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에미리트 두바이 ②
아이와 함께 여행을 하면 시간과 장소 등 모든 것을 아이에게 맞춰 움직여야 여행이 힘들지 않다. 첫째가 아기였을 땐 언제든지 숙소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하루의 여행 계획을 널널하게 잡아서 유사시에 대비했는데, 그래야만 나도 아이도 힘들지 않게 여행할 수 있었다. 이제 아이들이 좀 컸으니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관광지를 둘러볼 수 있게 되었는데, 사실 초1과 유치원생에게는 여전히 쉽지 않다. 그래서 오전 느즈막히 숙소에서 나갔다가 현지인들 퇴근 시간인 오후 6~8시쯤에 우리도 숙소로 퇴근한다. 우리 애들이 집에서 큰 위안을 얻는 집돌이 성향이 있어서, 밖에서 적당히 놀고 얼른 집으로 돌아와야 하기 때문이다.
두바이에서는 일부러 메트로와 가까운 숙소를 예약해서 핵심 관광지를 다닐 때마다 편리하게 이용했다. 문제는 오전에 천천히 숙소를 나설 땐 메트로에 사람이 적당해서 괜찮은데, 퇴근 시간 이후부터는 밤 늦게까지 지옥철이 된다는 것이다. 이 사실을 모르고 어느 날 두바이몰에서 숙소로 가기 위해 메트로를 기다렸다가 깜짝 놀랐는데, 도저히 탈 수 없어서 여러 대를 보냈지만 1분 간격으로 똑같은 지옥철만 계속 오는 걸 보고 좌절했다. 어떻게든 숙소로는 돌아가야 하니 아이들에게 마음 단단히 먹으라고 말한 뒤 지옥철에 뛰어드는데, 그때 내 옆에 있던 현지인 남성이 남편과 애들만 태우고 내가 못 탈까봐 나를 먼저 꾸깃꾸깃 밀어 넣어 주더니 씨익 웃으며 본인 몸도 열차에 구겨 넣는다. 고마워요, 친절한 두바이 아저씨.
지옥철을 처음 경험한 아이들은 이후 무용담처럼 지옥철에서 살아남은 이야기를 꺼내곤 했는데, 또 다른 문제는 며칠 후에 일어났다. 또 퇴근 시간에 숙소에 돌아가게 된 우리는 도저히 지옥철에 탈 자신이 없어서 버스를 타고 가기로 결심했다. 어차피 지하철이 다니지 않는 해변가였고, 해변 도로를 따라 쭉 올라가면 숙소가 나오기에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굳이 지하철로 갈아타지 말고 버스에 편하게 앉아서 돌아가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문제가 터졌다. 갑자기 둘째가 울기 시작했던 것! 버스를 탄 지 30분 정도 지났을까. 평소 답답한 것을 싫어하고 후각에 예민한 둘째가 버스 안이 현지인들로 꽉 차니 답답한 공기와 특유의 냄새를 견디기 힘들어 했다. 심지어 두바이는 산유국의 위용을 뽐내듯 늘 도로에 차가 많은데, 퇴근 시간이니 오죽했으랴. 어르고 달래며 버스에서 버티다가 둘째가 한계치에 도달했을 때 결국 우리 가족은 어딘지도 모를 동네에서 다급히 내리고 말았다. 버스에서 징징거리던 둘째를 다 받아준 남편은 점점 안색이 나빠지고 있었는데, 하필 이날따라 일교차가 커서 저녁이 되니 엄청 쌀쌀했고, 겉옷을 안 가져간 남편은 추워서 오들오들 떨기 시작하며 얼굴이 흑빛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
결국 다음 버스로 남편과 첫째를 숙소로 보내고, 난 둘째를 위해 걷기 시작했다. 다행히 유아차를 가지고 나와서 둘째를 태우고 하염없이 걸어가는데, 지도를 보니 숙소까지의 거리는 5km. 도쿄 신주쿠역에서 아야세역까지 하루 종일 걸으며 곳곳을 둘러봤을 정도로 걷는 여행을 좋아하는 나에게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지!
답답한 버스에서 벗어나니 마냥 신난 귀여운 둘째. 둘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쌀쌀한 두바이 밤의 찬 바람을 견뎌내며 길을 걷는 것은 나쁘지 않았다. 열심히 걷다 보니 배가 고파와서 구글맵에 미리 저장해 두었던 식당을 찾아보는데, 마침 근처에 로컬 맛집이 있어서 둘째와 저녁을 먹고 가기로 했다.
도착하니 가게 이름 그대로 샤와르마 전문점이었다. 샤와르마는 터키의 케밥과 비슷한 음식으로, 방금 썰어 낸 고기와 각종 채소를 랩처럼 밀전병에 싼 음식이다. 자리에 앉아 신선한 과일들이 케이스에 진열되어 있는 걸 보자마자 둘째는 오렌지주스를 주문했고, 나는 치즈, 비프, 치킨치즈 세 종류의 샤와르마를 주문했다.
식당에 들어오니 식었던 몸이 따뜻하게 데워지면서 언제 ‘총체적 난국’이었냐는 듯 나도 둘째도 그저 평온했다. 손 씻고 주문한 음식을 기다리는데, 우리 테이블 담당 종업원이 온화한 미소를 띠며 다가오더니,
“Chinese?”
(중국인이에요?)
“No, I’m Korean.”
(아뇨, 한국인이에요.)
“Oh! Korea!!! Koreans and Chinese people look so similar.”
(오! 한국!! 한국인과 중국인은 비슷하게 생겼어요.)
주로 로컬들만 이용하는 식당에 먼 한국 땅에서 유치원생 아들과 둘이 식사하러 온 모습이 신기했던 걸까? 이후 오며 가며 우리 테이블을 섬세하게 신경 쓰는 모습이 느껴졌다.
방금 짜낸 신선한 오렌지주스는 달콤하니 맛있었고, 뒤 따라 나온 치즈 샤와르마는 냄새도 안 나고 고소하니 정말 맛이 좋았다. 그러나 샤와르마가 낯선 둘째는 한입 먹고 입을 대지 않아 나 혼자 한 개를 다 먹어 치우고 있을 즈음 종업원이 쓰윽 다가오더니 예쁜 색감의 튀김 2개가 담긴 작은 접시를 놓고 가며,
“It’s free!”
(공짜예요!)
라고 외쳤다. 우리나라보다 물가가 비싼 두바이에서 공짜 음식을 얻어 먹다니...! 종업원이 놓고 간 것은 중동의 대표 음식 중 하나인 ‘팔라펠’로, 병아리콩에 각종 채소와 향신료를 버무려서 튀긴 국민 메뉴다. 사실 전날 레바논 레스토랑에서 한 접시 가득 팔라펠을 먹어치웠기에 크게 땡기지 않았지만, 종업원의 따뜻한 마음이 마냥 고마워서 한입에 넣고 맛있게 먹었다. 향신료 냄새에 민감한 둘째는 역시나 입을 대지 않았고, 나 역시 어제 먹은 팔라펠까지 남아있는 듯한 위장이었기에 도저히 못 먹고 남겼다. 일부러 우리를 위해 온정을 담아 맛 보라고 주셨는데, 이 조그만 팔라펠 하나를 못 먹어서 남기고 가야 하다니... 팔라펠을 남기고 가는 게 미안했던 나는 결국 종업원 몰래 가져가기로 결심했다. 어차피 다 못 먹은 샤와르마 두 개도 싸 가야 하기에.
넣어갈 봉지가 없어서 종업원한테 부탁할까 하다가 팔라펠을 남긴 게 들킬까봐 나 혼자 해결한답시고 열심히 가방을 뒤졌다. 그때 눈에 띈 한국의 검은 봉지! 아이가 혹시나 멀미하면 사용하려고 챙겨둔 검은 봉지가 어찌나 반가웠던지! 종업원이 없을 때 후다닥 봉지에 싸서 유모차 걸이에 걸었는데, 나의 이런 행동을 멀리서 지켜보고 있었던 걸까? 갑자기 어디선가 나타나더니 “Oh, no!!”라고 외치며 순식간에 유모차 걸이에 걸어둔 봉지를 가져가 버렸다. 순간 어떤 상황인지 이해가 안 돼서 멍하니 바라보기만 한 나. 생각 끝에 ‘꼬질꼬질한 까만 봉지가 안 돼 보여서 예쁘게 포장해 주려고 하나보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나에게 되돌아오지 않는 새로운 봉지. 그제서야 뭔가 잘못됐다는 걸 깨달은 나는 종업원에게 용기 내어 말을 걸었다.
“I’m sorry, that bag is not trash. I packed it up to take away.”
(죄송해요, 그 봉지는 쓰레기가 아니에요. 가져가려고 싸둔 거예요.)
“Really? Okay, no problem. What kind of food was it?”
(정말요? 알았어요, 걱정마요. 어떤 음식이었죠?)
미안한 마음을 안고 샤와르마 이름을 대니 다시 한 번 “노 프라블럼!”을 외치고는 씩씩하게 사라지는 종업원. 금방 나타나서는 가게 이름이 멋지게 디자인되어 있는 봉지를 씨익 웃으며 건네 주었다. 봉지 안을 보니 하얀 종이에 깔끔하게 싸여 있는 두 종류의 샤와르마가 따끈한 온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또 한 번 마음이 뭉클해지는 순간이었다.
서비스로 준 팔라펠을 남기고 가는 게 미안해서 몰래 싸 가려다가, 팔라펠보다 더 비싼 샤와르마 두 개를 새로 받은 먼 한국에서 유치원생 아들과 함께 온 한국 여자라니. 미안한 마음에 계산하려고 하니 역시나 돌아오는 말은 “노 프라블럼!”이었다. 그렇게 나와 둘째는 종업원에게 거듭 감사하다는 마음을 전하며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마음이 담긴 샤와르마를 잘 챙겨서 숙소로 돌아갔다. 둘째를 태운 유아차를 밀며 숙소까지 걸어가는 쌀쌀한 두바이의 밤 공기가 전혀 차갑지 않게 느껴졌던 건 아마 종업원의 따뜻한 마음 덕분이겠지.
이후 한국에 돌아왔는데 우연히 ‘한국을 가장 좋아하는 나라 1위, UAE(호감도 94.8%)’라는 뉴스를 보았다. 문득 지난 주에 들른 두바이의 식당이 떠오르면서, 생각했다. 그때 그 종업원은 단지 내가 한국인이기에 아낌없는 호의를 베풀었던 걸까?
문득 한국인으로 태어나서 감사했다.
고마워요, 코리아!