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시선 노트

스펙보다 환경 설정

by 시선

"인터넷 창을 이렇게 많이 열어 놓지 마세요." 컴퓨터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전산실 담당 직원으로부터 종종 듣던 말이다. '깜빡깜빡' 메신저 창은 온종일 주황색 신호등 불처럼 깜빡였고 잠시 빨간 불로 하나씩 잡아두기 위해 to-do list에 옮기기를 반복했다. 계획한 일들 위로 새로 풀어야 할 문제들이 수북해졌다.

과하게 쓸 때면 어김없이 '끙'하고 컴퓨터가 꺼졌다. 단호했다. 컴퓨터는 무리한 요구를 받아주지 않았다. 반면에 나는 컴퓨터에 비할 바 없이 단호하지 못했다. 나의 운영 체제와 상태를 무시하고 끙끙대면서도 앞으로 나아갔다. 과부하 되어도 일을 끊지 못한 채로 다시 시작하기 일쑤였다.

바이러스에 걸렸다는 알림에는 몇 분도 지체하지 않고 바로 수리를 하면서도 정작 내 몸이 보내는 알림은 자주 무시했다. 심지어 몸살이 걸려 앉아있기 힘들 때에도 고통의 팝업을 '오늘 하루 보지 않기'했다. 그 문제는 고스란히 돌아왔다. 일터에서의 할 일은 어떻게든 해내면서 나를 위해 ‘해나가야 할 일'은 미루게 되었다. 시간이 나지 않아 시간을 내지 않자 '해나가야 할 일'에 대한 선명한 시각도 희미해져 갔다.


일을 그만둔 지금은 운영 체제를 선택하고 환경을 설정하고 가시화하는 일에 온 힘을 기울이고 있다. 설계하고 설정하기 위해 나를 이해하는 시간을 가진다. 눈을 뜨고나서부터 자기 전까지의 일들을 다시 헤아린다. 오늘 하루 할 일과 해나가야 할 일, 그리고 시작하는 마음가짐을 스스로 선택한다. 어떤 걸 하면 즐거운지 어떨 때 괴로운지 혼자 있을 때 주로 어떻게 지내는지 관찰하며 정답을 정해 놓았던 일에 질문을 다시 던진다.

뭉툭한 과정들을 반복하고 쌓으며 선명한 결과를 조금씩 얻어내고 싶다. 운영 체제를 스스로 선택하고 환경을 설정하고 매일에 걸쳐 조금씩 바꿔 나가기로 한다. 단순해지기 위해서는 자세한 행동을 알아차리는 시간이 필요하다.


기계를 선택할 때는 스펙을 여러 번 비교하고 따지다가도 막상 손에 넣고 나면 자주 들여다보고 바꾸게 되는 것은 환경설정이다. 우리가 기계를 바꾸는 이유가 더 나은 운영 체제와 환경 설정을 위해서라는 것을 떠올려보면, 나 자신에게도 중요한 게 무엇인지 가늠이 된다.

내 그릇을 이해하고 필요한 환경을 설정하고 운영해나가자. 설계하고 설정해두고 나서야 원하는 쪽으로 통제하기 더 쉬워진다. 그렇게 되면 문제가 생겨도 내 탓을 하는 대신 원인을 파악하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매일 점검하며 업데이트하는 태도를 익힐 수 있다면 고장이 나기 전에 먼저 알아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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