다고 생각해봐요. 상대방의 일이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전사의 방향에 맞추기 위해 당장은 어쩔 수가 없는 거죠. 그러면 거절도 부탁도 일에 감정을 담을 필요가 없어요. 대신 상대방이 기다리지 않게 공유를 계속 잘해주어야겠죠."라고 조언해주었다.

 

그와의 대화 이후, 조금은 시야가 넓어진 느낌이 들었다. 거절이 아닌 조정과 전달을 잘하기 위해 전사의 방향 뿐만 아니라 부탁하는 팀의 OKR까지도 저절로 관심을 갖게 되었고 조금 더 상대방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이래서 급하겠구나, 저래서 힘들었겠구나.

그랬구나. 그럴 수 있지.






 주니어와 시니어의 차이는 무엇일까?

하지만 '그럴 수 있지'라는 마음도 무례한 상황 앞에서는 유지될 수 없었다. 그래서 한동안 똑같이 무례하게 굴거나 아예 무시하며 자리를 피하게 되었고, 결국 내 마음만 불편해지는 새로운 문제를 직면했다.


머리가 급격히 빠지고 피부가 완전히 뒤집어지는 등 이번엔 몸에서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귀신같은 애플 워치는 그때마다 "1분간만 심호흡을 해도 정신을 맑게 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라며 신호를 보내주었고, 손목이 부들거릴 땐 나도 모르게 두 주먹을 꽉 쥐는 습관이 생겼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뇌를 지배할 때쯤, 이 모든 상황과 감정이 다 내 탓인 것만 같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내가 경험이, 경력이 부족해서 그런 게 아닐까?'

그리고 쉽지 않은 이 감정을 친한 동료에게 털어놨을 때, 그는 그동안 나로 인해 얼마나 많은 문제들이 해결되었고, 여러 고객에게 얼마나 작고 큰 가치들을 제공했는지 하나씩 되짚어주었다. 그리고 그런 우리를 지켜보던 한 시니어 분께서 스테이시는 '경험은 부족하지만 시니어가 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씀해주셨다.






 역지사지: 자신의 입장을 절대화하지 말고, 상대방의 처지에서 사태를 성찰해볼 것.

주니어와 시니어의 차이는 일을 얼마나 오래 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유연하게 대처하고, 맡은 일에 기여했는가'로 스테이시가 일을 더 잘하고 싶다면 상대방이 왜 그렇게 말했을지 그 속마음까지도 파고들 수 있어야 한다고 조언해주셨다. 


무례하게 행동하는 사람들은 왜 그랬을까? 그 사람들도 어쩔 수 없는 사연이 있지 않았을까? 가령 스테이시에게는 다 말하지 못한 속사정이 있는 건 아녔을까? 사실 그렇게 행동한 것을 그 사람들도 후회하고 있진 않을까?


"진짜" 커뮤니케이션은 겉으로 보이는 상대방의 목표나 계획을 바라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내면까지 들여다 보고 이해하려는 것이었다. 이를 깨닫고 나니 똑같이 무례하게 굴었던 몇 순간들이 뇌리를 스쳤고, 내 표정을 본 그는 "스테이시, 이번 주말에 이불킥 좀 하겠는데?" 하며 유유히 사라졌다.






 지붕 뚫고 이불킥

위 대화 외에도 지금의 내게 필요한 역량들에 대해 조언해주셨고, 경청하며 놀랐던 점은... 사실 그날은 그와 나의 첫 대화였다. 그러니까 평소에 유심히 나를 쭉 지켜보셨던 것이다. 굳이 그가 짚어주지 않아도 그동안의 크고 작은 실수들이 떠올랐고, 스스로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평소에 좀 잘할걸' 하는 마음과 동시에 또 한 번의 성장통을 겪고 있음을 자각했다.


모든 건 그 누구의 탓도 아니다. 그저 더 이상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만 않으면 된다. 야간 택시에 몸을 맡긴 채, 두 눈을 감고 숨을 한번 고르자 한결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꼈다. 그러자 또 귀신같은 애플 워치는 "1분간만 심호흡을 해도 정신을 맑게 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라며 메시지를 보내주었다. 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그동안 똑같은 말도

내가 다르게 받아들였던 건 아닐까?

기나긴 반성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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