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시선 노트

단추를 잘 못 채운다는 것은

by 시선

"그래, 인정할게. 그건 네 병이야. 이제 그 일로 화내지 않을게"


사귈 때는 다툼의 이유가 되었던 고질병을 결혼 후 에서야 인정을 받게되었다. 나의 고질병. 땀이 삐질 삐질하게 하고 정신을 아득하게 만들고 나와 남을 불편하게 만드는 나의 아주 오래된 병. '길을 잘 못 찾는 병' 을 가진 나는 일명 '길치'다.

핸드폰으로 길 찾기 서비스가 활성화되기 전, 사귄 지 200일을 기념해서 삼성동의 레스토랑에서 만나기로 약속한 날의 일이다. 대개 지하철 00역 00번 출구로 잡곤 했지만 그날은 음식점에서 만나기로 했다. 왠일인지 헤메기도 전에 길찾기의 랜드마크가 보이니 수월해 보였지만 그 뒤로 모든 게 꼬이기 시작했다. 미리 음식을 주문해도 될 것 같아~'라고 맘 편히 말한지도 벌써 10여분이 지나버렸다. 돌고 돌아 길을 찾았을 때는 이미 음식이 나온 후 였다. 음식점에 도착하자 지금의 남편은 한 술 뜨지도 못하고 화가 가득한 얼굴로 외쳤다. '아니 길을 어쩜 이렇게 못찾을 수가 있어!!!'


지금껏 길을 헤맨 시간이 얼마나 많을까? 길치에 관해서라면 계속 글을 쓸 수 있을만큼 아직도 길찾기에 현타가 오곤 한다. 카카오맵을 이용해도 나는 이따끔씩 길을 헤매는 현재진행형 길치니까. 길을 헤맨다는 것은 길바닥에서 시간을 허비하고 마음이 쫄리는 일이다. 그런 마음으로 역세권에 위치한 약속 장소는 안심과 감탄을 동반 하곤 했다. 길을 헤매고 잃어버릴 일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이곳을 다시 찾아올 수 있을까?' 언젠가 동대문 종합 시장에 발을 들인 때에 두려움이 몰려왔다. 미로 같은 그곳에서 절대 길을 원하는 만큼 찾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마음에 드는 물건을 발견하고 좀 더 둘러볼까 고민할 때마다 길을 잃어버릴까 봐 걱정이 앞섰다.


그곳에서 단추를 구경하다가 문득 생각이 스쳤다. 종종 구멍의 제 위치를 못 찾고 단추를 잘못 채울 때를 상상했다. 엇나가는 것이 싫었던 시절에는 지퍼를 쑥 올리듯이 매끄럽게 나아가는 삶만을 동경했었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양면이 있으니 지퍼만 있는 삶은 고장 나지 않는 한 다른 면을 만나는 것이 쉽지 않다.

단추를 잘 못 채운 일의 경험도 소중하다.
단추를 잘 못 채우면 다른 면을 만나고 다른 실루엣이 만들어진다.
매끄럽게 진행되지 않은 일에도 얼마든지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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