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프로젝트로 시작해 투자자 분들 앞에서 IR 발표를 하기에 이르기까지
이 글의 BGM으로는 드라마 스타트업 OST이자 10CM의 <Where Is Dream>을 권합니다.
궁금한 게 너무 많아
미로 같은 세상 속
길을 잃지 않는 방법이 뭘까
- Where Is Dream 가사 中
나는 뮤지션일 때 코로나19로 수입이 없던 시절, '스타트업' 드라마를 통해 IT업계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당시 프런트엔드 개발자에 관심이 있어 부트캠프를 알아보았는데, FE 옆 신규 신청을 받고 있던 PM 부트캠프가 갑자기 눈에 띄었다. 이 길이 내게 더 적합한 것 같아, 결국 후자로 택했던 밤이 기억난다. 지금 돌이켜보면 내 인생의 한 기로를 바꾼 선택을 한 날이었다.
사실 드라마에서 본 서달미의 모습, Mini-CEO라고 표현하는 PO/PM의 역할에 대한 이론과 실제는 조직마다 약간의 간극이 있었다. 정말 중요한 의사결정은 결국 나보다 상위 리더나 경영진 분들이 하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5년이 흘렀고 공백기도 있었지만, 마음 한편에는 작더라도 '나만의 사업'을 해보는 것에 대한 갈망이 늘 있었다.
작년에 입사한 디자이너 분이 있었는데, 회사에서 주최한 컬처데이의 일환으로 함께 원데이클래스를 듣게 되면서 우연히 식사를 함께 하게 되었다. 같이 일해본 적은 없었는데, 그녀가 입사할 때 제출한 포트폴리오가 피그마에만 잠들어 있는 게 너무 아깝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프런트엔드 개발자 분이 서비스를 궁금해하였고, 둘 다 해보면 좋겠다고 말은 하지만 그렇다고 '어떻게 해보자'라고 리드를 하는 스타일은 또 아니었다.
옆에서 보고 있던 내가 '언제까지 A님은 이것을, B님은 저것을 준비해 주세요' 하고 우리의 첫 회의 일정을 잡았던 기억이 난다. 지금의 회사에서 내가 한 명의 디자이너와만 업무를 하다 보니, 나도 다른 스타일의 분과 협업해보고 싶었다. 어차피 내가 기획을 하는 것도 아니고, 디자인도 이미 완성된 프로젝트의 일정 관리 수준이니 업무를 벗어나 리프레시하는 기분도 들었다. 우리는 매출이나 유저에 연연하지 않고, 구글플레이스토어에 출시해 보고 직접 광고비를 돌려보는 것까지만 해보자고 서로 확실하게 협의하였다. 그게 시작이었다.
막상 만들기 시작하니 생각보다 서버의 역할이 중요했다.
식자재의 가격을 판매처별로 비교해 주는 서비스였는데, 가격 정보는 다양한 공공 API를 끌어와서 가공해야 했다. 셋이서 낑낑거리고 있을 때, 지나가던 한 백엔드 개발자가 궁금함을 참지 못해 다가왔고 나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녀를 끝까지 설득하여 팀원으로 합류시켰다.
가령 '당근'을 산다고 했을 때,
1kg에 도매, 대형마트, 편의점, 쿠팡 등 다양한 판매처별로 가격을 비교해 주고 전일, 전주, 전월, 전년 대비 얼마나 오르거나 내렸는지도 한눈에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데 데이터를 끌어오는 과정에서 똑같은 당근 1kg이라도 '유기농 당근', '깐 당근', '애기 당근' 등 상세한 정보가 다른 경우도 있었고, 플랫폼마다 식자재를 분류하는 카테고리도 다르다 보니 이를 초반에는 분류하는 작업도 필요했다.
우린 넷이 되었고, 설렁설렁 2주에 한 번씩 모여 뽀짝뽀짝 하하호호 만들었다. 속으로는 '이거 언제 끝낼 수 있는 거지' 신경이 쓰였다. 그러다가 이제 진짜 본격적으로 개발해야 하는데, Figma의 Dev Sheet를 써야 하는 단계가 되었다.
한 달에 약 2만 2천 원 정도의 플랜을 결제하려면 사비를 써야 했다. 각자 5만 원씩 모아 시드머니 20만 원으로 해볼 수 있는 데까지 해보고 마무리하자고 먼저 얘기를 꺼냈는데, 다들 말로는 알겠다고 하지만 표정이 그리 밝진 않았다. 뭔가 어영부영하니까 오히려 돈을 쓰면 더 길어지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다들 했던 것 같다. 그래서 내가 패기롭게 "제가 정부지원사업에 한번 도전을 해봐 볼게요."라고 말했다.
그날 집으로 돌아가 바로 지원할 수 있는 정부지원사업을 찾아보았고, 한 전통시장 활성화 사업이 마감되기 직전이었다. 우리가 불러오는 데이터 중 전통시장 가격도 있기에, 상인 분들도 식자재 시세를 알 수 있도록 좀 더 간편화 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을 것 같았다. 다만 해당 지원사업은 교육이수를 필수로 하고 있어, 수료 조건을 묻기 위해 전화를 하였다. 그런데 우리의 기획안을 들은 해당 담당자분은 뜻밖의 대답을 하였다.
놀랍게도 대통령님이 '가장 값싼 식자재를 파는 곳이 어딘지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줄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 개발을 지시한 것이다. 심지어 '어떤 요리를 하고자 할 때 요리법이 무엇인지, 최저가로 구매가능한 곳은 어디인지' 역시 우리 디자인/개발 스펙에 이미 포함되어 있었다. 담당자분께 "저희는 2년이 아니라, 두 달이면 되는데요?"라고 말했고, 우리 팀은 서류를 합격할 수 있었다.
이때 내가 예전에 작성해 둔 <대구에는 배달의민족, 타다 대신 '대구로'가 있다> 글도 한몫해 주었다. 이미 성공한 사례가 있기 때문에 설득이 어렵지 않았다. 그렇게 최소한의 교육시간을 이수해야 해서, 오전에는 회사에서 근무하고 오후에는 반차를 내 창업 교육을 듣는 나의 이중생활이 시작되었다.
TMI.
이때 경영진 분의 결혼식 하루 전 날이었는데, 유부 준비로 바쁜 그를 붙잡고 당분간 회의실을 써도 되겠냐고 상황을 털어놓았다. 그는 흔쾌히 도전해 보라고 허가해 주었다. 돌이켜보니 회의할 장소가 있다는 게 엄청나게 좋은 자원이었다. 이 글을 볼 진 모르겠지만 감사를 전한다. (꾸벅)
회사 밖을 벗어나, '나의 사업'을 시작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람들 사이에 있어본 경험은 나에게 큰 자산이 되어주었다. 전통시장 활성화가 주제다 보니 우리 같은 IT기술 창업팀도 있긴 했지만, 주로 한방재를 갖고 화장품을 만들거나 색다른 요리를 밀키트로 만들어 온라인/글로벌로 판매하려는 창업팀이 훨씬 많았다. 서로 가고자 하는 방향은 다 다른데, 결국 본질은 같았다.
- 이 시장의 크기
- 내 상품의 기술력(차별점)
- 결국 얼마의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가
이 교육의 끝은 MVP를 만들고, 실제 투자자 분들 앞에서 IR 발표를 진행해 보는 것이었다. 수상을 하게 되면 창업지원금을 받게 되는 구조다. 그렇게 지지부진하던 우리의 프로젝트는 급속모터를 달아 추석도 불태워가며 아주 빠르게 MVP 개발과 QA까지 완료시킬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프로덕트 디자이너는 자신의 기획이 실제 서비스화 되는 과정을 경험할 수 있었고, 프런트엔드 개발자는 웹앱으로 만들어 앱 배포를 해보는 경험을 해볼 수 있었고, 백엔드 개발자는 회사에서 할 수 없는 다양한 시도와 실패를 여기서 마음 껏 눈치 안보고 시도 해볼 수 있었다.
나도 배운점이 많았다. 이 감정과 배움을 잃고싶지 않아 내 브런치에다 기록해본다.
우리 팀에 대한 질문으로 'B2C는 알겠는데 B2B 객단가를 그렇게 잡은 근거가 무엇인가?', '앱을 만들려면 인건비가 많이 드는데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등 결국 '어떻게 제대로 된 수익을 창출하고 이익을 남길 것인가'가 근본적인 질문들이었다. 내 다음 차례로 발표하신 분에겐 '제품 설명밖에 없어서 지금 CEO가 아니라 CPO 같으시다. 이걸 사람들이 정말 살까요?' 하는 피드백이 오가기도 했다. 결국 산발된 데이터를 어떻게 수집하고 가공하는지 보다 이 데이터를 진짜로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는가? 그들이 돈을 주고 살만큼 알고 싶어 하는 정보인가? 이러한 비즈니스 맥락이 가장 중요했다.
발표자료 우측에는 타이머가 실시간으로 돌아가는데, 제한시간이 끝나면 얄짤없이 내려가야 했다. 주어진 시간 안에 이 시장의 가능성, 우리 상품의 주요 기능과 차별성, 이걸 진짜로 해낼 수 있는 우리 팀의 능력 등 많은 것들을 쉽게 설명해야 한다. 그런데 정말 좋은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자신감 없이 발표하거나 버벅거리는 대표님들이 계셨다. 너무 안타까웠다. 질의응답을 할 때도 데이터가 뒷받침되어 있지 않아 대답을 할 수 없는 모습을 보며 내가 다 아쉬웠던 기억이 난다. 발표자는 그 팀을 대표해서 나온 거니까, 어떻게 세일즈를 해야 이 사람이 흥미를 갖고 우리에게 투자해 줄까를 고민해야 했다. 나는 그 부분에 대한 준비가 평소부터 되어있었다.
우리 팀은 결국 공동 2등을 했다. 디자이너 가족 분들이 '디자인이 좋은 기획자를 만난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가슴이 뭉클했다. 지지부진하던 사이드프로젝트를 여러 우여곡절과 애매한 상황들 속에서도 끝까지 밀어붙여 우수상이라는 성과까지 만들어 냈고, 다들 좋은 경험을 해볼 수 있어 고마웠다고 말해줘서 나 역시 뿌듯하고 기뻤다. 어떻게든 일이 되게 만드는 추진력이야 말로 나의 강점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수상을 하여 창업지원금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고 선택을 해야 했다. 창업지원금은 말 그대로 창업을 해야 받을 수 있는 투자금이다. 팀원들과는 첫 약속대로 사이드프로젝트는 그만하기로 하고, 지원금도 더 필요한 분이 받으실 수 있게 포기했다. 결국 돌고 돌아 이 프로젝트가 처음 지지부진 했던 이유의 기저에는 사실 우리가 '진짜 공감'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다음이 있다면 반드시 내가 해결하고 싶은 문제에서부터 출발할 것이다.
우리 회사 대표님은 나와 나이차이가 크지 않은데, 그와 이 사이드프로젝트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 예전보다 오히려 지금이 더 창업하기 좋아진 시대 같다는 대화를 주고받았다. 내가 느끼기에도 그랬다. 전보다 정보나 교육도 많고, 무언갈 시작하기에 늦지 않은 나이라는 것도 또 한 번 느꼈다. 구체적으로 생각한 아이템은 아직 없고, PM 커리어를 쌓아나가기 위해 노력하겠지만, 결국 언젠가는 나는 나만의 사업을 시작할 것이고,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때를 위해 지금 더 많이 배우고, 도전하고, 주위 사람들과의 신뢰를 쌓아나가는 2026년을 계획해 본다.
명확하다.
이 날 이후로 나는 주어진 인생을 살아가며 단 하나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면 어떤 것을 붙들어 보고 싶은지 수도 없이 고민하였다. 사명 같은 거랄까? 나는 나처럼 10대 때 예고, 체고, 조리고 등 진로를 일찍 선택했던 사람들이 TO가 적어서, 열정페이로 일상생활 유지가 힘들어서, 부상을 당해서 등 다양한 자의 반 타의 반 이유로 인해 새로운 인생의 기로를 마주하는 걸 지켜봐왔다.
나는 그들이 두 번째 커리어를 설계해야 할 땐, 감이 아닌 강점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
자신의 가능성을 의심하지 않고, 그 선택이 현실에서도 통하도록 만드는 구조를 만들고 싶다.
이걸 단순한 강점 코칭이 아닌 어떤 다른 뾰족한 솔루션으로 풀어낼 수 있을지, 이걸 했을 때 어떻게 수익을 창출할 수 있을진 좀 더 고민해봐야 한다. 하지만 나는 이걸 찾은 것만으로도 2025년이 굉장히 의미 있었다. 시작되는 2026년은 나만의 사명을 다듬어 나가는 한 해로 계획하고 있다. 이 글을 읽고 좋은 아이디어나 관심 있는 분이 있다면 댓글로 조언을 보태주셔도 좋겠다.
모두의 건강과 행복을 빌며
2026년, 첫 글 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