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에미리트 두바이 ①
두바이에서의 일주일이 순식간에 지나가고 마지막 밤이 되었다. 피곤했는지 아이들이 일찍 잠들어서 남편과 나는 맥주를 한 잔 마시며 이번 여행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남편은 잠든 아이들과 함께 숙소를 지키고, 나 홀로 이슬람 국가인 두바이에서 합법적으로 술을 살 수 있다는 ‘MMI(Maritime and Mercantile International)’로 향했다.
두바이에서는 외국인이 여권만 있으면 술을 구입할 수 있는 30일짜리 임시 허가증을 발급해 준다. 거주자는 당연히 허가증을 지니고 있어야 술을 살 수 있는데, 같은 아랍에미리트의 토호국인 아부다비는 2020년부터 이 제도가 폐지되었고, 샤르자는 술 판매 및 소지 자체가 불법이라 주의해야 한다. 두바이는 전체 인구에서 외국인 비중이 80%가 넘지만, 길거리에서 술을 마시거나 술에 취한 채 돌아다니면 안 된다. 이슬람 전통을 유지하면서도 전 세계 사람들을 받아들이기 위해 가장 세련되게 타협한 이슬람 도시랄까.
숙소 근처의 24시간 마트 뒤에 자리하고 있던 빨간색 글자의 MMI는 입구에서부터 보안요원이 감시하듯 서 있었다. 왜 죄를 짓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죄책감이 느껴지지? 최근에 건강 때문에 술을 끊었다가, 여행 왔으니 한 잔 정도는 마셔도 괜찮다고 합리화하고 맥주를 사러 온 나에게 주는 죄책감인가? 별 이상한 생각을 하며 안으로 들어섰는데 확 숨이 막혔다. 내부에도 보안요원들이 돌아다니는 이곳은 생각했던 것보다 좁은 공간에 다양한 종류의 술이 빽빽하게 차 있었다. 동양인인 나를 포함한 전 세계의 다양한 인종들이 이 좁은 공간에서 부대끼며 술을 사는 모습이라니...!
점점 더 숨이 막혀와서 얼른 맥주를 사고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워크인 냉장고로 들어갔다. 이 짧은 순간에도 나에게 스몰토크를 시도하는 사람도 있었고, 특별히 할인하는 맥주를 쓸어 담는 사람도 있었으며, 신중하게 맥주를 고르는 사람도 있었다. 온갖 술들로 도배되어 있어서일까. 이곳 특유의 몽롱한 분위기는 술을 마시지도 않았는데 기분 좋게 술에 취해 보이는 사람들과 어우러져 더욱 신비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계산하려고 보니 꼬불꼬불하게 늘어선 줄과 일자로 늘어선 줄이 있었다. 두 갈래의 선택지를 살펴보니 꼬불꼬불한 줄은 종업원들이 직접 계산해 주는 줄이고, 일자 줄은 셀프 계산대 줄이었다. 평소 같으면 셀프 계산대에 줄을 서서 후다닥 계산하고 나왔을 텐데, 외국인인 나는 여권 검사를 받아야 하니 꼬불꼬불하게 늘어선 줄의 맨 끝에 섰다. 중간쯤까지 줄이 빠졌을 때 앞줄에 서 있던 한 남자가,
“You’re not in the right line. You should stand over there.”
(당신은 이 줄이 아니에요. 저 줄로 가세요.)
라고 말을 걸었다. 내가 보기엔 두 가지 줄밖에 없는데 어디에 또 줄이 있다는 거지? 순간 이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사람인 듯한(술 사러 왔으면서) 표정을 지어 보이니
“Trust me.”
(내 말을 믿어요.)
라는 말을 하며 손가락으로 줄을 가리켰다. 시끄럽고 어수선한 공간에서 이 이야기를 들은 근엄한 표정의 카리스마 있는 흑인 보안요원이 바로 나에게 다가오더니
“Do you have a license?”
(신분증 가지고 있어요?)
라고 묻고는 이어서
“Is it your first time here?”
(여기 처음 왔어요?)
라고 물었다. 모두 그렇다고 하니 갑자기 없던 줄이 생기면서 종업원이 바로 계산을 해주는 게 아닌가! 아마 이곳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줄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터. 그냥 넘어갈 수도 있었을 텐데 본인 말을 믿으라고까지 말하면서 친절하게 알려주는 두바이인의 따뜻한 마음에 감동했다.
국경 너머 낯선 곳에서 이방인이 된 나를 위해 도와주는 손길은 언제나 뜨겁게 내 마음에 자리한다. 아무 조건 없이 최선을 다해 도와주는 현지인들을 만날 때마다 ‘여행 오길 잘했다’는 만족감이 온몸에 퍼지면서 감사함이 자리하는 것이다. 언어가 달라도, 피부색이 달라도 사람은 본질적으로 선한 마음을 지니고 있기에 본능적으로 도와주려는 마음이 생긴다. 이 감사함으로 여행자의 마음은 풍요로워지고, 이 충만함을 잘 간직하며 한국으로 돌아가 일상에 하나씩 심어둔다. 그렇게 여행 후의 나의 일상은 감사함과 충만함이 한 스푼씩 더해져 때로는 험난하고 때로는 짓궂은 이 세상을 열심히 살아가는 힘이 생긴다. 그리고 나 역시 도움의 손길을 내밀며 그들에게 이 마음을 전달한다.
계산대의 직원은 나의 여권 정보를 입력하고 재차 “South Korea?”라고 물으며 신분을 확인했다. 이슬람 국가에서의 알콜 섭취에 대한 인상은 맥주를 사는 경험으로 충분히 얻게 되었다. 나의 개인정보를 넘겨야 하지만, 괜히 찝찝한 마음에 카드가 아닌 현금으로 계산을 하지만, 이것도 새로운 문화를 경험하고 존중하는 과정이라는 것. 이것이 여행이 나에게 가르쳐주는 다문화를 이해하는 믿거름이 아닐까?
이곳에 들어갈 때 느낀 죄책감의 근원은 사실 ‘감시’에 있다. 입구부터 가게 곳곳에 늘어선 보안요원의 시선과, 계산을 할 때 반드시 여권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 그 뒤에는 이슬람이라는 뿌리 깊은 종교 문화가 자리하고 있다. 이슬람 성서인 쿠란에서는 술을 ‘사탄이 만든 불결한 것’으로 묘사한다. 이성은 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가장 귀한 선물인데, 술은 인간의 이성을 흐리게 하여 알라에게 예배하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에 멀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행을 기분 좋게 마무리하고자 찾아간 MMI. 나는 이곳에서 마주한 죄책감 덕분에 이슬람 문화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비록 들어갈 때와 마찬가지로 나올 때도 죄책감을 한가득 안고 나왔지만, 술을 대하는 나의 마음이 조금은 달라졌음을 느끼며 알콜을 섭취하는 행위에 대해 생각해 본다. 인생의 쓴맛을 볼 때마다 무심코 집어 든 맥주 한 캔이 지구 곳곳에서는 결코 허락될 수 없는 행위라는 것. 이슬람교가 아님에도 죄책감을 느꼈다는 것은 평소 술에 대한 나의 마음이 반영된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이제는 진짜 건강을 위해 술을 끊어야 할지도...!
그나저나 아직 허가증 유효기간이 남아있을 텐데, 지금 다시 들러도 죄책감이 느껴지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