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시선 노트

전쟁과 평화

by 시선

초는 초인데 타오르는 초가 아니고 쓰러지는 초가 있다. 그것은 바로 녹초. 나는 너무 자주 녹초가 되었다. 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가기 일쑤였고 심지어 전화 통화를 하다 가도 졸았다. 녹초의 심지에 불이 붙을 때마다 더러 한약과 양약이 동원되었다.

그러던 어느 겨울날 목이 붓고 아파 내과를 찾았다. 몸살감기인 것 같아 영양제 주사를 맞고 오려던 계획은 의사 선생님의 진료 소견 앞에서 순식간에 뒤집어졌다. “외관상 부은 부위는 목이 아니라 갑상샘으로 보입니다. 갑상선 기능에 문제가 있는지 검사해봐야 겠어요” 바로 혈액 검사를 받았고 며칠 뒤 ‘갑상선 기능저하증’을 진단받았다. 의사 선생님이 말했다. “호르몬 수치가 굉장히 낮아요. 이 정도였으면 정말 피곤했을 텐데 일은 어떻게 했나 싶을 정도네요.” 지난 일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원인은 ‘자가면역성 갑상선염’으로 자가 항체가 생성되어 갑상선을 파괴하는 병이다. 자기 몸의 정상 세포를 외부 세균이나 바이러스처럼 적으로 오인해 면역세포가 공격하는 자가 면역 질환이다. 면역세포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 면역 반응이 일어나지 않도록 조절해야 하는데 잘못된 명령이 내려지는 것이다. 한마디로 자신을 공격해서 생기는 병이다.

"우리 몸은 전쟁을 겪기도 하고 평화를 맞이하기도 합니다. 그 둘의 균형이 잘 맞아야 몸에 밸런스가 생기지요. 지금 진맥을 해보니 '전쟁'이 가득하군요. 몸속에 평화가 너무 없어요." 이모가 추천한 한방 명의가 남긴 말이다.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의 활동을 전쟁과 평화로 비유한 이 말이 두고두고 인상에 남는다.

교감 신경이 넘쳐 문제가 될 때,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서는 그것을 줄이는 게 아니라 오히려 부족한 부교감 신경을 활성화하는 방법이 효과적이라고 한다. 아, 어쩌면 자가 면역 질환을 벗어나기 위해 공격을 줄이는 일보다 방어하는 일이 더 필요할지 모른다.

자신을 파괴하는 일을 없애기 전에 얼마나 파괴당하는지 알아차리고 보호하는 것이 더 먼저다. 공격하기 가장 쉬울 때는 수비가 뚫려 있을 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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