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이 비슷한 사람과 거꾸로 하는 결혼 #3
한없이 너그러운 넓은 호수, 건우에게
더없이 따사로운 밝은 햇살, 수아가 드리워
끝없는 서로의 안식이 되고자 합니다
영원히 순수함을 잃지 않는 네버랜드에서!
오랜만에 글을 씁니다. 그 사이 결혼식이라는 걸 올렸거든요. 결혼하느라 바빴다는 건 핑계, 신혼생활 행복에 취해 허우적 대느라 정신없었다는 것도 핑계! 그저 저는 완벽한 게으름뱅이예요. 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글들을 보고 있다고 차암내 정돈된 글을 쓰지 못할 바엔 쓰지 않겠다는 강박. 이거 정말 버려야 하는데 브런치에 글을 쓸 때면 왠지 각 잡고 읽을 만한 꽤 좋은 글 써내야 할 거 같아서 하루 이틀 글쓰기를 미루게 되었던 것 같아요.
각설하고, 최근 저희 네버랜드의 가장 큰 이슈는 '마당 결혼식'이었습니다. 사실 저희는 알고 지낸 지만 곧 10년, 연인으로 4년, 혼인신고 3개월 차, 이미 서로 보우하며 잘 살고 있는 중에 결혼‘식’이라는 세리머니 그 자체는 저희 역사에 뭐 그리 대단한 큰 획은 아니었습니다만! 기념일을 늘리는 것에 의의를 두고 식을 올렸습니다. 일 년 동안 기념할 날이 많다는 건 살아가는 데 꽤 큰 힘이 되어주더라고요.
'남들 다 하는 거 하기 싫어병'이 극심한 저희 부부. 전형적인 웨딩드레스와 턱시도도 입지 않았어요. 왜 결혼식엔 흰색 드레스를 꼭 입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어차피 격식 없이 하는 거 의상도 저희 마음대로 했죠. 저는 자수가 새겨진 소라색 한복을, 남편도 그에 조화를 맞춘 컬러톤의 캐주얼한 한복으로 준비했습니다. 웨딩케이크 역시 하얀 생크림 케이크가 아닌, 이사 오기 전 제가 자주 가던 단골 케이크집에서 제 취향에 딱 맞춘 빈티지 케이크로 부탁했어요. 부케도 빈티지면 깜빡 죽는 제 취향을 익히 잘 아시는 단골 꽃집 사장님에게 의뢰하여 '이게 부케라고?' 싶은 유니크한 꽃들로 조합하여 제작했습니다. 사진과 영상이야말로 더더욱 저희답게 남기고 싶었기에, 친구찬스를 써서 가장 자연스럽고 우리 다운 편안한 웃음이 가득한 사진들을 남겼습니다. 특히, 필름사진을 취미로 찍는 절친이 남겨준 사진은 시선 하나하나에 저희 부부를 향한 응원의 마음이 느껴져서 너무나 고맙고 벅찬 행복을 가져다주는 대목 중 하나랍니다.
테이블 세팅부터 진행까지 전부 다 셀프로 하다 보니 우여곡절이 많았어요. 저희는 일전에 상견례도 진행한 적이 없기 때문에 결혼식 날이 양가 식구분들이 서로를 처음 만나는 자리이기도 해서 양쪽 가족소개 및 인사를 주선하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서로가 어색한 자리이다 보니 음식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저와 신랑은 거의 먹지도 못해 준비한 음식도 결국엔 많이 남기게 되었고요. 그런 와중에 행사 막판에는 바람이 너무 세차게 불어 접시며 술잔이며 바람에 떨어지고, 날아가고... 정말이지 온몸의 피가 쏙 빠져나가는 기분이었죠. 허허허.
그럼에도 불구! 다시 돌이켜 생각해 봐도 우리의 결혼식은 우리집에서, 우리답게, 우리친구들에게 부탁하길 너무너무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설프고, 격식도 없이, 우당탕탕 지나가버렸지만 다음 생에 다시 해도 이렇게 할 거고, 이 사람과 할 거고, 이들에게 부탁할 거예요. 부케부터 케이크, 사진들까지 전부 저와 연이 닿지 않은 곳이 없음으로 가장 행복한 날이 가장 수아스러웠음을 힘든 날마다 이따금씩 꺼내 먹으며 기운을 차리려고 합니다.
여담으로, 비혼주의를 고집하던 저희 남편이 저와 결혼하게 된 결정적 이유를 저 역시도 결혼식 날에서야 명확히 알게 되었는데요. 정작 당사자인 저도 기억나지 않는, 언제쯤이었는지도 모를 과거 제 발언 때문이었더라고요. 아마 평소에 너무 당연하게 여기던 것이었던지라 막상 저는 기억을 못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남편 왈, 언젠가 저희는 '성공한 인생이란 무엇일까?'에 대해 이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대요.
"성공한 인생이란 건 뭘까요?"
"전 이미 성공했는데요?"
"...?"
“당신을 내 사람으로 만들었잖아요"
“…!!!!!”
이 발언이 꽤 깊게 그의 심장에 가닿았던 모양이더라고요. 맞습니다. 그로 하여금 이미, 성공한 제 인생! 이 성공가도를 앞으로도 잘 이어 가기 위해 네버랜드에서의 별 거 없이도 소중한 나날들을 꾸준히 잘 가꿔나가고자 합니다.
얼마 전, 아침에 눈 뜨자마자 그가 나지막이 인사처럼 이런 말을 했어요. "우리, 결혼하길 정말 잘했죠?"라고. 자신의 인생에서 '결혼'이라는 키워드를 두지 않았던 사람이 이런 말을 꺼내주니 무척 기뻤습니다. 다행히도 그가 저와 함께하는 이 길 위에서 진심으로 행복하구나 싶었거든요.
남은 올해는 매주 들이닥칠 집들이 러쉬로 정신없을 거 같아요. 말이 집들이지, 가까운 지인들에게 서로를 소개하는 결혼식 피로연과 같은 자리라 주말마다 얼마나 설레고 즐거운지 모릅니다. 또 이 유쾌한 삶의 단상들을 차곡차곡 잘 모아두었다가 한 편의 에피소드로 갈무리 지어 다시 돌아올게요!
(p.s- 그 사이 네버랜드에 털뭉치가 +1 되었습니다. 앞으로 연재할 이갈이 전쟁 중인 순수악(?), 시바견 후크와의 에피소드도 많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