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융통성이 내 삶을 지탱할 것이다
얼마 전, 아차산 생태공원에 가겠다고 나섰을 때의 일이다.
난 내가 산을 좋아하게 될 줄은 몰랐다. 풀을 좋아해도 매일 수목원에 가지는 않는 것과 같은 원리였다. 이사 온 집에서 아차산이 꽤 가까움을 알았을 때, 가보고 싶다고 생각한 스스로가 놀라운 이유기도 했다.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점은 작년에 사고로 다친 팔이었다. 손목에 박힌 철심은 내 일상생활을 지탱하기엔 무리가 없지만 무언가 잘못되어 넘어지기라도 하는 순간 모든 걸 원점으로 만들기 충분했다. 철심이 박힌 손목의 뼈가 한 번 더 부러지면, 내 일상이 산산조각 나리라는 사실이 무서웠다.
겁쟁이가 선택한 방법은 아차산 등산로 근처의 생태공원이었다. 초록빛 나무들도 실컷 보고, 운동하는 기분도 내고. 나름 신나서 생수와 프로틴 바까지 챙겨 나선 길은 10분 만에 암초를 맞닥뜨렸다. 공원 근처까지 가는 버스가 종최 오질 않는 것이다. 10분까지는 기다릴만했다. 노래도 흥얼거리고, 밀린 연락에 답장도 하다 보니 시간이 금방 지났다. 문제는 20분이 넘어가면서부터였다. 그날은 유독 햇볕이 쨍쨍했고, 앉을 곳이라곤 없어서 계속해서 한 자리에 서 있어야 했던 다리가 저렸다.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지도 애플리케이션을 켜 경로를 다시 한번 더 검색했다. 지금 서 있는 곳에서 8분을 걸어가면 있는 버스 정거장에 가서 새로운 버스를 탈 수 있었다. 찾았던 것과는 아예 다른 길이었다. 난 안내 전광판부터 확인했다. 23분을 기다린 3220 버스가 5분 후 도착한다고 적혀있었다.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렸다. 다른 정거장으로 걸어가는 시간과 비교하면 이곳에서 5분을 기다리는 게 더 나을 것 같았다. 계속 기다리기로 마음을 정했다.
5분, 4분, 3분 30초, 1분 29초, 1분, 20초. 드디어 저 멀리서 3220 버스가 보였다. 너무나 반가웠던 나는 펄쩍 뛰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얌전하게 버스정류장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믿지 못할 일이 일어났다. 서서히 다가온 버스가 속도를 줄이기는커녕 계속해서 나아가기만 하는 것이다. 무언가 착오가 있었는지, 아저씨는 멈춰야 하는 역에서 멈추는 것 대신 신호를 받으러 떠나는 버스의 뒤꽁무니만 보여주셨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어안이 벙벙했다. 내게는 기사 아저씨와 눈을 마주칠 시간도, 그 뒤를 따라갈 시간도 없었다. 그 버스를 기다린 30분이 그렇게 한순간에 공중분해되고 말았는데도.
현실을 부정하기를 3분 여가량. 다시 고개를 들어 본 안내 전광판에선 어느새 리셋된 숫자가 날 반겼다. 3220 버스는 또 18분 뒤에야 온다고 적혀 있었다. 난 더는 현실을 부정하기를 멈추고, 아까 봐 두었던 다른 경로로 가기 위해 걷기 시작했다. 횡단보도를 건너는 순간에는 버스 회사에 클레임을 걸까도 생각했다. 30분이면 유산소 운동을 숨 가쁘게 할 수 있다. 30분이면 밥을 두 번 먹는다. 30분이면 좋아하는 유튜브 영상을 세 번은 볼 수 있다. 그런데 그 30분을 그중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단순히 제자리에서 기다리기만 하며 보내야 했다는 게 너무나도 분했다.
그런데 횡단보도를 건너고, 새로운 정거장에 도착할 즈음에는 문득 다른 생각이 들었다. 방금 겪은 이런 일들이 살면서도 여러 번 있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단순히 버스를 놓치는 것 말고, 당연히 올 거라고 생각했던 기회들을 놓치는 일 말이다. 그럴 시간에 다른 길을 택했다면 더 빨리 목적지에 다다랐을지도 모르는데.
취업준비생일 때도 그랬다. 돌이켜보면 무언가를 했던 시간보다는, 어떠한 기회가 막연히 올 거라고 생각하고 제자리에 서 있던 시간이 많았다. 버스는 계속해서 지나다녔는데, 난 내가 갈 길이 명확히 적힌 버스가 눈앞에 멈춰 서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변명할 거리는 있다. 다른 길이 있다는 걸 알긴 해도, 그 길로 가면 또 한참을 기다려야 할 것 같았다. 그 길로 가는데 이 버스가 왔고, 이 기회를 포기했다는 걸 후회하게 된다면? 그 기회비용이 아깝다는 생각에 인내심이 바닥난 상태로도 그 자리에서 기다리기만 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그 버스가 왔는데도 놓치는 일이 생기고서야 깨달았다. 내가 방금 날린 게 하나의 기회만이 아님을 말이다.
기회란 3220 버스만이 가져다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중간에 멈추고 되돌아가거나, 맞은편으로 건너가는 것이 답일 수도 있다. 그걸 알기 위해 20대를 보냈다. 내가 바라던 무언가가 꼭 내가 원하는 형태로 찾아오진 않는다. 그러니 늘 목적지로 가는 길을 여러 개 알아두어야 한다. 하나의 경로가 잘못되었음을 알았을 때는, 다른 경로를 진지하게 재고한 후 바로 행동에 나설 수 있어야 한다. 객관성과 추진력 둘 중 하나를 택하는 게 아니라, 둘 다를 가질 수 있도록 스스로를 단련시키면서.
다음에 아차산을 가게 되면, 3220 버스도, 2224 버스도 아닌 다른 버스를 타겠다. 그러나 그 또한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면 3220 버스와 2224 버스를 다시 고려해보겠다. 그런 융통성이 내 삶을 지탱할 것이다. 어떤 버스를 놓치고 탔느냐가 아니라.
사진은 그날 생태공원에 가서 보았던 계단 사이에 핀 튼튼하고 예쁜 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