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본 없는 Self of Self 웨딩스냅 촬영기

결이 비슷한 사람과 거꾸로 하는 결혼 #2

by 긍정수아
너무 행복해서 불안해


제가 요새 자주 하는 말입니다. 저는 이 말의 의미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었는데요. 감정의 충만함이 최고조에 도달하면 되려 불안함이 엄습해 오는 거더군요. 이 심정을 짝꿍에게 털어놓을 때마다 언제나 그는 괜찮다고, 아무 걱정 말라고 참 다정스레 다독여주곤 합니다.


이 날도 역시 하루를 '행복'이라는 감정으로만 가득가득 채웠던 날이었어요. 여행하듯 데이트하듯 우리의 찬란한 순간을 기념하는 장면을 한 아름 담아 온 날이었거든요. 지난 3월 말 급작스럽게 전원주택을 매매하게 되면서 '결혼'이라는 키워드를 우리 사이에 띄우게 되고, 그 후 한 달 남짓의 시간이 흐른 뒤 저희는 일명, '우당탕탕 웨딩스냅’ 촬영을 하러 김제로 떠나게 됩니다.


<미즈노씨네 트리하우스 : 이하, 미트하>는 사실, 결혼 결정 전에 여행지로 오로지 숙소가 끌려 예약한 곳이었어요. 저는 공간과 소품에 쉽게 매료되는 사람인데, 이곳은 제가 좋아하는 '지브리 스튜디오'의 감성으로 꽉 채워진 곳이었거든요. 게다가 오래된 세월의 흔적이 가득한 시골집이었기 때문에 '낡은 것'과 '나무'를 좋아하는 저에겐 정말이지 예약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매력적인 곳이었죠.

#사람과 고양이, 그리고 자연이 공존하는 동화 같은 미트하
#정말이지 <미트하>는 지브리, 그 잡채!
#서까래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찐 시골집
#화목난로 영업(?) 씨게 당하고 갑니다


앞서 말했듯 어차피 공간이 취저라서 결혼 결정도 하기 전에 이미 계획된 여행인지라 저희는 일이 이렇게 된 거(?) 가는 김에 셀프로 웨딩스냅이나 남겨봅시다! 하고 촬영 계획을 휘뚜루마뚜루 세우게 됩니다.


촬영: 김건우&삼각대

출연: 김건우&정수아

연출: 김건우&정수아

기획: 없음


의상도 둘 다 그냥 평소 좋아하던 스타일로 입되, 아주 째끔 힘준 느낌으로 입었어요.

저는 평소에도 빈티지한 아메카지룩 혹은 보헤미안 스타일을 즐겨 입는데 그래도 나름 웨딩스냅이니까 레이스 소재의 시스루 한 원피스로 골랐습니다. 그런데, 이 와중에도 컬러는 화이트가 아닌 베이지를 택하는 대쪽 같은 취향을 유지했죠. 헤어스타일 역시 평소 자주 하는 반묶음과 땋은 머리로 연출했어요. 이 와중에 뭐 메이크업이라고 따로 예약했겠습니까! 그저 늘상 하던 데일리 메이크업으로 퉁 쳤습니다. 저희 신랑 역시도 포멀한 화이트 셔츠에 베이지톤 하의, 서스펜더를 매치한 정도의 디테일을 더해 클래식한 무드로 저와 어우러지게 연출했죠.

#신혼부부스럽지 않은, 마치 결혼 30년 차 노부부 포스


스냅작가도 당연히 없었습니다.

촬영은 어차피 평소에 폴라로이드를 비롯해 필름 카메라부터 DSLR까지 오랜 시간 카메라를 다뤄왔던 그의 재능을 끌어다 썼어요. 훌륭한 삼각대 조수가 많이 거들어 주기도 했고요. 그래도 둘이서 도합 광고경력 30년, 각종 브랜드의 광고촬영을 진행했던 짬(?)으로 결과적으로는 맘에 쏙 드는 컷들을 꽤나 건질 수 있었답니다. 저희는 아마 이날 찍은 사진들 또 결국 보정도 안 하고 그대로 인화하지 않을까 싶...

대충 살자... 네버랜드 주인장들처럼...

#한때 필카가 오랜 취미였던, 미대오빠의 흔한 재능낭비


이렇게 아무 개념도 준비도 없이 즉흥적으로 찍었지만, 그래도 나름 꽃은 미리 계획했어요.

아! 물론, '계획'이라고 하기는 좀 거창하기 한데 여행 떠나는 전날 동네 단골 꽃집에 연락해서 부케 대신 제가 평소에 특히 애정하여 식탁 위의 꽃으로 자주 두곤 하는 빈티지무드의 파스텔톤 거베라와 검붉은 레드참 작약을 예약주문 했습니다. 이번 이벤트에서 가장 J스러웠던 대목이랄까!


#너무 예쁘지 않나요? 아, 물론 저희 말고 꽃이요!


그런데 말입니다...?! 첫 촬영날에 DSLR이 방전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만...?

종일 삼각대 하나에 의지해서 찍었기 때문에 계속 타이머를 맞춰 찍어야 했어요. 그 바람에 배터리가 이렇게 빨리 소진될 것이라곤 차마 미리 예상치 못했던 것이지요. 해서 이튿날엔 전부 아이폰으로만 촬영에 임하게 됩니다. 제 짝꿍은 분명 INT'J'인데, 아마도 갈수록 저 때문에 INF'P'화 되는 거 같아요. 쏴리...!


#어디서 본건 많아가지고 즉흥적으로 꽃잎도 날리고 할거 다하는 중
#단언컨대 작약은 정말이지 완벽한 꽃입니다


그러고 보니, 첫 편에서 '팝콘 각' 에피소드를 예고드렸었는데요. 저는 이곳을 별그램에게서 추천받았습니다. 별그램에게 이미 죄다 들켜버린 제 취향으로 인해 알고리즘의 수혜를 받게 된 것이죠. 우연히 유입된 '미트하'계정에 포스팅된 이미지를 구경하다 보니 이게 웬걸? 저희 집 고양이와 이 댁에서 기르는 고양이의 이름이 똑같은 거예요! 저희 고양이 이름이 흔한 이름은 아니거든요. 일본의 길거리 간식에서 따온 '당고'라는 이름인데, 매번 저희 고양이 이름을 이야기할 때면 대부분 이 질문이 꼭 따라옵니다. "근데, 당고가 뭐야? 먹는 거야?"


#당고, 먹는 거 맞긴 해...먹는 거(?) 당고와 고양이 당고! 정말 닮았죠?


당고는 털무늬가 '당고'를 닮아 '당고'가 되었는데 (반려인들은 대부분 아시지만, 반려동물 이름을 음식이름으로 지으면 오래 산다는 속설도 있답니다.) '미트하'의 '당고'역시 무늬가 정말 당고스럽더라고요. 신기하게도 성격마저 저희 애처럼 개냥이라 저희는 "이게 당고 종특인가?" 하면서, 저희 마음대로 앞으로 개냥이는 '당고종'이라 부르기로 했어요. 현 분당 (곧 남양주) 당고도, 김제 당고도 정말 정말 사람을 너무 잘 따르는 사랑둥이거든요.


#친화력 갑이었던 사랑둥이 김제 당고


작은 것에도 '의미담기'를 잘하는 저는 이렇게 고양이 이름이 같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혼자 내적친분을 쌓아가는 중에, 더 재미있는 사실과 맞닥뜨리게 됩니다. 저는 이곳을 에어비앤비로 예약했기 때문에 으레 그랬듯 여행 전날, 호스트에게 바비큐 비용 및 근처 식당 정보를 물어보게 되는데요. 대면으로는 먼저 말도 걸지 못하는 파워 대문자 I 인 반면, 키보드 워리어이기도 한 저는 메신저로 미주알고주알 '동명이묘' 당고 에피소드를 호스트분께 주책스레 털어놓게 됩니다.



아니, 그런데 세상에나 마상에나! 호스트 사랑님의 막냇동생과 제 이름이 같다니요? 이건 진짜 운명의 데스티니 아닙니까! 저만 그렇게 생각하나요? 헤헤... 이렇게 온 맘 그득그득 내적친분을 쌓은 채 성사 된 만남에서 호스트 사랑님과의 스몰토크 중에 저는 확신합니다. "사랑님... 이분은 확실히 나랑 같은 과야!" 어쩜 이름도 사랑스럽게시리 '사랑'이란 말입니까! 해서, 저는 무슨 용기인지 사랑님을 저희 집에 대뜸 초대하게 됩니다.


저... 제가 곧 남양주 전원주택으로 이사가게 되는데...
혹시...집들이에 초대하면 오실래요?

떨리는 고백 뒤 들려온 그녀의 대답은?
say, YES!


이렇게 저는 무려 김제에서 '새 친구'를 만들게 됩니다.


'결혼'이라는 거 저도 이렇게 하게 될 줄 몰랐습니다만, 정말 멋진 일인 거 같아요.

제게 이런 아기자기한 행복을 연쇄적으로 가져다주고 있으니까요. 제가 요새 이런 말도 자주 해요. (할 때마다 혼나긴 합니다만) "나 오늘 죽어도 여한이 없어"라고. 하지만, 정말 그런 심정인걸요. 매일 매 순간 행복이 이미 만땅이라 당장 죽어도 괜찮을 것 같단 말입니다.


아, 이건 여담인데, 저희는 웨딩링도 따로 마련하지 않았습니다. 사귄 지 3년 되던 해, 그가 준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던 커플링으로 쭉 이어가고자 합니다. 저희 링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해 보자면, 불가리의 '비제로원 세이브 더 칠드런'이라는 링인데요. 이는 그의 오랜 드림 커플링(?)이었다고 합니다. 언젠가 커플링을 하게 된다면 꼭 이 링으로 하고 싶었다나요? 연애경험치가 그렇게 많은 분께서 커플링은 또 처음 맞춰보신다고 하시니, 어디까지 믿어야 할진 모르겠으나(?) 여하튼, 누군가에겐 그냥 커플링일지라도 저희에겐 꽤나 큰 의미를 갖고 있는 반지랍니다.

#우리의 소중한 커플링 이자 웨딩링


그리고 덧붙여 이런 생각도 해보았어요. 웨딩링이니, 예단 예물이니, 화려한 결혼식장이니 뭐니 까짓거 생략하고 차라리 그 돈을 아껴서 네버랜드에 꽃나무 심고, 텃밭 가꾸고, 화목난로를 들이고, 우리의 소중한 인연들과의 소소한 집들이에 쓸 생각! 사람마다 행복의 기준이 다 다르듯, 저희에겐 오히려 이런 것들이 더 크나 큰 행복의 가치가 될 거라 확신해요.


#인상 깊었던 미즈노씨 曰 "사람은 불을 보고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결론은, 결혼 진행 A부터 Z까지- 저희 식대로 다 하니까 정말 허니잼이 따로 없습니다.

저는 다가올 하우스웨딩 때는 보랏빛 꽃이 흐드러지게 수놓아진 한복 미니 원피스에 컨버스를 신을 겁니다. 신랑 역시 이에 맞춰 힙한 생활 한복을 입힐 거고요. 그리고, 케이터링은 저희 둘 다 한식을 최고로 좋아하니 서양식이 아닌 찐동양식으로 차리고자 합니다. 각종 전과 갈비, 국수, 잡채, 한과 등등의 잔칫상(feat. 막걸리)으로요!


두 개의 세계가 하나의 세계로 통일되어가는 이 소중한 역사들을 하루하루, 한 장면 한 장면 단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 애쓰는 벅찬 나날입니다. 낭만에 살고 낭만에 죽는 자와 여유에 살고 여유에 죽는 자가 만나니, 다소 우당탕탕이지만 유쾌함이 끊이질 않는 거 같아요. 정말이지 저란 사람, 행복의 역치가 몹시 낮지 않나요? 그래서 내려본 이번 에피소드의 결론!


우리 모두 결이 비슷한 사람과
다른 사람 눈치 보지 말고,
온전히 서로의 뜻대로 사랑합시다!

#웨딩스냅 중 나의 최애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