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00달러 지폐는 어디로 사라졌을까?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by 온늘

한 달간의 남미여행 중반이 넘어갈 즈음, 란항공을 타고 살타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로 이동했다. 그토록 좋아했던 리오넬 메시의 나라 아르헨티나의 수도라니! 남미의 파리라는 부에노스아이레스는 오랜 시간 가보고 싶었던 곳이기에 기대가 컸다.


부푼 마음을 안고 숙소에 짐을 내려놓은 후 플로리다 거리(Calle Florida)로 나가니 유럽의 여느 도시 못지않게 예쁜 건물들과 바둑판처럼 정비된 길이 깔끔하면서도 멋진 인상을 주었다. 이민자들이 세운 국가라는 정체성이 강한 아르헨티나는 남미에서 백인 비중이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로, 이탈리아와 스페인계 이주민이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유럽인과 원주민의 혼혈은 소수에 불과하다. 유럽 혈통에 소고기를 많이 먹으며 축구를 즐겨서일까? 마치 거인 나라에 온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남성들의 키가 190cm 이상인 사람이 많이 보여서 생경한 풍경이었다.



“깜비오, 깜비오!”

길거리를 돌아다니다가 가장 많이 들은 말인 ‘깜비오’. 시간이 지나도 잊어버리지 않는 이 단어는 ‘환전’이라는 의미로, 은행과 사설 환전소의 환율 차이가 커서 생긴 환전상들이 영업하는 길거리 풍경이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자국 통화인 페소의 가치가 급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은행에서 적용하는 공식 환율을 인위적으로 높게 설정해 두었지만, 실제 시장에서 페소의 가치는 훨씬 낮기 때문에 은행 환율로 환전을 하면 여행자든 현지인이든 제값을 못 받는 셈이 된다. 지금 생각해 보면 불법 환전소가 대다수였을 것 같은데, 여행자들은 아무 의심 없이 환율을 잘 쳐주는 환전소를 찾기 위해 ‘깜비오’를 외치는 환전상을 만날 때마다 환율을 물어봤다. 나 역시 길을 걸으며 환전 시세를 파악했다.


플로리다 거리를 걷던 중반쯤, 괜찮은 환율을 부르는 환전상이 나타나서 우리는 “여기다!”를 외치고 바로 환전을 결정했다. 환전상이 따라오라는 대로 건물 2층으로 올라갔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거대한 남성 두 명이 나타나더니 엘리베이터에 동승했다. 기다렸다는 듯이 우리를 데리고 올라가는 이 둘은 누구지? 2층까지 가는 짧은 순간이었으나 본인들끼리 깔깔 웃는 모습을 보니 분위기도, 내 마음도 묘했다. 키가 2m는 되어 보이는 두 남성과 좁은 공간에 같이 있으니 압도되는 느낌에 나도 모르게 구석으로 뒷걸음질을 쳤는데, 이때 눈치를 챘어야 했다. 아르헨티나에서의 환전이 호락호락한 게 아님을!


2층에 도착해서 환전소 문을 열어주는데, 들어가자마자 문을 잠가서 나의 공포는 점점 심해졌다. 티는 안 냈지만 지구 반대편의 밀폐된 공간에서 언어도 통하지 않는 건장한 남자 셋이 지켜보는 가운데 돈거래를 한다는 것 자체가 무서워서 손이 떨리고 온몸이 긴장되는 순간. 역시나 이때를 놓치지 않고 일은 일어나고 말았다. 가장 먼저 환전을 한 친구가 250달러를 건네니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순식간에 100달러를 1달러짜리 지폐로 바꿔치기한 건장한 남자. 뻔뻔스럽게 “너는 151달러를 줬잖아, 100달러짜리는 한 장이었는데?”라고 말하는 사기꾼 앞에서 따지기는커녕 오히려 할 말도 못하고 눈치만 보는 이 상황이라니!


나중에 이성이 돌아온 후 생각해 보니 밀폐된 공간에서 건장한 사람들을 고용하여 공포심을 조장해 사기를 치는 수법이었다. 눈앞에서 사기를 당한 게 믿기지 않았지만, 그저 이 공간과 이 순간이 무서워서 빨리 나가고 싶었다. 비행기가 난기류를 만나 추락할 듯 흔들리는 게 차라리 덜 무서울 정도였으니... 진심으로 생명의 위험을 느낀 나는 이 와중에 친구의 손해를 함께 나눠야 한다는 생각에 손가락까지 떨며 한 장 한 장 지폐를 보여주며 환전을 했다. 받은 페소화가 위폐가 아닌지 확인하면서도 불안이 극에 달해 울고 싶기만 했던 순간, 환전을 끝냈으니 얼른 나가려고 문을 열었는데, 뭐지? 굳건하게 잠긴 문은 손잡이를 열심히 돌려봐도 열리지 않았다. 덜덜 떨면서 뒤를 돌아보니 씨익 웃으며 다가오는 건장한 남자. 천만다행히도 문을 열어주어서 우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계단을 마구 뛰어 내려갔다. 이때만큼은 여행에 대한 회의가 깊숙이 들었다. 내가 왜 목숨 걸고 남미여행을 하고 있는 걸까.


동양인이라고는 한 명도 보이지 않는 플로리다 거리에서 멍하니 넋을 잃고 주저앉아 있는 여자가 먹잇감처럼 보였을까? 또 다른 환전상들이 다가와서 ‘깜비오’를 외치는데 꼴도 보기 싫었다. 마추픽추와 우유니에 가기 위해 시골 마을로만 다니다가, 오랜만의 대도시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 위해 환전을 하려고 했을 뿐인데. 그토록 기대했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빨리 탈출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 자체가 스스로 아쉽고 안타까웠다.

메시의 드리블만큼이나 화려했던 환전상의 손기술. 그가 우리에게 남긴 99달러의 빚은 이 도시의 민낯을 배우기 위해 지불한 가장 비싼, 그러나 가장 확실한 수업료였다. 그 대가로 나는 여행 중 '친절한 미소 뒤의 손기술'을 경계하는 법을 배웠으니 이를 다행이라고 여겨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


오랜 시간 아무 이유 없이 마음이 끌렸던 부에노스 아이레스. 이름이 주는 어감이 예쁘다고 생각한 지구 반대편의 도시를 문득 찾아봤다가 이름만큼이나 멋진 도시의 풍경에 내 마음은 단번에 사로잡혔다. 유럽의 감성적인 분위기와 라틴 아메리카의 화려함이 더해져 더욱 매력적이었던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 아이레스. 16세기에 이곳을 정복한 스페인인들은 항해를 하며 성모 마리아에게 좋은 공기(바람)를 기원했다. 부에노스 아이레스는 ‘좋은 공기’라는 의미로, 정복자들의 기원이 어원이 된 곳이다.


여행 내내 맑은 날씨와 함께 이름처럼 좋은 공기를 자랑하던 부에노스 아이레스는 사진에서 본 것처럼 멋진 건물과 분위기가 매력적인 곳이었다. 길거리에서 소고기, 채소, 치즈 등이 들어간 아르헨티나인들의 소울 푸드인 엠빠나다(Empanada)를 사 먹으며, 바로 옆에서 탱고를 추는 여인의 우아한 몸짓을 구경할 수 있는 낭만적인 도시이기도 했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될 만큼 하나의 예술로 자리 잡은 탱고는 19세기 말,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항구 마을 보카(La Boca)에서 이민자들이 삶의 애환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담아 만든 춤이다. 탱고의 나라에 왔으니 그냥 가면 섭섭할 터. 길거리의 예술가들이 부에노스 아이레스 곳곳에서 공연을 하기도 하지만, 저녁 식사를 하며 라이브로 탱고를 감상할 수 있는 카페도 여럿 있다. 그중 한 군데를 골라 예약을 하니 탱고를 감상할 설렘에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았다.


드디어 저녁이 되어 다시 찾아간 오픈한 지 160년이 지난 카페. 와인을 곁들인 저녁 식사를 하며 탱고를 감상하는 사치를 누렸다. 탱고의 본고장이니만큼 기대 이상으로 멋지고 화려한 무대였다. 우아하면서도 섹시한 몸짓의 여성과, 그녀를 유혹하는 멋진 남성의 세련된 몸짓을 눈앞에서 보니 탱고가 이렇게 아름다운 춤이었음을, 그야말로 하나의 예술이었음을 느꼈다. 이전에 스페인에서도 탱고를 본 적이 있지만, 역시 본고장에서 즐기는 탱고는 나에게 몇 배의 감동을 선사해 주었다.


비록 여행의 시작은 쉽지 않았지만, 품질 좋은 와인과 소고기의 ‘맛’, 그리고 우아한 예술인 탱고의 ‘멋’이 살아있는 부에노스 아이레스는 여행자에게 좋은 공기를 맘껏 선물해 주는 곳이었다. 이제는 떠나고 싶지 않은 이곳에서 쾌청한 날씨를 만끽하며 한국에서 가져온 묵은 근심도 함께 털어내어 본다. 어느새 여행을 통해 내 마음의 날씨도 쾌청해지고 있었다.


이것이 먼 지구 반대편까지 날아와야 하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