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와나카 가는 길
남편과 둘이 떠난 2주간의 뉴질랜드 여행은 북섬 오클랜드에서 출발해서 남섬 크라이스트처치까지 가는 렌터카 여행이었다. 긴 비행 끝에 오클랜드 공항에 도착해서 렌터카 픽업 차량을 기다리는데 뭔가 이상했다. 아무리 기다려도 픽업 차량이 오지 않았다. 다른 렌터카 회사 차량들과 호텔 픽업 차량들은 계속 오는데 왜 내가 예약한 렌터카에서는 올 생각을 안 하지? 렌터카를 예약하면서 추가 요금까지 내며 픽업 요청을 했는데. 분명 시간도 제대로 기입했는데 이상했다.
결과적으로 나의 착각이었다. 도착 후 렌터카 회사에 전화해서 픽업 차량을 요청하지 않으면 미리 예약했어도 자동으로 오지 않았던 것.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구입한 보다폰 유심으로 렌터카 회사에 전화하니 금방 픽업 차량이 갈 거라는 안내를 해주신다. 조금만 있으면 이 기다림은 끝나겠지 싶었으나, 또 한 번 기다림에 지칠 때쯤 나타난 픽업 봉고차. 그렇게 첫날부터 깨달았다.
그래, 여기는 뉴질랜드지.
느리게, 천천히 삶을 즐기는 섬 뉴질랜드.
드디어 렌터카를 받고 본격적인 여행을 시작했는데, 시작부터 또 다른 위기가 찾아왔다. 뉴질랜드는 좌측통행 국가로 우핸들 차량이라는 것! 해외 렌터카 운전은 전적으로 남편 담당이라 출발 전에 미리 우핸들임을 인지하고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왔는데, 역시 전쟁터에서는 마음은 필요 없고 실전만이 중요했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주행해도 어느새 역주행하고 있는 우리 차. 깜빡이 켰는데 와이퍼만 작동하는 우리 차. 수없이 나오는 회전교차로에서 어느 쪽으로 돌아야 하는지 헷갈려서 우왕좌왕하는 우리 차. 다행히 길에 차가 별로 없어서 거북이처럼 느리게 운행하며 적응 시간을 가지니 어느새 좌측통행이 익숙해져 있었다.
북섬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남편이 우핸들 운전에 자신감이 붙었을 즈음 남섬으로 넘어갔다. 웰링턴에서 페리에 차량을 싣고 픽턴항으로 넘어가 넬슨까지 가는 여정. 페리에서 잠을 푹 못 자서 피곤한 몸을 이끌고 넬슨으로 가기 위해 네비에 목적지를 찍었는데, 아니 웬 뱀? 작은 네비게이션 화면에 꽉 찬 도로 모양은 그야말로 구불구불하게 몸을 웅크린 뱀 형상이었다. 이런 산길을 넘어가야 넬슨에 갈 수 있다고?
이때부터 또 거북이 속도로 운전하며 구불구불한 산길 운전에 적응하는 시간을 가졌다. 급 커브 구간은 15~35km, 평균적으로는 45~65km 사이로 운행하라는 표지판이 지속적으로 보였던 남섬 도로. 남편은 소중한 우리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이동할 때마다 속도를 준수하며 50~60km 정도로 운전했다.
여행 중반쯤, 프란츠 요셉 빙하 하이킹을 하고 천혜의 자연이 만든 아름다움에 남편과 함께 무한 감탄을 했다. 불투명한 회색빛깔의 빙하유를 보며 다시 한 번 뉴질랜드에 반하는 순간이었다. 아무 기대 없이 나를 따라 여행 온 남편은 나보다 더 감동하며 뉴질랜드를 온몸으로 즐기고 있는 모습이었다.
다음 날 와나카로 넘어가는데 그 일이 일어났다. 왕복 2차선 산길을 넘어가며 약 55km 속도로 주행하는데, 어느샌가 뒤따라오던 차가 우리를 추월하며 빵빵!하고 커다란 경적을 울리면서 지나갔다. 이후 앞에서 창밖으로 가운데 손가락과 함께 백인 남자가 머리를 내밀며 큰 소리로,
“Fucking!!”
으응? 내가 잘못 들은 건가? 지금까지 숙소에서든 가게에서든 매너 넘치는 뉴질랜드인들만 만나서 설마ㅡ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때 또다시 들려온 말,
“Fucking!!!”
그 순간 꽁꽁 얼어서 여름에도 녹지 않는 뉴질랜드의 차가운 빙하처럼,
‘뉴질랜드의 배꼽’의 날카로운 송곳처럼 내 마음은 차갑게 식으며 피를 흘렸다.
그러고 보니 신호등이 없는 곳에서 보행자가 안전하게 길을 건널 수 있도록 기다려 주면 버스를 비롯한 차들이 뒤에서 끊임없이 경적을 울려댔다. 우리나라처럼 도로에 차가 많지 않아서 여유로운 운전을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전혀 상관없었다니. 뉴질랜드에 도착한 첫날, 내가 하염없이 기다린 렌터카 픽업 차량 때문에 ‘느리게, 여유로운 삶을 살아가는 뉴질랜드’라는 첫인상을 줬던 뉴질랜드. 그리고 매일같이 감탄을 금치 못하게 만드는 그림 같은 자연 덕분에 자연스레 마음이 둥글둥글해지면서 나도 모르게 뉴질랜드의 좋은 면만 보려고 했나 싶었다.
19세기 뉴질랜드에서는 ‘식민지 개척’이라는 단어 하나로 설명하기 부족할 만큼 격동의 시기였다. 마오리족의 전통적인 토지 개념과 유럽 정착민들의 소유권 개념이 충돌한 와이탕이 조약(Treaty of Waitangi, 1840년) 이후 뉴질랜드 전쟁(New Zealand Wars, 1845~1872년)이 일어나면서 마오리 공동체는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마오리 땅을 강제로 빼앗으려 한 유럽 정착민들에게 무력으로 저항한 마오리족은 결국 영국 정부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고, 19세기 말에는 대부분의 땅이 그들에게 넘어갔다. 이런 그들이 지금은 마오리 문화를 이해하고 포용해 주는 ‘마음씨 좋은 뉴질랜드인’처럼 느꼈던 뉴질랜드 여행에서 난 그저 사람이 아닌 자연의 멋진 풍경만 품고 돌아가야 하는 걸까.
물론 ‘그런 사람’만 만난 내가 운이 없었을 수도 있고, 규정 속도를 지켜 천천히 운전하는 것이 실제 뉴질랜드 운전 문화에서 답답한 행동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이 태어나기 전에 다녀온 뉴질랜드의 자연이 매우 인상 깊어서 언젠가 아이들과 캠핑카 여행을 해보고 싶다고 말하는 남편. 부부싸움이 칼로 물 베기라고 하듯 여행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추신) 뉴질랜드에서 규정 속도를 지키는 것에 대해 AI에게 물었더니 이렇게 답한다.
“뉴질랜드는 중앙분리대 없는 왕복 2차선에 급커브가 잦은 지형이 많으니 대부분의 현지인은 속도를 철저히 지킵니다. 관용 없이 엄격하게 단속하니 규정 속도를 지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